빛과 시멘트

by 시선




발버둥쳤다. 나의 이십 대는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어서 발버둥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있는 힘껏 발버둥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하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발버둥을 세게 칠수록 발버둥이 끝나고 나면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고,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몇 달을 방 안에서 누워만 지내기도 했다.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지나가고 바람의 온도가 바뀌는 일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지금이 가을이던가, 하고 생각하고는 이내 겨울이 온 지 한참 됐다는 것을 하나의 데이터로 인식하고는 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음으로는 나도 남들처럼 한껏 삶을 껴안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엄청나게 사소해 보이는 일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하게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몸과 마음 곳곳에 잿빛 시멘트가 끼여있는 것처럼 무엇도 나에게 와닿지 못했다.



그 와중에 나를 살아내게 했던 것은 아마도 이게 삶의 전부일 리가 없다는 의심 한 자락이었다. 기껏해야 백 년도 채 살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이 인간인데, 그 생이 이렇게 고통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는 건 어쩐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끈질기게 붙잡았다. 동앗줄처럼 보이는 건 무엇이든 잡아쥐었고, 그렇게 상담을 찾고 코가 헐도록 우는 일을 반복하고 명언을 찾아 가슴에 심고 행복을 말하는 책을 사모았다.



그 때는 떼는 걸음 하나하나가 결국 제자리를 빙빙 도는 원처럼 느껴졌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의 순간 순간이 작은 부표들이 되어 서서히 나를 띄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어쩌다 내가 사실은 뜨는 게 당연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앎과 맞닥뜨렸다. 나는 본래 어떤 물에서도 뜨도록 만들어져있고, 그래서 가라앉는 일이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발견과 마주한 순간부터 그동안 나를 가라앉게 만들던 온 몸의 시멘트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감나무 아래 멈춰서서 짙은 주황빛을 띠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들을 빤히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따지 않고 남겨둔 감에 찾아온 까치가 배를 채우려 부리를 움직이는 모습에 신기해하는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여전히 내 안에는 시멘트 조각들이 남아 있어서 어떤 날에는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아직도 안 없어졌나 싶어서 울고 싶어지게 하기도 한다. 쌓이는 데 오래 걸린 만큼 내 몸을 떠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잠시 가라앉았다가도 금방 다시 떠오를 것을 알고 있어서, 나는 본래 떠오르도록 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괜찮다.



벌써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빛이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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