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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May 17. 2019

화장하기

가면벗기

 




휴관 일인 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너무 더워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그저 견디며 지내는 폭염의 날씨에 도서관 만한 피난처는 없다. 나는 도서관에 갈 때에 정성껏 화장을 한다.  

사실 나는 화장하기를 참 싫어했다. 직업이 있을 적엔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했지만,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는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가꿔야 한다”, “선크림을 꼭 바르고 다녀라”. 쉰을 코앞에 둔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잔소리를 하시지만, 젊어서의 나는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이라며 엄마 말에 어깃장을 놓고는 분하나 찍어 바르기를 마다했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변변한 분첩 하나가 없었다. 친구로부터 “좀 더 예뻐지길 바라며” 같은 카드 문구와 함께 생일 선물로 받은 분첩이 다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젊은 시절 나에게 연애를 걸어오는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 가꿀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멋진 남자는 어찌 그리 많던지, 늘 나의 외적인 모습으로 인해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혼자서 쉴 새 없이 짝사랑만 할 뿐이었다.   

 

꽃같이 예뻤던 시절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없었던 듯하다. 그저 선머슴처럼 짧은 커트 머리에 햇볕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그리고는 보통의 여대생들과는 다르게 부조리한 사회를 바로 세어보겠노라며 주먹을 치켜올리고 집회에 참석하거나, 도서관 구석 자리에 앉아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밤이면 허름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한 토론을 벌이곤 했다.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마치 꽃을 들여다보듯 보고 또 보며 예쁘게 꾸며야 할 청춘의 나이에 나는 꽃이 되길 거부하고 푸르고 씩씩한 나무가 되고 싶었던 듯하다. 여느 여학생들처럼 부드럽지도, 그 시절 남자들이 좋아라 했던 ‘백치미’도, 자신의 빈틈을 드러내어 남자들의 우월함을 확인시켜줄 ‘허당끼’도 나에겐 없었다. 오히려 눈에 힘을 주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한 고집쟁이였으니 어느 남자가 나를 연애감정으로 좋아했겠는가. 요즘 시쳇말로 그들에게 나는 ‘여자 사람 친구’였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 강한 척을 했을까. 가끔 후회가 된다. 겉으로는 무엇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채 솔직하고 당당한 척을 했으나, 정작 여린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는 용기가 없어서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는 후회 말이다. 마음은 한없이 여려서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고, 지는 해만 보아도 가슴이 허허로웠고, 누군가가 나를 보듬어 위로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고독하고 정에 굶주린 여자였는데 말이다. 그런 여린 나의 내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억지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때 내가 쓴 가면은 나의 본질을 가리는 허위요 위선이었다.    

그대로의 내면을 드러낼 용기가 없어서 옅은 화장조차도 거부하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척, 그러므로 외적인 꾸밈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위선을 떨었던 것이다. 내적 가면을 벗고 얼굴에 예쁜 화장을 하고, 연약한 내면을 솔직하게 내보였더라면 나의 젊은 시절은 훨씬 다채롭고, 자유롭고, 당당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면과 일치하지 못했기에 외롭고 불행했다.    


중년의 나는 이제 매일 아침 화장을 한다. 나의 부족한 내면조차도 편안히 받아들이고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진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듦이 나에게 준 지혜이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 화장의 의미는 주어진 오늘을 활기차고 자신감 있게 맞이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또한, 매일 아침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 속의 얼굴을 한참이나 꼼꼼히 들여다보는 나만의 의식은 오늘 좀 더 많이 웃음으로서 품위 있는 주름을 만들자는 긍정의 다짐이다. 마음의 가면을 벗고 얼굴에 뽀얀 화장을 하고 나니, 오늘은 한결 나의 내면과 일치하는, 편안하고 유쾌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기분이 좋아진다.

    


습함과 뜨거움에 힘겨운 한여름이지만 이제 곧 그 위력이 사그라들어 서늘한 상쾌함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날 것을 안다. 내일이면 미세한 가을 냄새가 새벽 공기에 배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오늘도 화장을 곱게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201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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