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에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유명하다는 육회를 맛보기 위해 종로 5가에 있는 광장시장에 갔다. 영하의 기온이었다. 육회 골목이라는 곳에 들어서자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행인들은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되고, 오로지 육회를 먹을 목적으로 모여든 사람들만이 각자가 선호하는 육회 집에서 한참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언제 줄어들지도 모르는 줄의 끝에 매달려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우리 목적지는 ‘육회 자매집’. 한 집 건너에 1호점과 2호점이 있다. 2호점 앞 골목에 겨우 사람을 피해 서 있는 자동번호 출력기에서 번호표를 뽑았다. 124번. 현재 호출 번호는 90번대 후반. 우리 뒤에 사람들은 끝도 없이 밀려와 번호표를 뽑고, 주인장은 가게 문 앞에서 큰소리로 계속 번호를 불러 댔다. 그야말로 사람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기보다는 번호가 음식을 배정받으러 온 것 같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번호가 불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점원이 배정된 자리에 손님을 기계적으로 안내한다. 두 명이 앉아 음식을 먹기에는 한참 좁은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육회 한 접시와 간, 천엽 한 접시를 주문하고 서울 막걸리 한 통을 시켰다.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에 벌이니 뭘 더 올릴 공간이 한 뼘도 남지 않는다. ‘딱 이것만 먹고 빨리 자리를 비우라’는 뜻 같았다. 직원들은 10명이 넘어 보이고 모두 허리춤에 수신기를 차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걸 보니 수시로 동선과 테이블 배치의 지시를 받는 듯하다. 친절한 듯한 말투지만 영혼이 없는 친절임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3, 40분을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가 들어 온 옆 테이블의 주문이 너무 단출해서 충격이었다. 여자 둘이 딱 육회 한 접시만 시킨다. 소고기 180g짜리 육회. 만 오천 원이다. 둘이 먹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인데, 그거 하나만 집중해서 먹고 별 표정도 없이 나간다. 성탄절 휴일. 점심시간이 좀 지난 오후 2시. 이 미어터지는 광장시장까지 와서, 배도 좀 고팠으련만, 심플해도 너무 심플하지 않은가. 한 치의 빈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육회를 묵묵히 집중해서 먹고 별 수다도 없이 힘들게 얻었던 테이블을 버리고 나간다. 그 틈에 기다리던 손님들은 점원이 배정해주는 대로 가 앉는다. 손님의 선호나 의견은 필요치 않다. 손님은 점원의 지시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기계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게 돌아간다. 거기엔 손님이 없다. 그저 번호와 주문이 있을 뿐.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한 모금의 존중도, 대접도 없는 이곳에 오게 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맛도 맛이려니와 유명세로 누구나 먹어 보았다는 그 육회를 자기만 맛보지 못하여 소외감을 느끼게 되거나, 맛 기행을 할 수 없을 만큼의 경제적, 시간적 빈곤층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맛의 군중심리’ 때문은 아닐까. TV만 틀면 나오는 ‘맛집 기행’이 부축인 세태일 것이다.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밑에 깔려있는 채 썰린 배와 달걀의 노른자뿐. 육회를 치댈 때 쓴 양념으로는 참기름과 후추만을 가늠할 수 있을 뿐 무엇이 이런 찰진 식감과 매콤, 고소하며 달콤한 맛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한 젓가락씩 입에 들어갈 때마다 그 맛과 식감에 연달아 감탄하다, 육회를 안주 삼아 마신 막걸리 두 잔에 마치 ‘육회 세상’의 부속이 된 듯한 언짢은 마음은 사라지고 흥만 남았다.
밖에서 추위에 떨다 따뜻한 곳에 들어와 서둘러 마신 막걸리 탓에 금방 얼큰해졌다. 가게 안 풍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얼핏 그곳에 있기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기계 돌아가듯 숨 가쁜 가게 안의 유리 벽장 속에 들어있는 물건을 보고 그 의외성에 나는 놀랐다. 벽의 3분의 2지점에 매립식으로 만든 유리 벽장 안에는 딱 봐도 만든 이의 시간과 노력이 엄청났을 법한 섬세한 레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여가와 취미의 결과물일 터. 시간과 공간의 빈틈이라고는 단 일 푼어치도 허용되지 않을 법한 공간에 상당한 시간과 집중이 필요했을 비생산적인 결과물인 레고 작품들이 있는 것은 당황스러웠다. 그 레고 작품들이 ‘사람은 누구에게나 ‘쉼’의 순간이 있어야 고단한 삶을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옛말에 ‘논 힘으로 일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이라도 스스로 쉼을 찾고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잃게 된다는 말인데, 마치 그 레고가 이 말을 대신해 주는 듯했다. 바쁜 현대인들이 분주한 광장시장에 육회를 먹으러 굳이 시간을 내 오는 것은 군중 속에서 살아남되 여유와 맛을 즐기는 비움의 풍류를 즐기기 위함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