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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May 23. 2019

 첫 멀미






어제 허수경 시인의 에세이 [너 없이 걸었다]를 읽다가 ‘누군가에 의지해서 실려 가던 날’이란 글귀와 마주쳤다. 나는 읽기를 멈추고 젊은 내 아버지의 새 녹색 자전거에 실려 가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내가 몇 살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본채와 사랑채가 나누어진 초가집 두 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을 부수고 막 새집을 지었을 때니까 내 나이가 그쯤 되었으리라. 나보다 두 살 많은 작은 언니와 나는 새로 만든 부엌에서 서로 다투고 있었다. 부뚜막이며 부엌 바닥, 그리고 수도 아래에 한껏 높이 올린 설거지 대는 시멘트를 발라 매끈매끈하여 보기 좋았다. 설거지통도 직사각형의 예쁜 싱크대 모양이었는데 역시 시멘트로 매끈하게 발라져 있었다. 그날 설거지통 안에는 시원한 수돗물이 받아져 있었고 막걸리가 든 노란 금빛 양은 새 주전자가 찬 이슬을 흘리며 그 안에 들어앉아 있었다. 엄마는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새참을 내어 가시며 광주리를 이고 먼저 앞장서시고 우리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따라오라 하셨던 것 같다.     

언니와 나는 의뭉스럽게도 이미 그 시원한 막걸리 맛을 알고 있었다. 주전자 뚜껑을 열어 참새 오줌 만큼씩 따라 몰래 마시는 막걸리 맛은 한낮 땡볕의 따가움을 이기고도 남을 만큼 이상한 마력을 지닌 달짝지근하고 묘하게 흥분되는 맛이었다. 우리 두 자매는 자기가 그 주전자를 들고 가겠노라고 부엌에 남아 먼저 설거지통으로 팔을 뻗어 주전자를 잡으려고 서로를 밀쳤다. 높은 설거지통 바로 아래 만들어 놓은 시멘트 계단이 하나 있었는데, 나의 짧기만한 다리가 미쳐 그 계단 위로 안착하지 못한 채 미끄러져, 새로 만들어 더욱 뾰족한 시멘트 계단의 모서리에 그만 이마를 찧고 말았다.          

대충 한쪽 눈과 이마를 헝겊으로 동여매고 읍내 병원으로 가기 위해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태워졌다. 눈을 꼭 감고 한참을 가다가 놀라고 아픈 것이 가라앉아 좀 갑갑했는지, 아니면 덜컹거리는 자전거 위에서 궁둥이가 너무 아팠는지 살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자전거는 읍내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달리고 있었다. 양옆에 어린 내 양팔로는 감히 다 안을 수도 없이 울창하고 미끈한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자갈과 패인곳이 많았던 흙길. 그 미루나무 너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한 진녹색의 건강한 벼포기들이 줄을 맞추어 끝도 없어져있었다.      

아버지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페달에 힘을 주어 속력을 낼 때마다 나는 어지러워 그만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나를 그 무성한 벼의 무리들이 자꾸만 줄지어 빙빙 돌면서 따라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속도를 늦출 때 ‘이제 따라오지 않겠지?’ 생각하고 살며시 눈을 떠보면 여전히 논이 빙빙 돌며 쫓아왔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어느새 읍내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이마를 꿰매고 다시 해가 어스름해질 때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궁금했었다. 왜 가만히 있던 논들이 아버지와 내가 자전거를 타면 자꾸만 쫓아오는 것일까? 우리와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70년대 초반, 시골에서 우마차나 할아버지의 지게 위를 타봤을 뿐, 처음으로 그렇게 빠른 것에 몸을 실어 본 나는 아마도 첫 멀미를 했던 것 같다. 그것이 멀미인 줄도 모르고 자꾸만 어지러워서 아버지 허리춤을 잡고 아버지 등에 얼굴을 기댄 채 나른해져서 눈을 감았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새 자전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빠른 런던에서 프랑스로 가는 해저 열차인 유로스타를 타도, 파리에서 스위스로 가기 위해 비행기 이륙 직전의 빠르기로 달린다는 TGV를 타도,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대륙과 대양을 횡단해도 멀미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에게 최고의 속도로 최초의 멀미를 경험하게 해 주신 씽씽 자전거의 주인인 아버지는 여든하고도 세 살을 더 잡수신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멀미가 나도록 빨리 움직이는 자전거 뒤에 올라앉아서 생경하고 두려울 법도 한 속도감과 어지럼증을 아버지의 허리춤을 잡고는 아버지 등에 기대어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눈만 꿈뻑거리며 나른해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어린 나의 무한한 믿음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 치매로 방금 드신 점심의 메뉴를 기억하지 못하시고 방금 인사하고 나간 손자를 찾아 방문을 여신다. 혼자 있기를 불안해하시고 뭔가 지적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신다. 아버지의 스러져감이 한없이 안타깝고 야속한 나는 내가 온전히 의지해서 자전거에 실려 가던 어린 시절의 그 날, ‘온전히 아버지에게 의지해서 실려 가던 그 날’이 한없이 그립고, 그때의 젊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새 녹색 자전거가 눈물 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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