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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Jun 14. 2019

산딸기 도시락

추억 속으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천천히 아침을 먹고 집에서 나온다. 월수금 오전에는 수유리 영어마을로 가서 영어수업을 듣고 도서관으로 오고, 화목은 오전부터 곧장 도서관으로 온다. 내가 하루를 보내는 곳은 대학 도서관이다. 여기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러니까 도서관이 나의 서재요, 일터다.     


어제도 점심을 먹은 후, 어김없이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에서는 북한산의 남성적인 바위 능선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명당자리다. 책을 보다가 지루해지거나, 글을 쓰다가 막혔을 때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의 북한산을 바라보면 눈이 시원해지곤 한다. 그래서 자주 산을 쳐다보게 되는데, 어제는 나의 시선에서 오른쪽 5시 방향으로 뭔가 낯선 것이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분명 시원한 초록이 시야를 꽉 메워야 하는데 분홍 그림자가 얼핏 얼핏 보이는 거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 초록 기슭에 하늘색 모자를 쓰고 분홍색 옷을 입은, 딱 봐도 얌전한 맵시의, 중년을 막 지난 어떤 여자가 엎드려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저기 뭐가 있길래 저 비탈에 달라붙어서 저렇게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것일까?’. 나는 궁금해져서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그 여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가만히 보니 그 여자는 나무 넝쿨 밑부분을 헤치고 손을 넣은 후, 연신 그 손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아예 창에 착 발라 붙어서 유심히 보니 그 여자는 연신 손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따서 먹고 있었던 거다. 그것은 바로 붉은색의 산딸기였다.    


아. 그 여자가 따먹고 있는 것이 산딸기라는 것을 알아낸 순간,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책이고 글이고 다 집어던지고 그 여자가 매달린 비탈로 달려 올라가고만 싶었다. 거기서 나도 그 여자처럼 게걸스럽게 산딸기를 따서 입이 빨갛게 되거나 말거나 마구마구 입에 ‘욱여넣고’ 싶었다. 산딸기를 따 먹고 있는 그 여자는 자신에 행동에 완전히 몰입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푹 빠져서 그 행위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그 여자가 너무도 부러웠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던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이즈음이 되면 누런 양은 주전자나 도시락을 들고 우리 자매들과 동무들이 함께 산딸기를 따러 다녔다. 누런색 찌그러진 주전자나 도시락을 늘 가지고는 가지만 그것들을 채우기 전에 우리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알이 굵고 달콤한 산딸기를 따려면 깊숙이 가지를 헤치고 들어가야 했는데, 그러자면 가시와 가지에 긁히고 찔리기 일쑤다. 가죽 장갑이나 어떤 도구도 없던 시절. 그래도 굴하지 않고 딸기에 손을 뻗어 기필코 따내던 우리의 투지.     


입 주변이 빨개진 서로를 보며 웃다가, 배가 다 차면 그제 서야 느긋하게 주전자와 도시락에 한두 알씩 딸기를 집어넣기 시작하지만,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면 반쯤도 차지 않은 주전자와 도시락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럴 것을, 글쎄, 도시락은 뭐하러 들고 가냔 말이다. 그래도 해마다 산딸기 철이 되면 또다시 채우지도 않을 주전자나 도시락을 들고 삼삼오오 산딸기를 따러 나선다. 부모님께 맛 보이고 싶은 어린 효심일까. 왜 그렇게 주전자나 도시락을 가지고 나섰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만일 지금 산딸기를 따러 나선다면 나는 먼저 ‘필수템’으로 주전자나 도시락을 먼저 챙길 것이다.    


제주로 내려가 처음 맞는 초여름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마리아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릴 때 산딸기 따 먹던 이야기를 했다. 마침 언니도 나와 같은 ‘컨츄리 걸’이었고, 마침 딱 산딸기 철이라 우리는 산딸기를 따러 가기로 했다. 마침 언니가 봐 둔 곳이 있다고 했는데 거기가 하필 보건소 담 너머였다. 하지만 그것에 굴할 우리 ‘컨츄리 걸’이 아닌지라 우리는 보건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아침 6시에 만나서 담을 넘기로 하였다. 모요일 아침 6시에 작전을 개시하기로 하고 안개가 자욱한 날 보건소 담장 아래서 만난 우리는 그만 서로 낄낄 웃고 말았다. 둘 다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나온 것이었다. 나는 경기도, 언니는 경상도 가시네인데도 산딸기 따기의 ‘필수템’은 역시 도시락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건소 담을 넘어 작전에 성공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배불리 먹고, 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이 땄다.    


나는 북한산 아래 비탈에서 딸기를 따 먹던 그 여자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산딸기를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거기서 먼지 묻은 딸기를 따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산딸기를 따 먹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 여자는 유년의 추억을 따먹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자꾸 손이 가는 산딸기처럼 중년에 들어선 나도 추억을 자꾸자꾸 꺼내 보아도 자꾸 추억이 고프다. 사 먹는 산딸기는 따 먹는 산딸기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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