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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Jun 24. 2019

유월의 노래

오, 인생은 즐거워라




요 며칠의 날씨는 너무도 아름답다. 이렇게 하늘은 맑고 바람마저 시원한데, 태양은 자기가 할 일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선명한 유월을 맞아 본 적이 얼마 만이던가.    


미세먼지와 너무 일찍 달아오르는 지구로 30도가 넘는 날씨의 유월. 6월의 장마는 옛말이 되어 매해 극심한 가뭄이 찾아오고, 그 습기는 또 얼마나 무거운가. 가히 숨 막히는 6월이었다.     


20대 중반부터 40대 말까지 나에게 6월은 달력에 없는 달과 같았다. 나의 직업은 중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강사였는데, 학생들의 기말고사가 7월 초에 있다. 그 기말고사 대비를 4주 정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6월 한 달은 시험대비를 하느라 정신없는 달이 된다. 기출문제 준비하랴, 부족한 학생들 보충지도하랴, 주말엔 시험대비 특강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계절이 왔다 가는지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6월이 오는 것을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81년도에 아버지는 어느 한 대학가에서 밥집 겸 주점을 하고 계셨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그 밥집에 늘 음악을 틀어 놓으셨는데 그 음악 중에 나의 귀로 들어와 머문 곡은 바로 1980년도에 발매된 “사랑의 듀엣”이라는 음반에 있는 “유월이 오면”이란 곡이었다.    

 

 “유월이 오면 나는 그때엔 온종일 내 님과 함께

  향긋한 마른풀 속에 앉아 있으려오

  그리고 솔솔솔 바람 부는 하늘의 흰 구름이 지어 놓은

  음~ 눈부신 높은 궁전을 보며 사랑을 노래 부르리

  애인은 노래 부르고 나는 노래 지어주고

  그리고 온종일 아름다운 시들을 읽으려오

  마른풀로 지은 우리들의 집에 숨어 누워서

  오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사춘기 초기의 나는 매일 이 노래를 들으며 ‘아 사랑은 저렇게 따뜻하고 푸근한 것이구나,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시를 노래하며 소박하지만 예쁜 사랑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막연히 6월은 아름답고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가히 사랑을 노래로 배웠달까. 그래서 연애 한 번을 못 해보고 결혼 한 1인.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내가 직접 접한 유월은 낭만과 사랑의 계절이 아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의 피맺힌 한이 서린 유월이었고, 1987년 6월은 민주주의를 향해 치열하고 처절했으나 마침내 승리한 혁명의 유월이었다. 젊었고 피가 뜨거웠던 나는 그때부터 6월이 오면 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들은 일어섰다 오직 맨주먹

   피눈물로 동지를 불렀다

   독재 타도 민주 쟁취 하나 된 소리

   민주와 해방의 나라 이뤘다

   아, 우리들의 수난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사랑 우리의 나라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손 맞잡은 우리 전진하는 우리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투쟁하는 우리 사랑하는 우리 

   아, 해방 통일의 우리 되살아나는 유월에’    (유월의 노래)        



그리고는 또 많은 세월이 흘렀고, 해마다 유월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매년 왔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많은 아픔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유월을 살고 있다.     




일요일인 어제저녁에 남편은 갱년기를 보내느라 허약해진 나를 위해 옻닭을 해주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여 그 구수한 국물을 먹는데 그 맛은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가끔 시리게 아픈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 같은 따뜻한 맛이었다. 밖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고, 적당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절로 행복해져서 나도 모르게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하고 노래를 불렀다.    


오랜 세월을 걸쳐 다시 내 가슴에 살아난 유월과 유월의 노래들. 역시 살기를 잘했다 싶다. 하나로도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 6월엔 오디와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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