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1
나의 집은 제주에, 그의 집은 화성에 각각 전원주택으로 있다. 나이 쉰에 갑자기 그에게 꽂혀 하루도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우리는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제주에서 올 2월에 혼인신고를 했더랬다. 살림을 어떻게 합칠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등에 대한 어떤 합의나 대책도 없었다. 그냥 어디라도 함께라면 좋았다. 사랑의 무모한 용기는 젊고 늙고 가 없다. 우리의 사랑은 20대의 사랑보다 더 치열하게 타올랐다. 35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물불을 가릴 틈이 없었다.
그는 작년에 서울로 발령을 받아 화성에 집을 두고 서울의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출근을 하지 않는 내가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 그와 함께 지냈다. 좁디좁은 기숙사 방에서 한 달을 보내고 3월에 그의 근무지 근처에 원룸을 얻었다. 그게 우리의 첫 신혼집이다. 지금도 주중에는 6평 원룸의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싱글 침대에서 싸웠거나, 삐졌어도 어디 피할 데도 없이 딱 붙어 자야 하는 처지다.
아무튼, 우리는 수유리의 원룸까지 합쳐서 세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제주, 화성, 서울. 한 달에 한 번씩은 제주에 가서 귤밭과 집을 돌봐야 하고, 제주에 가지 않는 주말엔 화성으로 내려가서 텃밭을 가꾸고 다음 한 주일 동안 서울에서 먹을 음식들을 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어느 한주도 느긋하게 주변 동네를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직은 해가 한창인 저녁 6시에 마을을 산책했다. 나이 들어 부부가 손을 잡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바로 그런 흉내를 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뿌듯했다. 두 손을 잡고 시골 마을의 골목길을 걷는데, 언제나 혼자였던 걷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걸으니 든든하고 좋았다. 또 ‘이런 소소한 것들이 사람 사는 맛인데’ 하는 생각에 이 작은 행복을 누리고 살지 못했던 지난날의 내가 애처롭기도 했고, 이제는 덜 외로워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고 뭔가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손을 잡고 돌아본 안동네는 개발이 불어 닥친 가운데 아직 채 허물지 못한 옛집들만이 몇 집 엎드려 있고, 언제 드나들었는지도 모를 나무 대문이 굳게 닫힌 채 서 있었다. 읍내의 개발로 세련된 전원주택들이 이 마을까지 들어오고 나서, 버려지고 돌보지 않은 오랜 시골집들은 개와 고양이 그리고 자식들의 양념거리와 푸성귀라도 챙겨주려고 마을 안의 빈터 밭을 터질세라 욕심껏 가꾸고 계신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 세 분이 지키고 있었다. 두 분이 마당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다가 우리가 지나가다가 인사를 드리니 상추며 푸성귀를 뜯어 주신다고 한사코 잡으셨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을을 구석구석 돌면서 살펴보니, 어릴 때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보던 시멘트 담벼락엔 할머니들이 심은 울타리 콩이 마치 어릴 적 그 시절 인양 이쁘게 자라고 있었고 마을 끝자리와 소나무 숲의 경계에는 노랑꽃이라도 수북이 핀 듯 정성껏 노랑 봉지를 씌운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 복숭아나무를 지나 두어 발자국 앞에는 농익은 오디가 따먹을 사람 없어 서러운 듯 가득 떨어져 있다.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므로 까맣게 잘 익은 놈으로 하나 따서 먹어보니 이제껏 먹어본 오디 중 최고로 달고 맛있었다.
그 달콤한 오디를 나만 알아본 것은 아닌지, 오디나무 밑에는 뵙기 힘든 토종‘넓적사슴벌레’ 암컷 한 마리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동네를 다 빠져나오자니 경기도에서는 보기 드문 얇은 대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는데, 옆 공장 지대에서 왔는지 태국에서 왔다는 아직 소년티를 못 벗은 청년 둘이서 죽순을 캐고 있었다. 몇 마디 주고받고 사진 좀 찍자고 하니 자랑스레 치켜올려 준다. 고국을 떠나 이 먼 나라에 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고, 그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온 김에 해도 살짝 저물어 가고 바람도 선선하여 앞 동네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 동네에는 우리 안동네보다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농사 거리도 다양하지만, 그래도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장이 들어서 있어서 곧 우리 동네처럼 황망하게 스러질 처지라고 생각하니 대문에 매달아 놓은 쪽파 씨앗이며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피운 밤나무며 감나무가 정겹기보다는 오히려 쓸쓸해 보였다.
해가 다 기울고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남편과 나는 여전히 손을 잡고 논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와 사방 조용한 집에서 저녁을 해 먹었다. 마을 초입에 자리 잡은 우리 집도 개발과 함께 지어진 타지인들의 전원주택 중 하나다. 밤마다 인기척 하나 없는 쓸쓸한 안동네에서 할머니들은 원 동네보다 더 번성하여 정원 등 불빛이 밝은 이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아마 옛날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살던 그 호시절을 그리워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나라도 가서 말벗이 되어드리고 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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