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체험기-2
지난달에 생리가 없었다. 건너뛴 적 없이, 주기도 그런대로 잘 지키던 생리였고, 심지어 작년 말부터는 양까지 많아져서 폐경은 생각도 안 한 채, ‘회춘을 하나?’ 하는 야무진 헛꿈을 꾸다가 당한 일이라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평소 생리를 할 때마다 매우 성가셔했고, 어디 세게 부딪혀서 멍들어 아린 살처럼 아랫배의 통증이 뭉근하고 길게 이어져서 ‘이놈의 생리, 이제 애도 다 낳고 쓸 데도 없고만, 그만 뚝 끊어지면 좋겠다’고 구박 아닌 구박을 나의 몸에게 했었다.
그냥 생리만 거른 게 아니었다. 3월인가, 4월부터 갑자기 몸에 열기가 올라와 땀을 쭉쭉 흘리다가 갑자기 열이 식어 서늘하기 시작해서 낮에는 낮대로 불편하고 밤에는 이불과 씨름을 하느라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6월인 지금은 ‘덥다가 갑자기 춥다가’를 심하게 해서 낮에 도서관에 갈 때는 긴 팔을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고, 밤에는 에어컨 리모컨과 이불을 손 닿는 곳에 놓고 밤새도록 눌렀다 덥었다 하기를 번갈아 반복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거기다 열이 확 오를 때는 진까지 쭉 빠져서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다. 갱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막 재혼한 새신랑인 남편은 아무리 색시가 이뻐도 땀범벅에 낑낑대는 나에게 가까이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가여운 눈으로 보고만 있기에는 도저히 안 될 거 같았는지 갱년기 치료 한의원들을 인터넷에서 뒤져서 용하다는 한의원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가겠노라고 대답해놓고 보니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쉬는 주말인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겨우 찾아간 한의원은 좀 별났다. 로비에 한가득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다짜고짜 나에게 “호르몬 치료받고 있죠?” 하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나가서 데스크에서 설명을 들으라고 해서 나왔는데, ‘선생님이 본인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갱년기 치료하려면 다른 병원에 가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료비는 받지 않겠다고 한다. 진맥을 보지도 않았고 다른 어떤 설명이나 검사도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황당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서 화도 내지 못한 채 그냥 점심만 먹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언했다. 나는 한방과는 잘 맞지 않는 거 같으니 내가 너무 힘들면 양방의 갱년기 클리닉을 가겠다고, 그러니 이제 병원은 그만 알아보라고.
그런데 남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갱년기에 좋다는 영양제들이며 칡즙을 사서 먹이더니, 나 몰래 또 다른 한의원을 찾아서 덜컥 예약을 했다. 신사동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인데 예약하기도 엄청 힘들었다며 꼭 가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속으로 화가 났지만, ‘곁에서 지켜보기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랴. 돌봐줄 사람 하나 없던 때가 엊그제인데 복에 겨운 투정은 그만하고 신경 써주는 사람한테 잘해야지’ 하는 마음에 따라나섰다. ‘열 화상 검사’라는 걸 했는데 예상대로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당장 치료를 권했다. 의사 선생님이 설명도 잘해주었고 여자라서 그런지 내 증상에 공감도 많이 해주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비용이 상당히 비싸기는 했지만, 나를 위한 치료이니 기쁜 마음으로 하자 싶었다. 그런데 진료가 끝난 후, 남편은 계산대로 가려는 나를 불러 대기실 의자에 앉혔다. 그러더니 여기 말고 주말에 안양으로 한 군데 더 가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진단 결과에서도 신장에 진액이 다 빠져서 기력이 없다 질 않았냐, 강북에서 신사까지 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뭘 또 가냐? 난 그냥 여기서 할란다’. 나는 고집을 부렸으나 끝내 검사비만 지불한 채 약은 다음에 신청하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그러고는 어제 아침. 남편은 8시에 출근을 하고 나는 도서관에 가기 위해 10시에 집에서 나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2시에 남부터미널 근처 한의원을 예약해 두었으니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한다는 통보였다. 안양이 아닌 남부터미널 근처의 또 다른 한의원에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더 버틸 기운도 없어 그러자 했고, 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북한산 밑자락에서 서울 남부에 있는 한의원으로 꾸역꾸역 갔다.
신사동에 있는 한의원보다 더 체계적인 여러 검사를 했다. 선생님의 진단과 처방은 좀 더 구체적이었고 더 희망적이었다. 비용은 말할 것도 없이 비쌌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몸이 엉망이라 치료 기간이 길었고 고쳐야 할 식습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 믹스와 과일을 끊어야 했다. 믹스커피를 끊은 지 겨우 5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아까부터 믹스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다.
여러 한의원 투어 끝에 결정한 갱년기 치료. 결코 적지 않은 비용. 갱년기를 이제 막 맞이했다. 건강한 사람은 잘 견디어 내지만 나처럼 기초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한의사들은 얘기한다. 몸 상태는 그동안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했으니 갱년기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이고, 그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고 잘 버텨내기 위해 치료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기간을 나의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그동안 살아내느라 고생한 나를 더욱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시간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나의 불편을 속상해하고 함께 해결하고 싶은, 새신랑인데 아내가 갱년기인, 사랑스러운 나의 남편에게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