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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Sep 15. 2019

명절, 그 슬쓸함에 대한 단상





분주했던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 어제까지 다녀갈 사람들이 모두 다녀가고, 찾아뵐 어른들을 찾아뵙고, 저녁 무렵이 돼서야 대충 집 정리를 마쳤다. 고된 몸과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는 만족스러운 마음 탓인지 늦잠을 잤다. 남편의 자분자분 움직이는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명절 연휴의 첫날은 아이들 먹일 음식을 장만하느라 바빴다. 우리 집은 스물을 넘긴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의 결혼으로 남편의 아이 둘과 내 아이 하나가 남매가 되었다. 둘째 아들의 아르바이트와 군 복무 중인 첫째 아들의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아이들이 두 번으로 나뉘어 다녀갔고 우리 부부는 손님 아닌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각자의 영역에서 애를 썼다.     


제사를 모시지 않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만두, 갈비, 녹두전, 양반 생채.

전업주부 경력이 거의 전무한 터라 메뉴를 짜고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에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지금껏 몰랐던 명절을 준비하는 주부로서의 뿌듯함을 맛보았고, 명절에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추석날 엄마와 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셔와 함께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5남매를 두셨다. 하나뿐인 아들을 가까이에 두고 계셔서 명절이면 아들 내외를 며느리의 친정으로 보내신다. 시부모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며느리에 대한 배려다. 나는 이런 마음을 쓰시는 우리 부모님이 참 고마웠다.     


그런데 추석 전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 따라 자매들이 각자의 집안 사정으로 엄마 집에 함께 모일 수 없게 되었다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으신 모양이었다. 으레껏 명절날 오후나 다음 날이면 출가한 딸들과 사위들, 외손주들로 왁자지껄하던 풍경이 올해는 없게 된 것이다. 엄마는 늙는 것에 대한 서러움과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에 아침부터 우셨다고 했다.     


새로 시아버님이 되신 남편의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여든이 넘으신 아버님은 어머님을 여의시고 혼자 생활하고 계신다. 포도 농장에 들러 요즘 한창 단맛이 오른 포도를 한 상자 샀다. 껍질까지 먹을 수 있고 씨도 없어 어르신들 드시기에 좋은 포도로 골랐다. 한 송이 씻어 드리니 어린아이처럼 ‘참 맛있다’를 몇 번이나 되뇌시면서 한 송이를 다 드셨다. 잘 드시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보다는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아들을 셋이나 두셨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혼자 명절을 보내고 계신 아버님을 두고 오는 발걸음이 차마 떼어지지 않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아직은 자식들이 우리 곁에 와서 사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우리의 조언도 듣고, 또 가끔은 우리의 도움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완전한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그들의 삶과 가정에 온 마음과 시간을 다 쓰기에도 벅찬 때가 온다. 우리 부모님들의 오늘의 쓸쓸함이 머지않아 나의 쓸쓸함이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순리이다.    


인생이 선사하는 노년의 쓸쓸함을 나는 기꺼이 맞이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잠시의 위로가 스칠 수는 있겠으나 인간 생애의 후반에 갖게 되는 실존적 고독감과 쓸쓸함은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부모님의 쓸쓸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인생은 시기별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로, 성실하고 믿음직한 딸로, 사회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내는 당당한 여성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원숙한 중년으로. 지금은 나의 다양한 역할에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을 가끔이라도 어루만지는 역할을 넣어야 할 시기가 아닐까.     


각자의 고독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쓸쓸한 그들의 노년에 가끔씩 스쳐가는 위로라도 되어드리고 싶다.     




추석 명절의 마지막 날 아침. 평온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다.    








(명절에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저 별모양을 한 꽃같다)




(아버님은 이 큰 포도 한송이를 다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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