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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Sep 22. 2019

만두소 단상









군 복무 중인 아들이 추석에 아버지 제사를 위해 휴가를 나왔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집에서 빚은 만두인데도 여태껏 바깥일이 바빠 집안 살림을 남의 손에 맡겼던지라 손수 만두를 해 먹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두를 맛보게 해 주었던 외할머니는 이제 나이가 들어 만두 빚기를 그만두셨고 큰엄마는 송편 제사를 지내는 추석에는 만두를 빚지 않으시니 ‘집 만두’를 얻어먹을 일이 없어진 아들을 위해 만두를 빚기로 했던 것이다.    


집 만두 ‘덕후’인 아들의 평가가 어떨지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만두를 맛 보였다. ‘이 정도면 맛있는 거야’ 아이의 담백한 평가에 요리 장인에라도 등극한 듯 기뻤다.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인 내일이 친정엄마 생신이기도 하고 입맛이 통 없으신 시아버님을 위해 뭘 해드릴까 궁리하다가 엄마도 좋아하시고 아버님을 뵙기 위해 마침 제주에서 올라와 있는 시동생도 좋아하는 만두를 빚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에  남편과 수유시장에 들러 만두 장을 봤다. 남편은 고기가 많이 씹히는 만두를 좋아해서 돼지고기를 많이 넣는 편이다. 돼지고기는 간 것보다 다진 것이 씹히는 맛이 좋아서 두 근을 다져달라고 했다. 그리고 따로 돼지비계를 얻었다. 돼지비계를 약한 불에 올려서 돼지기름을 내고 꼬돌꼬돌해진 비계를 쫑쫑 썰어 만두소에 같이 넣는다. 그러면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과 비계의 꼬돌한 식감이 만두를 훨씬 감칠맛 나게 해 준다.     


매콤 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입힌 삭힌 고추도 샀다. 그놈을 다져 넣으면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더 해져서 양껏 넣은 돼지고기와 돼지기름으로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만두의 맛을 잡아 줄 수 있다. 그리고 숙주와 1킬로짜리 두부를 사는 것으로 시장보기를 마치고 향남 집으로 고고.    


태풍이 올라오느라 다소 어수선한 날씨였지만 만두를 빚어 안성과 송탄으로 배달을 해야 하는 우리의 손길은 아침부터 바빴다. 봄에 고향 집 마당에서 씨를 캐다 심은 쪽파를 뽑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유독 ‘파 사랑’이 지극한 남편을 위해 미끌거림과 아린 맛이 적은 쪽파를 양껏 뽑아 다듬어 두었다. 김치는 푹 익은 김장 김치를 큰 것으로 세 쪽을 준비했다.


숙주는 물에 데치면 맛이 떨어질까 봐 마당에 화덕을 놓고 찜솥에 쪘다. 숙주를 찌고 난 뜨거운 아랫물에 당면을 담아 불리고, 마늘은 씹히는 식감을 위해 칼로 일일이 썰어 다졌다.     


나는 주로 칼을 쓰는 일을 맡아서 했고, 남편은 김치와 숙주, 두부를 짜는, 힘이 들어가는 일과 불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 숙주를 찌고 돼지기름을 내고 당면 불리는 일, 그리고 거실과 화덕을 왔다 갔다 하며 만들어진 만두를 쪄내는 일을 맡아했다. 만두를 만드는 일에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부활해서 아침 글을 쓸 힘이 내게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첫 만두를 쪄서 맛을 보느라 몇 개를 집어 먹었을 뿐 우리는 점심도 잊은 채 만두를 만들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만두 빚기가 오후 2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일이 다 끝나갈 때쯤 딸과 그녀의 남친이 왔다. 막 찐 따뜻한 만두를 먹일 수 있어서 기뻤다. 돌아가는 딸에게 만주를 싸 보냈다. 입사 1년차로 퇴근이 늦은 딸이 만두를 야식으로 배고픔을 달랠 걸 생각하면 흐뭇했다.


한 김 나간 만두를 냉동 보관이 쉽게 아홉 개씩 비닐에 넣어 포장을 했다. 그리고는 엄마네 안성 집과 아버님이 계신 송탄 집을 향해 빗속에 출발.    


4시쯤 안성 집에 도착해서 만두를 한 접시 담아 엄마와 아버지께 대접했다. 만두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버지와 열 살 조카에게 양보하시느라 많이 드시지 않았다. 나는 냉동실에 들어 간 만두는 오롯이 엄마 혼자서 다 먹기를 바랐다. 생신 축하드린다는 말과 용돈 봉투를 쥐어드리고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6시쯤에는 송탄 아버님 댁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우유만 드시고 식사를 통하시지 않는 아버님 때문에 시동생이 한걱정을 했다. 그래도 만두를 접시에 담아 드리니 세 개나 드셨다. 그거라도 드시니 안심이 되고 뿌듯했다. 허벅지가 살집 있는 여자의 팔뚝만큼 밖에 안 되는 아버님은 혼자 앉고 일어나시는 것도 힘겨워하셨다.     


집에 돌아와 겨우 만두 몇 알을 김치와 녹두빈대떡에 넣어 지글지글 끓여 저녁 겸 술안주 겸 먹었다. 밖에는 태풍이 몰고 온 비가 사납게 오고 남편과 나의 자식 걱정, 부모님 걱정은 길게 이어졌다.    






각각의 독창적인 재료들이 다져져서 만두소로 만난다. 만두가 쪄질 때 각자의 도드라진 맛이 다른 재료에 스민다. 만두 속에서는 어느 재료 하나 다른 맛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어우러질 뿐. 자기의 고유한 맛을 내어놓고 다른 맛들을 끌어안는다.    




피를 나눈 형제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랑하기를 맹세하고 평생을 살기로 한 부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만두 맛을 음미하며 나의 도드라진 성질머리를 돌아본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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