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cky Ha Sep 23. 2019

봄나물






작년 10월에 제주로 내려와 두 달간 월세 집에 살다가, 이곳 신풍리 우리 집으로 이사 들어온 게 12월 초였다. 마당에 귤나무와 작은 텃밭이 어우러져 있는 이 집에서의 생활이 이제 만 3개월 하고 보름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제주가 좋아 이주해 온 아홉 가구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다. 모두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라 편견 없이 서로 사귀며 뭐라도 나누고자 하는 여유로움이 마치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에 들어와 있는 듯 마음이 편하고 좋다.    

  제주에서의 첫봄은 생명의 역동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가슴이 설렌다. 어린 시절 누리던 봄의 즐거움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으로 다가온다. 내가 나고 자란 경기도 안성의 미양면 갈전리는 봄이 오면 온 동네가 연분홍빛의 복숭아꽃으로 덮였다. 동무들과 진달래라도 꺾으러 앞산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보면, 마치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어린 나이에도 탄성이 절로 나오곤 했다. 그렇게 어여쁜 복숭아 동산이 되기 전, 바람에서 채 냉기가 가시기도 전에 우리 동네 여자 꼬맹이들이 하는 연례행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냉이 캐기’였다.



냉이가 올라오는 철을 어찌 알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쿠리며 바구니와 호미를 각자 챙겨 나와 대여섯 명이 온 동네 복숭아밭들을 돌아다니며 냉이를 캤다. 동네 동무들과 함께 엎드려 냉이를 캐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끝없이 수다를 떨고 낄낄거리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질 때쯤에야 오들오들 떨며 동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각자 캔 냉이를 대보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너무 적게 뜯은 아이의 바구니에 한 줌씩 얹어주어 양을 비슷하게 맞춰주곤 했다. 어린 우리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어른들로부터 저절로 나눔과 공유를 배우고 그걸 당연하게 알고 살았던 것 같다.     

  

한창 일이 바쁜 젊은 시절에도 나는 봄이 오면 쑥이며 냉이를 캐러 들로 나서곤 했다.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그것이 나에게는 여가요, 다시 스스로 힘을 채우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학원을 운영할 땐 오전에 시간을 내서 이름 모를 마을의 낮은 산골짜기를 헤매며 며칠씩 쑥을 뜯었다. 5월 초의 중간고사 준비로 지친 아이들에게 콩가루를 묻힌 쑥 인절미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이른 쑥은 예로부터 약인지라, 자식에게 보약을 먹이는 마음으로 매년 아이들에게 떡을 해 먹인 것이었다. 시험을 잘 치라는 의미보다는 주말도 없이 졸린 눈으로 학원에 나와, 누렇게 뜬 얼굴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그저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제주에도 봄이 왔고 나는 올해도 바구니를 들고 나물을 캐러 들로 나섰다. 2월 초엔 벌써 냉이가 다 자라 꽃대를 올리려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봄이 일찍 오는 남쪽 제주로 이사 온 것을 실감하며 더 늦기 전에 서둘러 냉이를 캤다. 살짝 데치고 고추장 양념으로 매콤 달콤하게 무쳐서 옆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한 접시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제주에 와서 새로 사귄 언니가 오랜 감기로 힘들어하는 게 안쓰러워서 혹시 냉이 된장국이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국 끓여 드시라고 좀 나누어 드렸다. 나의 냉동실엔 국 한번, 나물 한번 무쳐 먹을 만큼의 냉이가 남아있다. 그건 냉이 철이 다 지나고, 초여름에 영국에서 방학을 맞아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제는 동네 천변길을 걷다가 너무 기뻐 혼자 탄성을 질렀다. 둑길에 달래가 지천이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장화를 신고 바구니와 칼을 들고 다시 들로 나가 달래를 캤다. 얼마나 토실한지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굵은 달래들이 캐도 캐도 끝도 없이 많았다.    


 큰 솥에 콩나물과 톳을 들기름에 버무려서 불린 쌀 위에 얹고 밥을 안치고, 달래를 숭덩숭덩 썰어 참기름, 고춧가루, 매실액, 조선간장과 진간장, 통깨를 넣고 달래 간장을 만들었다. 밥이 다행히 설지 않고 잘 되었다. 한라봉 파치를 주시는 앞집 아저씨네와 옆집에 혼자 사는 서각가네 집에 톳밥과 달래 간장을 가져다 드렸다. 솜씨는 없지만, 음식은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법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도 달래 간장에 콩나물 톳밥을 쓱쓱 비벼 한입 가득 밀어 넣었다. 향긋한 참기름과 쌉싸름한 달래의 향이 구수한 톳밥과 어우러진 이 맛을 무엇에 비길까?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하다, 문득 달래 간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올해는 누가 나를 대신해 아버지께 이 좋은 봄맛을 보여 드리려나. 멀리 와서 사는 것이 그저 죄스러워 마음이 먹먹했다.    


 마당에 자라고 있는 쑥은 적당할 때 한 번에 베어,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아들이 오면 검정콩을 콕콕 박아 함께 쑥개떡을 빚어 먹으리라.     



 이제 다음 주면 고사리가 올라온다. 아마도 난 다음 주부터는 장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고사리를 뜯으러 온 숲으로, 들로 돌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그러려면 이번 주 안에 귤나무 전정을 마쳐야 하는데 초보의 손길은 한없이 느리기만 하여 조바심이 쳐진다. 전정은 서툴기만 하고 나물들은 어서 캐러 들로 나오라 손짓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이른 점심을 해 먹고 나물 캐러 나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만두소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