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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Oct 10. 2019

민주 동문회






이번 주 토요일엔 ‘민주 동문회’가 학교에서 열린다. 나는 이 모임의 멤버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은 노래공연을 하도록 초대받았다.     


‘민주 동문회’는 졸업생들이 모여 추억을 함께 나눈다는 것에서는 일반 동문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나누는 추억이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추억만은 아니라는 점이 일반 동문회와 다른 점일 것이다.     


나는 90학번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가 많았다. 또 반미 독재 타도, 자주 민주통일에 대한 대학생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었고, 노태우의 군부독재와 사회의 비 민주화와 부조리에 대한 항거에 공안 당국의 간첩단이나 조직 사건의 조작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80년대 엄혹한 시절보다는 훨씬 편하게 운동을 했지만, 미래를 내던진다는 나름의 결연한 각오가 없이 학생운동에 뛰어들기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했던 때였다. 당장 나만 해도 아직은 피라미에 불과했던 2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학생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정보과 형사가 집까지 찾아와 아버지와 나에게 회유와 협박을 하던 시절이었느니 말이다.     


이렇게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뜻을 모아 함께 운동하던 동문들은 가히 운명 공동체라 할만했다. 집회에서, 거리의 가투에서, 때로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폭력적인 정경 차 안에서 서로 눈빛으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의지했다. 또 누구 하나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모두 자기 일 인양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나누던 사람들이다. 그 시절엔 그런 동지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고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에 외롭지 않았다.     

그런 시절에 뜻을 모아 함께 활동했던 선후배, 동기들이 1년에 한 번 모여서 추억도 나누고, 그간에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어떻게 늙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가 바로 ‘민주 동문회’다.     


혹자는 우리 ‘민주 동문회’를 폐쇄적인 모임이라고도 하고 소모적이라고도 한다. 이제 다 늙어서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굳이 또 모이는 것이 우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과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그 시절 우리가 가졌던 순수한 열정과 나보다는 국가와 사회, 약자를 먼저 생각했던 삶의 자세들을 복기해 보면서 오늘의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잘 나이 들어가는 친구와 선후배들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마치 나를 보는 양 흐뭇해진다. 그리고 나도 동지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우리를 보고 ‘패밀리 주의’니, 과거에 운동하던 패거리들의 추억 따먹기니 해도 좋다. 우리는 올해도 잔뜩 모여 놀 것이고 내년에도 또 모여 놀 것이다. 그리고 그 논 힘으로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어제보다는 조금 더 씻긴 마음으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마음을 합할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25년 만에 무대에 서서 동지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어제는 그 시절 내 파트너였던 미정이와 후배 명수와 함께 25년 만에 합을 맞춰보았다. 그때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간 데 없고, 걸걸하게 뭐가 낀 목소리가 답답하다. 호흡들은 달려서 음 처리가 깔끔하지 않다. 또 체력이 노쇠하여 1절만 불러도 힘이 달려서 2절을 부르자면 현기증이 난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즐겁게 연습을 했다.    


또 언제 우리가 이렇게 모여 노래를 해보겠나. 누가 우리처럼 노쇠한 딴따라에게 무대를 내어 주겠나. 그 옛날 투쟁의 장에서 동지들 앞에서 가슴 뜨겁게 부르던 노래. 우리를 기억해주는 동지들 앞에서 노래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떨리고 가슴이 벅차다. 당연히 옛날보다 훨씬 못한 공연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비록 실력이 예전만 못해도 우리 동지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환호하고 감격스러워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다시 만나 노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을 가슴 벅차게 즐겨주리라는 것을.     




이틀 후면 무대에 오른다. 그때까지 감기 걸리지 않게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겠다. 옷은 뭘 입어야 하나. 가사는 안 까먹겠지? 미정이 목소리는 아직도 쩌렁쩌렁하니, 내 목소리는 거기 묻어가면 되겠지? 이런저런 마련에 기분 좋은 어수선함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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