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보약을 주는 일
서툰 고사리 꾼의 아침은 분주하다. 제주에서 고사리를 꺾을 수 있는 기간은 4월 한 달. 그것도 하루 종일이 아닌 오전 11시쯤까지만 꺾을 수 있다. 체력도 문제려니와 한낮의 이슬이 다 마르고 나면 고사리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햇볕도 따가워지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과 체력이 달리는 날은 그나마도 나서지 못한다.
썬크림은 두 종류를 바른다. 하나는 일반 썬크림, 다른 하나는 톤 업 썬크림. 일반 썬크림은 피부 보호용, 톤 업 썬크림은 내 피부가 아직은 볼만하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자기만족용. 얼굴이 마무리되면 고사리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찔레나무와 산딸기 가시들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청바지 천으로 된 바지와 긴 팔의 상의, 자외선이 차단되는 얼굴 가리개와 일명 ‘귤 모자’로 얼굴과 목을 가린다.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고무 코팅이 된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으면 준비 끝. 출동.
고사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는 장소에 차를 대고 무작정 그 장소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고사리가 있을 법한 장소와 차를 댈 수 있는 장소는 대개가 한참 떨어져 있다. ‘고사리가 있을 법한 장소’란 햇빛이 잘 드는 억새나 가시덤불이 우거진 장소이거나 농작물이 자라고 있지 않은 넓은 잡풀 군락지를 말한다. 초입에 고사리가 없다고 실망하고 돌아서면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더 안쪽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러면 반드시 만난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절대 처음부터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똑같다. 인내하고 천천히 다가가면 속을 보여준다.
고사리가 있는지 살펴볼 때는 마음을 담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뻣뻣하게 서서 보거나 겉 풍경만 대충 훑어보아서는 고사리를 발견할 수 없다. 허리를 숙여 어여쁜 꽃을 보듯, 발걸음마저 조심스럽게 떼고, 숨조차 조용히 내쉬며 땅 근처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 귀한 제주 고사리인 것이다.
고사리를 꺾을 수 있는 장소의 유형은 내가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억새와 찔레 같은 것들이 우거진 잡풀 속이고 하나는 말 목장 같은 넓은 평지에서 마치 밭의 농작물을 수확하듯이 꺾는 것이다. 나는 말 목장처럼 넓은 곳에서 고사리를 꺾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고사리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굳이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가시나 덤불이 없어 안전하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을 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나처럼 소득을 목적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나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장소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고사리가 너무 많은 말 목장형 ‘고사리밭’은 버겁다. 고사리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발걸음을 조심히 하지 않아도, 찬찬히 아래를 응시하지 않아도, 행여나 숨어있는 고사리를 밟을세라 숨을 쉴 때조차 조심스럽지 않아도 그냥 고사리가 막 달려드는 형국이다. 허리를 깊이 숙이거나 앉은걸음으로 ‘헉헉’ 소리가 날 정도로 힘겹고도 분주하게 잰 손놀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말 목장형’ 고사리밭에서는 다른 고사리 꾼을 만나기가 일수인데, 대개가 평생 고사리를 꺾어 온 베테랑 ‘제주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손놀림을 주변에서 느낄라치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속도에 맞추게 되는데 어찌나 빠른지 그들이 비껴가고 난 후 숨을 고르다 보면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이 혼이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고사리 꺾기의 재미는 온데간데없고 고사리 바구니만 묵직하다. 그럴 때면 진마저 다 빠져 고사리 꺾기를 포기하고 무거워진 바구니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 그 ‘고사리밭’에서 빠져나온다. 고사리 꺾기는 성공적이었으나 고사리 꺾기의 참 재미는 잃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유채꽃을 비롯한 온갖 꽃들이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제주의 4월에, 고사리를 꺾으러 새벽부터 한라산 밑자락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지만 실은 그것이 꼭 고사리여야만 하는 당위가 나에게는 있지 않다. 그것이 고사리든 취나물이든 도토리이든 나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저 한 계절을 자연 속에 취해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그것을 찾아 헤매고 숨을 가다듬어 유심히 바라볼 대상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따라잡기 힘든 어지러운 세상의 일들을 뒤로하고 온전히 자연 속에서 나를 정화시키는 일. 새봄이면 나의 마음에 보약을 먹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