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복이 터졌네 1
새로 직장을 얻었다.
그야말로 얻어걸렸다는 말이 딱 맞다.
이곳은 추모공원.
나는 56세 중년의 아줌마.
영어학원 원장 경력 15년, 영어강사 경력 29년.
5년간 제주에 이주해 살면서 귤 밭농사와 귤, 청귤청, 고사리 등 내가 만들고 농사지은 것들을 직거래로 판매.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육지로 올라와 생활 중.
직전 직장은 친환경소비자협동조합의 매장에서 점장으로 6개월 근무.
추모공원에서 하는 일은 행정과 분양 업무.
그중에 나의 주 업무는 개장.
개장이란 공식 용어이고 일반적으로는 파묘라고들 알고 있음.
나는 묘지에서 파묘 업무를 주 업무로 하는 행정직원인 거다.
입사할 때 면접에서 상담업무를 할 수 있냐는 물음을 받았고
나는 근 30년 동안 학부모들을 상담해 온 경험이 있으므로
상담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건 자신 있다고 했다.
컴퓨터는 할 수 있냐고 물으시기에 단순한 워드 정도만 할 줄 안다고 했더니
그 정도면 된다고 하셨다.
마침 근무하던 직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꺼번에 대여섯 명이 퇴사하게 되어서
회사는 급히 사람이 필요했다.
이직률이 높은 젊은 직원보다는 조금은 굼뜨지만 이직할 확률이 낮은 경력단절
인력으로 충원해야겠다는 오너의 판단과 집이 가깝다는 이유, 그리고 추천인의 보증 덕택에
무난히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사한 첫날부터 매니저가 숙지하라고 주신 두장짜리 기본 업무 매뉴얼을 다 읽지도 못한 채 쉼 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고, 낯선 용어들로 상담하는 동료들의 통화내용을 옆 귀로 듣고 참고하여 안내를 하고, 민원인들의 무례한 말투를 견디며 정신줄을 붙잡고 하루를 버텼다.
하루가 어떻게 간 건지 마감을 마치고 5시 30분 퇴근시간에는 혼이 나가 있었고, 긴장으로 흘린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그만 받으라는 매니저의 지시가 있고서야 그제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하루가 갔다는 것을 알았다.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맛이란...
암흑 속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암울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퇴근 후 주차해 둔 차를 타고서야 큰 숨이 쉬어졌고 모든 것을 불태운듯 운전 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첫날과 둘째 날, 그리고 셋째 날을 버티고 급기야 나흘 째 되는 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죽을 거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날 아침에 출근하여 2주 일찍 입사한 나보다 두 살 많은 여직원에게 오늘 매니저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할 거라고 말했다.
늦복이 터졌네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