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을까?
장오리 씨와 함께한 시간이 자그마치 13년을 향해 간다. 오랜 시간을 나누고 있지만 그럼에도 데이트 날마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지.
오늘 뭐 먹을까?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한 식사는 급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짝꿍으로 만났으니 아마도 어떤 날은 나란히 식판을 놓던 점심시간도 있었을 테다. 국과 반찬은 교실에서 친구들이 직접 배식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선택지도 없었다. 집에서 숟가락 세트만 챙겨가면 그만이었다. 영양사 선생님께서 작성하신 한 달 식단 표를 기준으로 어머니들이 땀 흘려 만들어주셨으니 말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중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그리고 비슷한 음악 취향을 중심으로 고3 때 다시 만나게 된다. 나름 수험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가끔씩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둘이 함께 외식을 경험했다.
첫 외식 장소는 야탑 도서관 지하의 구내식당. 어떤 날은 돈가스 정식을 먹고 어떤 날은 가지 나물이 나오는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다. 무엇을 먹을까? 당시 나는 치아 교정을 하고 있어서 깔끔한 메뉴를 고심했던 게 생각난다. 최대한 교정기에 끼지 않고 한입에 넣을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다. 열아홉 고등학생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컸나 보다.
스무 살이 된 이후에는 주로 학생 지갑 수준에 맞는 음식을 찾았다. 호화스러움 없이 그저 먹자골목을 오가며 평범한 먹거리를 즐겼다. 더 이상 교정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조금은 편안한 관계로 발전했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점심 메뉴를 고르기도 했다. 그래도 가끔은 데이트하는 기분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을까? (아마 내가 가자고 했겠지) 강남역 파스타집에서 크림 파스타 두 개를 주문했다가 속이 엄청 느글거렸던 기억도 난다.
나는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지만 '지금 뭐가 땡기지?'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장오리씨 역시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배고프니까 먹는다' 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웬만하면 평타 치는 분식류의 음식을 좋아했고, 장오리씨는 특히 국수류를 좋아했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이면 냉면을, 추운 겨울날이면 종종 뜨끈한 국물 요리를 먹은 기억이 많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맥주 한잔 걸칠 수 있는 안주 요리도 즐기게 되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에서 더 나아가 한 달에 한 번은 세계 각국 요리를 맛보자며 호기롭게 새로운 식당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국적인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중동 요리를 먹으며 인상을 찌푸려보기도 하고, 기름진 감칠맛이 조화로운 동남아 음식을 먹으며 감탄하기도 하고, 흔한 재료의 낯선 조합을 맛보며 새로움에 낯을 가리기도 했다. 대체로 모든 경험들이 신선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런 미식의 경험은 가끔 있는 이벤트일 뿐, 평소에는 몸과 마음이 익숙한 음식을 찾았다.
주로 사람들이 북적이거나 유명한 장소보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작은 골목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어느 지역 맛집을 검색해보는 일도 줄었다. 둘 다 오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는 성격이 못돼 그때그때 먹고 싶은 메뉴를 선정하곤 했다.
어떤 날은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거리에 즐비한 개성 있고 멋진 식당들을 뒤로한 채 좁은 골목에 위치한 반지하 돈가스집에서 점심을 먹은 기억도 난다. 오늘은 뭐 먹을까라며 음식을 찾아 헤매다 선택의 피로감을 느낀 결과였다.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서 두 테이블이 전부였지만 공간은 조용했고, 천천히 음미하고 대화하며 바삭하고 맛있는 돈가스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식사에는 나름의 특별함이 남았다. 배고파를 외치며 골목을 헤매던 시간, 골목 군데군데 위치한 골동품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 지하 식당을 발견하던 환호의 순간, 친절한 사장님, 그릇 가득 내어주신 따듯한 된장국, 조용하고 차분한 식사까지. 이렇게 우연히 쌓인 소소한 이야기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식탁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두 발로 찾아 나서는 모든 시간과 지난한 과정이 그날의 식사에 담긴다. 예상하지 못한 우연은 생각보다 우리 기억 속에 깊이 남기 때문에 여전히 곱씹을 수 있는 좋은 이야기 재료가 되기도 한다. 돈가스를 먹을 때, 이태원을 방문할 때,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식탁 위에는 소소한 반찬처럼 작은 이야기가 함께 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십 대 이십대를 지나왔고 드디어 삼십대를 맞이했다. 만날 때마다 오늘 뭐 먹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닌다.
신기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입맛도, 발로 찾는 음식도, 서서히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음식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음식을 식탁 위에 올리고 함께 나누게 될까. 모쪼록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글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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