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무늬에 끌리는 이유
이번 그림은 세비야에 있는 왕실 궁전, 레알 알카사르(Real Alcázar)의 중심 공간인 동정녀의 중정(Patio de las Doncellas)을 그린 것이다.
사실 이 그림에는 작은 비밀이 하나 있다.
이왕에 비밀이라고 말을 꺼냈으니, 지금 당장 밝히지는 않고, 조금 뒤에 이야기하겠다.
이 알카사르는 원래 10세기 초 이슬람 총독의 요새였다.
1248년 기독교 세력이 세비야를 정복한 뒤에는 왕들의 거처가 되었고, 14세기 페드로 1세가 이슬람 장인들을 고용해서 무데하르 양식으로 다시 꾸미면서 오늘날의 궁전이 완성되었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지금도 사용되는 왕궁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궁전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그 안을 걷다 보면, 현재가 아니라 먼 과거의 환상 속 공간을 걷는 기분이 든다.
화려한 아치와 기둥의 장식들, 벽을 꾸미고 있는 기하학 타일 무늬, 천장에 새겨진 복잡하고 정교한 문양들.
정원에는 키 작은 오렌지 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서 있고, 그 가운데로는 수로가 흐른다.
이 모든 것이 다 멋졌지만,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오래 붙잡은 것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타일 무늬였다.
어떤 곳엔 꽃처럼 보이는 무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 무늬였고, 그 무늬들은 한 벽면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정서적 영향없이, 수학적 계산으로만 완성된 듯한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안정감을 느꼈다.
자, 이제 그림의 비밀을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림의 오른쪽 절반만 그렸다.
나머지는 디지털로 대칭을 맞춰 완성했다.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이 중정은 엄밀함과 정확함과 질서 가운데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페드로 1세는 이미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굳이 이슬람 장인들을 불러 이런 장식들을 남겼을까.
반복되는 기하학 무늬는 신의 무한성, 영원성, 질서를 상징했으리라.
그리고 유한한 인간이 그 무늬를 바라보며 느낀 것은, 인간이 절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내가 그 무늬에 끌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여운을 집까지 가져가고 싶어, 기념품 가게에서 자와 콤파스로 완성하는 알카사르 타일 무늬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언젠가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며 기하학 문양을 그리고 있을 나를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