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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6 영수가 떠난 고향

   영수가 떠난 고향       




         

   영수의 고향 봉현마을에서는 가을 추수가 시작됐다. 한동안 이웃 왕래도 없었고 모두 일손을 놓아 논밭엔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 그해 추수는 흉작 중의 흉작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 흉년이 든 게 아니라, 사람이 곡식을 가꾸지 않아 그리된 것이었다. 그나마 하동장댁엔 머슴 승이와 동식이가 논에 물을 대고 농약을 치기도 하여 평년작에는 못 미치지만, 그런대로 작황이 괜찮았다. 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기 전에 심은 감자와 고구마는 뿌리가 어른 주먹만 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자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집집마다 방문에 창호지를 덧대고 문풍지를 바르고 겨울을 날 채비를 했다. 요즘 들어와 할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객담이 많이 나왔다. 할매가 옆에서 수발을 열심히 들어 조금이나마 고통이 덜어지기는 하였지만, 한파가 몰아치는 동지섣달 한겨울이 오면 할배의 기침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아배는 할배의 건강이 나빠지자, 내년 봄에는 승찬이를 결혼시켜 증손이라도 아버지 품에 안겨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수가 끌려가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이 다가왔다. 조상 제사상에 올리느라 시루떡도 하고 송편도 빚고, 산적을 꿰고 조기도 쪄서 모처럼 하동장 집안에 사람 사는 훈기가 돌았다.

   “경희야! 얼른 준비해라!”

   “엄마, 준비 다 했어예. 인자 가면 됩니더!”

   어메는 경희와 함께 작은 설날 읍내 목욕탕으로 갔다. 연례행사처럼 식구들은 줄줄이 목욕 행차에 나섰다.

   하동장 할배도 내일 아침 입을 설빔과 제사 음식을 준비해놓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남폿불도 꺼지고 모든 게 고요 속에 파묻혔다. 새벽녘 수탉의 첫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봉현마을에 울려 퍼졌다. 마루청 괘종시계는 새벽 한 시를 울리고, 하동장댁 수탉이 홰를 치며 거친 날갯짓을 하자 옆집 수탉도 덩달아 울고 동네 수탉들이 꼬끼오 하고 합창을 했다. 시골의 밤은 수탉의 울음과 함께 깊어갔다. 새벽녘 수탉의 두 번째 울음이 이 고요한 마을에 울려 퍼지면, 새날의 여명은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괘종시계는 새벽 네 시를 알렸다. 여명은 문지방을 넘어 창호지 빗살문 틈새로 스며들고 한밤의 어스름이 소쩍새 우는 대나무밭으로 저만치 물러나면, 하동장댁 바깥마당에도 아침이 찾아왔다. 동녘이 트이고 날이 밝아오자 외양간의 황소와 마구간 돼지가 밥 달라고 보챘다. 머슴 승이가 영수 대신 가축들을 보살피고 닭장 문도 열어주었다. 암탉은 수탉을 따라 마당을 돌아다니며 지렁이와 벌레를 잡아먹고, 보리 짚단 사이의 낟알을 주워 먹기도 했다.

   암탉 한 마리가 제법 큰 지렁이를 물면 다른 암탉이 뺏어 먹으려고 달려들고, 지렁이를 문 암탉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뒤뚱거리며 뒤란으로 도망갔다.

   하동장댁 뒤란에는 닭들의 모이 다툼으로 자가사리 끓듯 바쁜 가운데, 승이가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마당 비질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햇살 그림자는 사랑방 툇마루에 와닿았다. 승이도 비질을 끝내고 제사를 지내러 자기 집으로 갔다.

   오늘은 설날이다. 영철이와 경희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고 제법 도회지 냄새를 풍기는 자기 모습에 스스로 흡족해했다. 일 년에 딱 한 번 새 옷을 입는 날이니 어찌 아이들 마음이 설레지 않겠는가. 제사를 지내러 온 친지들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모두 반가운 인사를 했다.

   어른들도 영철이를 보고, “그렇게 차려입으니 도회지 아이 같네”하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제사상이 차려지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린 뒤, 어른들이 먼저 절을 하고 이어서 아이들이 나이순으로 나란히 서서 절을 올렸다. 그렇게 몇 차례 할배와 아배가 술잔을 올리고, 모두 절을 하고 또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연례행사처럼 할배는 아이들에게 절하는 번과 제사 예절을 가르쳤다.

   아침 먹고 선산에 갈 준비를 했다. 선산은 봉래산 모악등이다. 산소 가는 길은 그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목과 솔가지가 우거지고, 오름길이라 제법 숨이 찼다. 증조할아버지 묘가 보이고 낯익은 친척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개중에는 낯선 얼굴도 보였다. 어른들은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할배는 여기서도 연례행사처럼 무덤에 안장된 조상에 대한 이력을 한차례 읊어댔다. 다음 산소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너른 골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산소 순례는 끝났다.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다녀온 봉현마을 사람들도 제법 생기를 되찾아 노인회장인 하동장 할배에게 인사를 드리려 왔다.

   “하동장 어르신, 그동안 별고 없어십니꺼?”

   “아이고, 어서 오게! 아아들이 가고 나이 온 집안이 썰렁하드마이, 인자는 사람 사는 집 같네. 허허.”

   할배는 모처럼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이웃과 주고받았다.

   “끌리간 아아들 소식은 들었나? 잘 있는지 모르겠제?” 할배가 물었다.

   “우리도 소식이 없어 까깝합니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카더이.”

   일가친지들도 하동장댁으로 인사를 드리려 찾아왔다.

   “아재, 그동안 별일 없었는교?”

   “그래! 자네도 잘 지냈는가?”

   그럭저럭 설날 명절을 보내고, 조상 산소도 들러보고, 사람 사는 모양새가 갖추어지고 있었다. 동네는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세배를 다닐 차례다. 영철이는 큰형 승찬이와 함께 윗마을에서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렸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 마을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기에 세배는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방 구들목을 찾았다. 승찬이와 영철이는 노곤한 몸을 누이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간밤에 잠을 설치기도 했거니와, 종일 산으로 돌아다니느라 피곤에 절어 금세 곯아떨어졌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자, 할매가 어메를 불러 같이 자자고 했다.

   “예! 어무이! 금방 갑니더.” 설거지를 끝낸 어메가 방으로 들어왔다.

   안방에서 할매와 어메가 나란히 누웠다. 할매가 강제징용으로 끌려 간 영수 얘기를 꺼냈다. 할매도 어메도 영수가 보고 싶었다.

   “우리 잔갑이가 있었으마, 농사 걱정 안 하고 살았제. 심이 장사 아이가. 머시든지 못 하는 기 없었는디······.”

   할매 눈앞에 둘째 손자 영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어무이! 우리 잔갑이는 어데 가든지 신임받고 잘 할 낍니더.”

   “그랴! 우리 잔갑이는 잘 있겄제?” 할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섣달그믐날 밤, 희끄무레한 은하수 무리가 석류알처럼 북쪽 하늘에 촘촘하고, 별똥별이 긴 꼬리를 물고 날아가고, 북두칠성과 오리온성좌는 밤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마귀할멈 성운은 오리온자리 발치 아래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얼굴을 불쑥 드러내어 잔별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 같았다. 밤이 깊어가고 텃밭에서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었다.

   정월 대보름날이 다가왔다. 마을 청년들이 힘을 합해 달집을 지었다.

   “자! 저 새끼줄 붙잡고 좀 땡기거라. 여도 좀 붙잡고.” 하동장댁 머슴 승이가 소리치자, “인자 다 돼 간다. 승이! 거 좀 잡고 있거라.”하고 청년회장이 응답했다.

    달집을 다 짓고 나자 청년회장이 나서서 행사를 진행했다. .

   “자! 달 뜹니더. 노인회장님하고 이장님 이리 나와 주이소. 인자 달집에 불붙이믄 됩니더.”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맞추어 달집에 불을 질렀다. 아낙들은 달을 바라보면서 집안 무사태평과 소원성취를 빌며 달맞이 절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달집을 태워 한해의 액을 날려 보내고, 아이들은 손을 잡고 달집 주변을 돌며 강강술래를 불렀다.

   하동장 할배도 한해 액막이로 손발톱을 잘라 한길에 내다 버리고, 회관 마당에 나와 그동안 소원했던 인사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봉현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두 손 모아 천지신명께 끌려간 아이들의 무사 안녕을 빌고, 금년 농사도 잘되고 가족 모두 건사하기를 빌었다.

   남자아이들은 당연히 쥐불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달집에서 숯덩이를 꺼내 긴 철사로 매단 깡통에 집어넣고 돌리면서 논두렁과 밭 언덕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하면 그 해 논밭에서 들쥐가 사라지고, 병충해가 생기지 않아 그 해 농사가 잘된다고 했다.      

   입춘이 지나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봄이 찾아왔다. 하동장 셋째 손자 영철이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영철이도 큰형 승찬이처럼 시내에 하숙집을 구해놓고 학교에 다녔다.

   아배는 그동안 미루어왔던 승찬이 결혼을 할배와 의논했다. 자녀들의 학비와 승찬이 결혼 준비를 위하여 논밭을 팔기로 했다. 장손 승찬이 나이가 벌써 스물하나가 되었다. 할배도 승낙하고 아배는 미리 점찍어 두었던 처자 집에 중신어미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켰다.

   드디어 하동장댁 장손이 장가가는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포근한 날이 계속되어 친지들도 모두 날을 잘 받았다고 칭찬했다. 막상 결혼식 당일엔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결혼식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봄나들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쌀쌀한 날씨에 다들 몸을 움츠리며 옷깃을 여미었다.

   “어이! 친구 상철이 아이가! 어서 오게나.”

   아배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반갑게 맞으면서 말했다.

   “유갑이! 축하하네, 장남이 버시로 이래 됐나?”  

   아배 친구 상철이는 신랑 승찬이와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아배와 어메와 신랑 승찬이는 하객들을 맞이하면서 연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사회가 결혼식 시작을 알리고 주례가 자리에 서고 승찬이는 신랑 입장과 함께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승찬이는 요즘 보기 드물게 전문학교에 다니는 인재에다 집안이 자랑하는 수재였다. 곧 유학을 가거나, 아니면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고, 승찬이 신부도 중학교를 졸업한 숙녀로 장인 될 사람은 국민학교 교장을 지냈다. 결혼식 기념사진을 찍는데, 신랑 친구가 서넛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또래 일가친지들이었고, 학교 친구는 몇몇이 되지 않았다. 이기적인 영찬이에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승찬이는 결혼식을 치르고 폐백을 마친 뒤 신부와 함께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오래간만에 하동장댁엔 웃음꽃이 만발하고 일가친지들이 모여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고기와 음식을 나누었다. 하동장 할배는 연신 미소를 지으면서 흐뭇해했다. 일가친지들이 하동장 할배의 만수무강을 위하는 건배사를 연거푸 외치자 할배는 신이 났다.

   몇몇 친지들은 술에 취해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여 모두 흥에 겨웠다. 종일 부엌일 하던 어메와 경희도, 손님 뒷바라지에 심부름하느라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할매가 부엌으로 들 어와 어메를 보고 일렀다.

   “메느리도 욕 마이 밨다. 야들아 너거도 들어가서 좀 쉬거라. 설거지는 낼 해도 된다. 경희야 에미 뗄꼬 방에 들어가거라.”

   어메와 경희는 방에 들어가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우리 잔갑이가 있었으마 얼매나 좋을꼬.“ 어메가 한숨을 지으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엄마! 잔갑이 오빠는 잘 있을 끼요!” 외동딸 경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영수가 소를 부리며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보리타작과 모내기를 하고, 벼 추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집안 농사와 대소사 힘든 일을 다 해왔던 걸 이야기하면서 모녀는 지난 일을 회상했다.

   추억은 두루마리처럼 펼쳐졌다. 봄철에는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영수는 어메를 따라 산으로 나물을 캐러 다니면서 엄나무 순과 다래 순과 두릅을 따기도 하고, 참나물과 명이나물과 고사리를 꺾기도 했다.

   “엄마! 여기 골에 두릅이 수두룩 합니더.”

   “잔갑아. 내 좀 있다 갈끼니께, 니가 먼저 따고 있거라.”

   영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야! 얼른 이쪽으로 오이소. 다래 순도 엄청시리 많네예!”

   산나물이 보자기와 망태에 가득 찼다. 어메는 머리에 이고 영수는 등에 짊어지고 마을로 내려왔다. 집에 와서 멍석에 산나물을 널어 말려서 장아찌를 담거나 겨울에 묵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다.      

   하동장 장손 승찬이는 결혼하고 나서도 국비 유학 시험 준비를 계속했다. 그의 아내도 그런 남편이 대견스러워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를 해왔다. 내년이면 전문학교를 졸업해서 교사로 발령 날 수 있지만, 승찬이 꿈은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따고 싶었다.

   그는 봄에 국비 유학생 선발 시험을 치렀다. 승찬이는 내심으로 큰 기대를 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세 명을 뽑는 시험에서 당연히 될 거라는 소문난 수재 승찬이가 떨어졌다. 그날 승찬이는 술에 만취하여 새벽녘에 친구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매일 술을 마시면서 흐트러진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내년에도 있는데 와이리 캅니꺼! 인자, 이라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입시더!” 아내가 하소연했다.

   그는 술에 만취하여 아내의 말도 듣지 않았다. 아내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술만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술주정까지 하면서 행패를 부렸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제발 술 좀 그만 마시고, 정신 차리거래이! 배 속에 있는 아를 생각해서라도!” 어메가 승찬이 살림집을 찾아와서 타일렀다.

   어메가 큰아들에게 하소연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지 애비 술주정을 고대로 물려받았구먼, 우짜믄 좋노.”

   어메는 혀를 끌끌 차며 며느리 손을 잡고 “우짜믄 좋노, 야야!”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넋두리를 했다. 울적한 마을을 안고 그녀는 봉현마을 하동장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승찬이 장인이 딸의 하소연을 듣고 딸네 살림집을 방문하였다. 그날도 승찬이는 만취한 상태로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웬 놈을 집에까지 끌고 왔노! 남편이 시뻘겋게 눈 뜨고 있는데, 이 기집이!”

   인사불성이 된 그는 장인인지 누군지도 모르고 아내 뺨을 때렸다. 장인이 말리자 오히려 장인을 밀어붙이면서 손찌검까지 했다.

   장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천하에 후레자식이로고.‘

   그해 여름에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던 할배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승찬이는 본가로 달려갔다. 할배는 숨을 헐떡거리며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장손을 불렀다. 승찬이를 머리맡에 앉혀놓고 장인에게 행패를 부린 손자를 나무랐다.  

   “사 사 사람이, 사 사 사람 구 구 구실해야, 사 사 사람이제.”

   승찬이는 할배 임종을 앞두고 무릎을 꿇어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할배가 힘없이 손자 손을 잡으면서 “꼬 꼬옥 꼭······”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숨이 더욱 거칠어지고 눈동자는 충혈이 되어 저승사자가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아배와 승찬이와 식구들이 다 모였다. 둘째 손자 영수만 그 자리에 없었다. 영수는 지금 지옥섬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할배는 담이 끓어 올라 더욱 헐떡거리고, 아배는 곁에서 할배 손을 부여잡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손자 승찬이와 영철이는 죽음과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할배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자 정신이 잠깐 돌아온 할배가 “잔 잔 잔갑아······”하고 둘째 손자를 부르다가 눈을 감았다.

   아배는 할배 초상을 집에서 5일장으로 치르겠다고 친지들에게 알렸다. 시골집이라 해도 집에서 초상을 치르기에는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아낙들의 일손이 턱없이 모자랐다. 상주인 아배와 승찬이와 영철이는 상복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애고 애고 하고 곡을 하였다.

   집안은 마치 시장터처럼 왁자지껄했고, 산소를 시루봉 능선으로 해야 한다는 둥, 선산으로 해야 한다는 둥, 집안 어른들의 갑론을박 속에 모악등 선산으로 묫자리가 정해지고 일사천리로 장례 준비가 진행됐다.

   일가친지와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돌리고, 돼지를 잡고 떡을 마련하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천막을 쳐서 바깥마당에도 손님을 모셨다. 연로한 분들은 사랑채에 모시고, 안방에 관을 모셔놓고 장례를 치렀다. 할배 5일 장례를 치르고 탈상하고 나자, 승찬이가 아배와 할매에게 이제부터 농사는 소작을 주고, 양식은 소작료로 거둔 쌀로 하자고 말했다.

   “아부지! 할매! 인자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소작 주입시더! 지도 내년 봄이면 교사로 발령 날 끼고, 봉급 타서 살림에 보태겠십니더. 소작을 주입시더!”

   아배도 할매도 승찬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농사는 소작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밀린 머슴 승이 새경은 뒤주에 있는 쌀을 팔아 현찰로 주었다. 승이는 머슴살이를 마치고 일주일 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봉현마을을 떠났다.

   승찬이는 약골 체질에 5일 동안 상주 노릇을 하면서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몸살까지 났다.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곯아떨어졌다. 할배가 근심 어린 얼굴로 승찬이 꿈속에 나타났다.

   “내 무덤에 흙도 안주까징 안 말라꺼마! 니는 머시 급하다꼬 승이를 내보냈노! 승이 없이면 농사는 우째 지을라 카노? 소작 주믄 그기 어데 입에 풀칠하고 남는 기 있을라꼬!” 할배가 꾸짖었다.

   승찬이는 자면서도 할배가 하는 말에 대꾸했다.

   “승이가 농사 짓나, 소작해서 짓나 거기 거긴데. 머시 다릅니꺼! 지도 졸업하믄 봉급 받을 꺼 아입니꺼!”

   승찬이가 다시 말을 하려고 하자, 할배는 “인자, 우짜믄 좋노!”하고 쓴 입맛을 다시며 사라졌다.

   승찬이는 다음 날 어젯밤 꿈이 찜찜했지만, ‘할배는 인자 저세상 사람인데. 내가 장사 치른다꼬 심이 들어서 헛꿈 꾸었나 보네’하고 무시했다.   

   그해 하동장댁 농사는 모두 소작을 주었다. 여름에 장마가 평년보다 달포가 더 길어지고, 홍수로 대흉작이었다. 소작을 준 논마다 소출이 얼마 되지 않아 승찬이가 말했던 소작료로 받은 쌀로는 식구들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동장댁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집에는 농사짓는 사람도 없고, 승찬이와 영철이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 쓸 일만 있지, 돈 버는 사람은 없었다.

   할매가 한숨을 지으며 이럴 때 잔갑이라도 있었으면 농사일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할매는 새삼 둘째 손자 영수가 보고 싶었다.

   그해 겨울 몹시 추운 날 밤, 아배는 읍내에 볼일 보러 갔다가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벌고개로 넘어오고 있었다.

   집 한 채 없는 고갯길을 오르는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눈보라가 몰아쳐 아배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목덜미를 감쌌다. 그는 손을 호호 불며 벌고개 책바위 모퉁이를 돌다가 그만 미끄러져 언덕 밑으로 떼굴떼굴 굴러떨어졌다.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팔다리 골절상에 머리까지 크게 다쳤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고개 비탈 고랑에서 아배는 꼼짝달싹하지 못한 체, 그대로 새벽을 맞이했다.

   읍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포등을 들고 어메가 경희와 함께 마중을 나갔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모녀 앞길을 가로막고 눈이 쌓여 걷기도 힘들었다. 책바위 모퉁이를 돌아갈 즈음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 어메가 자세히 들어보니 남편 목소리 같았다.

   그녀는 경희더러 언덕 밑으로 내려가 보자고 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남편이 고랑창에 처박혀 정신을 잃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 놀라 어메는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 남편에게 덮어주고 경희를 시켜 마을 장정들을 불러오게 했다.

   장정들이 리어카를 끌고 와서 아배를 싣고 봉현마을로 돌아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온 아배는 머리를 다쳐서 인사불성에다 동풍까지 겹쳤다. 하동장댁 집안에 난리가 났다.

   “야야! 이기 무신 일이고! 아이고! 이기 무신 난리고! 야들아! 아부지 안방으로 퍼뜩 옮기거라.” 할매가 소리쳤다.

   다음날 아배 소식을 들은 승찬이와 영철이가 달려왔다. 아배는 혼수상태에서 끙끙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아이고! 우짜믄 좋노? 우째해야 하노? 병원에 모시고 가야 안 하나?” 어메가 큰아들을 보고 말했다.

   승찬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허둥댔다. 오전에 아배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집에 돌아온 승찬이가 할매에게 말했다.

   “할매요! 아부지 저래 됐는데, 수술하고 치료할라 카믄 돈이 있어야지예. 천상 논 몇 마지기 팔아야겠십니더.”

   하동장 집안에 돈 버는 사람도 없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밭 팔아 손자들 학비에, 아들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니 할매는 기가 찼다.

   아들은 아직 혼수상태에서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지, 손자들은 학생이라 돈 들어갈 구멍만 있지, 할매로서도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큰손자 승찬이 말대로 논을 팔아 병원 치료비를 감당해내야 했다.     

   이듬해 봄에 승찬이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발령났다. 곧이어 승찬이 아내가 딸을 출산하였다. 하동장댁 장손 며느리가 첫 딸을 순산했다.

   승찬이의 고약한 술버릇이 되살아났다. 밤새 술을 퍼마시고 새벽녘에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들어오지를 않나, 노름판에 뛰어들어 월급도 송두리째 날리고 집에는 돈도 한 푼 갖다주지 않았다. 할매는 할배가 장손에게 ‘사람이 사람 구실 해야 사람이제.’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승찬이는 술과 노름과 여자에 미쳐 가산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밤새 노름하고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해서 쾡하게 졸린 눈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학교에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었다. 교장이 그를 불러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자 그는 당황하여 할배 초상 치르고, 아버지가 중상을 입어 간호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고 얼무버렸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승찬이가 밤늦게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여자를 데리고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떤 학부모가 보았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며칠이 지나고 교장이 다시 승찬이를 불렀다. 학부모가 목격한 그대로 교장이 묻자 승찬이는 발뺌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교장으로부터 선생으로서 위신을 손상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 애비한테 배운 술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술주정에다 노름과 여자에까지 빠졌으니, 월급은커녕 봉현마을에서 애비 치료비로 논밭을 팔아 가져간 돈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양식은 봉현마을 본가에서 갖다 먹기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갓 태어난 딸 분유 먹일 돈도 없어 승찬이 아내는 미음을 끓여 아기에게 먹이곤 했다.  


   여름이 되자 할배 첫 제삿날이 돌아왔다. 하동장 할배가 늘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장손은 여태 오지 않았다. 귀여움을 한 몸에 독차지하던 막내 손자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승찬이와 영철이가 도착했다. 식구들은 이미 제사 준비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매가 신세 한탄하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잔갑이가 있어으마, 논도 밭도 안 팔았을 낀데. 영감이 장손만 공부시키믄 된다 캤는데, 다 무신 소용 있는 기요! 우리 잔갑이가 있어서마, 이리 안됐을 낀데.”

   어메가 승찬이와 영철이를 흘긋 쳐다보고 나서, 시에미한테 눈짓을 하였다. 할매는 둘째 손자 영수가 없는 하동장 집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져 오늘따라 마음이 더욱 허전했다.

   그날 밤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고 식구들 모두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다. 할매가 사랑채로 건너와 어두컴컴한 방안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천정을 쳐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은 영감이 거기서 할멈을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할멈, 우짜믄 좋노? 시방 집안 살림 거덜 나고, 장손은 패작이나 부리고, 내가 할멈한테 할 말이 없네. 진작 할멈 말 듣고 잔갑이도 공부 시킸으믄, 우리 집안 이래는 안됐을 낀데.”

   영감이 할매에게 미안해서 그러는지 생전에 안 하던 얘기를 늘어놓았다. 할매는 기가 찼다. 그래도 영감 혼백이 나타나서 자기 잘못을 말하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영감! 우째 저승길이 얼매나 멀다고 안주까징 가지도 못하고, 이래 구천을 떠돌고 있소!”

   할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감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눈을 크게 뜨고 영감 혼백에게 말했다.

   “영감! 이녁이 말한 대로 인자는 망구 소용없다 아이요. 저승 가거든 우리 잔갑이나 잘 되구로 도와주소. 퍼뜩 가던 길이나 가서 난중에 저승에서 보입시더. 천지 신령님! 우짜든지 구버살피주이소! 우짜든지!”

   영감 혼백이 사라지자 할매도 잠이 들었다.      

   가을 농사 소작으로 거둬들인 쌀이 창고에 얼마 남지 않았다. 할배 돌아가시고 겨우 일 년이 지났는데, 하동장댁 살림이 삼 분의 일이나 줄어들었다. 돈을 쓰는 사람뿐이니 재산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승찬이는 부산에 신혼살림을 차려놓고, 본가 논밭을 팔아 돈을 챙겨갔다. 그는 술과 노름과 여자에 팔려 빚까지 짊어졌다.     

   이듬해 봄에 승찬이가 술에 취해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여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긴급 뇌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혼수상태에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일주일 뒤 깨어난 승찬이는 다시 전신 마취 상태에서 팔다리와 갈비뼈 골절상 2차 수술을 받고 산소통에 의지했다. 그래도 젊어서 그런지 회복 속도는 빨랐다.  

   그는 한 달여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 두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엊그제 퇴원했지만, 재활 치료를 위해 계속 병원에 다녔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승찬이도 거동하는 데 지장이 없자, 학교에 복직하여 선생질을 계속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슬슬 못된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일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 새벽에 들어왔고, 바지는 다 구겨져 쪼글쪼글하고 담배 냄새가 몸에 절어 매캐한 냄새까지 풍겼다.

   승찬이가 할매를 찾아왔다. 뜬금없이 대놓고 논을 팔겠다고 했다.

   “야야! 만다꼬 또 논을 팔라카노? 무신 일이고?” 할매가 물었다.

   “할매요! 지가 팔겠다는데, 무신 이유가 필요합니꺼?”

   “아이고! 영감! 장손이 하동장 집안 재산을 다 팔아묵을라 카네요! 영감이 머라꼬 말 좀 해보소!” 할매가 울먹였다.

   다음 날 승찬이는 읍내 부동산에 논을 내았다. 할매는 손자를 말릴 힘도 없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 기, 빨리 죽어야 할 낀데. 못 볼 꼴 다보고 인자 우짜꼬?’

   할매는 그날 밤에 사랑방에서 목을 매달았다. 경희가 통시에 가다가 사랑채에서 끄억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쪼르르 어메에게 달려와 사랑채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어메도 집히는 게 있어 얼른 방문을 열고 사랑채로 달려갔다.

   “아이고! 어무이! 이라믄 안 됩니더. 우짤라꼬 이랍니꺼!”

   어메는 경희를 불러 할매가 목에 걸었던 끈을 풀라고 하고, 밑에서 할매 몸을 떠받쳤다. 경희가 할매 목에 걸린 끈을 풀고 나자 할매가 푸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할매는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면서 말했다.

   “와 내를 못 죽구로 하노! 내가 늙어서 못 볼 꼴 다보고, 인자는 죽을라 칸다! 메느라, 내를 와 살리났노!”

   어메는 할매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다.

   “어무이, 이라믄 안됩니더! 지 보고 우째 살라꼬 이래 캅니꺼!”

   한밤중에 초상이 난 것도 아닌데, 하동장댁 사랑방이 울음바다로 변했다. 옆집 사람이 할매 초상이 난 줄 알고 급히 달려와 보니 두 고부가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이기 무신 일이고. 할배 기일도 안주 멀었는데······.‘

   이웃은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 옆집 사람이 할매에게 간밤에 왜 두 고부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는지 물었다. 할매는 장손이 행패를 부리고 가산을 탕진해서, 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죽을라꼬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네 입이 무서워서 그냥 영감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했다. 영수가 없는 하동장 집안은 승찬이가 팔아먹은 논밭만 해도 할배 재산의 거지반 가까이 되었다. 할배가 떠난 하동장댁은 쓸쓸함마저 감돌고 가세는 이미 많이 기울었다. 텃밭 감나무에서 소쩍새가 ’소오쩍 소오쩍‘ 하며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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