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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7 참혹한 지옥섬

   참혹한 지옥섬      



         

   지옥섬은 참혹했다. 영수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탄광의 일본인 우두머리 감독의 이름은 ‘가또’였다. 그는 원래 직업 군인이었으나 팔을 다쳐서 전역하여 조선인 노역을 책임지는 감독 역할을 맡았다.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했으며, 옆에 가면 찬 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냉혈한이었다.

   영수 일행이 채탄 야적 작업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멀리서 딸까닥 딸까닥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영수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입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는 긴장이 되고 공포심이 엄습해오면, 입안이 마르기 시작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을 더듬거리다가 심할 때는 벙어리처럼 말을 못 하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애비의 폭력과 횡포로 생긴 트라우마였다.

   가또가 앞을 지나가자 영수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덜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가또가 말없이 지나갔다. 영수는 전신에 맥이 탁 풀리고 힘이 빠져 마치 팔다리에 쇠뭉치를 매단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가또는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짐승 취급하고 인간으로서 못 할 짓도 서슴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작업하다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가혹한 몽둥이찜질을 가했고, 어린 노동자가 힘에 겨워 조금이라도 쉬면 여지없이 “바카샤로! 조센징!”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 노동자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 병사로 처리했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에겐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혹사당하며 석탄을 캐다가 굴이 무너져 다리만 흙더미에 깔리는 경우엔 다행이고, 천정에서 돌이 떨어져 낙반 사고로 머리가 찢어져 피가 얼굴을 타고 빗물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사고도 있었다. 이를 본 같은 작업조 노동자들은 공포에 치를 떨었다.

   그래도 하루 할당량을 마치고 갱도 밖으로 나오면 이제야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나마 주는 깻묵 밥이라도 많이 주면 견딜 만할 텐데, 그마저도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굶주림을 참지 못한 노동자 몇 명이 밤중에 부식 창고 음식을 훔쳐먹으러 갔다. 그들은 낮에 봐두었던 미로를 따라 몰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배불리 음식을 훔쳐먹고, 욕심을 부려 허리춤에 음식을 싸매고 창고에서 빠져나오다가 감시병에게 발각되었다. 감시병이 총을 겨누자 모두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붙잡혔다. 그들은 손발이 묶여 창고에 갇혔다가 다음 날 다른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 구타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아야! 아야! 아, 아 아.” 종국에 가서는 신음도 들리지 않았다.

   가또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질렀다.

   “창고 음식을 훔쳐 먹으면 총살이다! 알겠나?”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은 가또의 얼굴만 봐도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고 제대로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영수도 배가 고파 밤마다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곤 했다. 징용 노동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려 밤마다 물을 퍼마셨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통시깐에 가서 소변을 보는데, 소변을 보러 오는 노동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통시에 다녀온 후, 영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 눕자마자 창고 음식을 훔쳐먹다가 몽둥이 매타작을 당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몰골이 떠올랐다. 그중에는 영수를 형처럼 따르던 어린 노동자도 있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그들의 비명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고 축 늘어진 몸뚱어리가 영수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환영이 보였다. 환영을 쫓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기를 여러 번 해보아도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새벽녘에야 선잠이 들었다.   

   잠결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가혹한 중노동은 쉴 새 없이 계속되었다. 영수는 굴속에 침목을 깔고, 천정과 옹벽에 받침대를 괴고, 하루도 쉬지 않고 땅굴을 파고 석탄을 캤다. 눈만 뜨면 해저 땅굴 막장에 들어가서 12시간 동안 일하고, 깻묵 밥을 먹고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쉴 틈도 없이 채탄을 실어 날랐다. 징용 노동자들은 노예 취급받으면서 혹사당했다. 체질이 약한 노동자는 병들어 몸져눕고, 영수처럼 덩치가 크고 시골에서 일깨나 해 본 사람들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늘에 시커먼 비구름이 잔뜩 껴서 바깥은 어두침침했다. 찬바람이 목 언저리로 파고들어 와 몸을 쪼그라들게 만들고, 거친 파도는 사나운 늑대 무리처럼 섬으로 달려들었다.

   가또가 작업 지시를 내리자 영수 일행은 갱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교대를 했다. 교대를 마친 노동자들은 전신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써서 흰 눈동자만 보이고, 그들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마치 지옥문을 지키는 저승사자 조각상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봉현마을 동수도 있었다.

   “영수야! 몸조심해라!” 동수가 지나가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수 니도 몸조심하고, 아푸지 말거라!” 영수가 응답했다.

   막장에 도착한 영수는 재래식 도구를 이용해 채굴을 시작했다. 석탄 가루가 날리고 분진과 가스로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지만,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에 쉬지 않고 굴을 뚫고 채탄 작업을 했다. 한참 일하다가 채탄 운반조와 막장 일을 교대했다.

   영수 일행이 채탄을 싣고 화차를 밖으로 끌어올리는데, 염려하던 막장 사고가 터졌다. 천정이 무너져내려 작업 인부들이 흙더미와 돌무더기에 파묻혔다. 어린 노동자는 떨어지는 돌에 어깻죽지를 맞아 피가 금세 옷에 베여 검붉게 물들고, 다친 팔은 덜렁거렸다. 노동자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이리 온나. 내가 싸매 주께.”

   영수가 윗옷을 벗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어린 노동자는 영수 등에 업혀 화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돌무더기와 흙 속에 파묻힌 노동자 세 사람을 끄집어내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한 사람은 이미 숨진 채 발견되었고, 흙에도 돌에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두 사람은 하반신을 움직일 수조차 없어,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내보냈다. 막장 노동자들 모두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영수 일행이 사고 처리를 다 하고 나니 막장에 들어온 지 열두 시간이 지났다.

   가또는 험상궂은 얼굴에다 눈알까지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코노야로! 조센징! 바카야로! 조센징! 치쿠쇼메!”  

   멍청한 조센징들 때문에 작업 할당량을 못 채웠다면서, 영수 일행에게 교대하지 말고 계속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옆에서 일하던 징용 노동자들이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졌다. 몇 달이 지나고 소문이 돌았다. 사고로 다친 노동자나 병이 든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상당수가 죽었으며 가또의 지시로 시체를 화장해서 매장했다고 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영수는 주변에 나무도 풀도 없어 계절이 어느 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차가운 바람이 부니 이제 겨울이 왔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그는 승이한테 일 배울 때가 생각났다. 일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거라고 승이가 일러주었다.

   영수는 잠자리에 들었다. 코 고는 소리가 함바 주변을 에워싸고 한낮의 혹독한 노동과 고통도 코 고는 소리에 파묻혔다. 오늘 밤에도 영수는 악몽을 꾸었다. 낮에 죽은 노동자의 환영이 나타났다. 영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데 잘 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고? 크게 이바구 해바라! 잘 안 들린다 아이가!”

   영수는 자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꿈속에서 마치 옆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유령과 대화를 나누었다.

   “행님요! 내는 배가 고파서 못 가겠십니더. 밥 좀 주이소!” 어린 노동자가 영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내도 배가 고프다. 내 한테도 밥 좀 도고!” 덩치가 큰 노동자가 전신에 피투성이가 된 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꿈속에서도 영수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자면서도 그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천지 신령님께 빌었다. 꿈속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 영수에게 말을 걸면서 하소연하니, 영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잠은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그는 거의 매일 밤 환영과 악몽에 시달렸다.

   해가 바뀌었다. 영수가 있는 지옥섬에도 보름달이 떴다. 함바 판자 틈새로 달빛이 비치고, 그는 고향 생각, 할매와 어메 생각이 났다.

   할매! 엄마! 잘 있지예? 경희야! 잘 있나? 달아, 우리 할배, 아배도 잘 계시제?

   지금쯤 고향엔 모내기가 끝났겠지. 영수는 계절 감각도 잊어버린 채 농사 생각에 빠져들어 잠시 고된 탄광 노역을 잊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할배가 통발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본 할배는 영수가 떠나기 전에 뵙던 모습과는 달리 너무 건강하고 정정했다. 꿈은 반대라고 하던데, 영수는 지난밤 꿈이 마음에 걸렸다.

   밤중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함바 지붕에서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벽체가 덜커덩거리고, 함바가 통째로 날아갈 듯이 흔들거렸다.

   다음날 작업을 시작했다. 영수는 지난밤 꿈은 다 잊어버리고 그날 채탄 작업에 몰두했다, 다른 생각을 했다간 자칫 중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징용 노동자들에겐 일상이 해가 뜨고 지는 것일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2교대 12시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고, 온몸에 쥐가 나고, 힘에 부쳐 고꾸라지기도 하여 부상자가 속출했다. 가또의 구타와 폭행이 여지없이 잇따랐다.

   “바카야로! 조센징! 키쿠쇼메!”

   오전에 영수 일행과 교대를 한 작업조가 화차를 타고 막장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노동자 한 명이 중심을 잃어 휘청하다가 발을 헛디뎌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목뼈가 부러져 즉사했다. 나중에 시신을 보니 목은 거의 직각으로 꺾여서 옆으로 돌아갔고, 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주검을 처리하는 것을 목격한 노동자가 나중에 말했다. 작업 중간에 사고로 죽거나 병사한 조선인 노동자 시체를 섬 한쪽에 무더기로 매장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고······.

   강제 노역장 탄광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지옥 그 자체였다. 영수도 막장에서 작업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했다. 작업 중에 다치거나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를 자주 보아온 터라 전혀 새롭지가 않았다. 가또는 노동자들이 사고가 나서 죽든 병들어 죽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영수는 잠을 이루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영수 일행은 일을 마치고 함바에서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딸까닥 딸까닥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순간 영수는 숨을 멈추고 그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지 점점 멀어지는지 쫑긋 귀를 세운 채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를 들었다. 입안이 마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트라우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수는 딸까닥 딸까닥 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질식할 것처럼 숨통을 옥죄어왔다. 노동자들은 달그락달그락하고 쥐가 나무를 갉아 먹는 소리만 듣고도 오금이 저렸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또 한 해가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갱도를 해저 600미터 아래로 파 내려갔다. 해저 700미터부터는 경사가 60도에 육박했다. 막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경사가 급하고 굴 안이 좁아서 제대로 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질 좋은 석탄을 캐기 위해 해저 1,000미터까지 파 내려간다고 했다. 노동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가또의 구타와 폭행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자비했다.

   “아야! 아 아 아······.” 매를 맞던 노동자가 쓰러졌다.

   가또는 쓰러진 노동자가 빨리 안 일어난다고 몽둥이로 그 노동자를 뼈가 없어질 정도로 두들겨 팼다. 신음마저 들리지 않았다. 정강이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피가 줄줄 흘러 신발을 채우고 넘쳐서 주변 흙까지 검붉게 물들였다.

   “느닷없이 개 패듯이 패 가지고, 그냥 사람이 걸핏하면 하나씩 죽어 나가는데,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어.” 살아남은 노동자가 말했다.

   하루 작업 할당량은 채워야지, 갱도 환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지, 노동자들은 막장에서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교대로 쉬면서 채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갱도 일을 마치면 영수는 그날 밤 시체처럼 곯아떨어지곤 했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가또가 조선인 징용 노동자 한 명을 케이블 선으로 마구 패기 시작했다.

   “바카야로! 조센징!”

   “아! 아 야 야! 아 아 아······.”

   노동자가 고통스러워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코노야로! 조센징!”

   “아! 으 으 으 으······.”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또는 무자비하게 쓰러진 노동자에게 또다시 케이블 선을 마구 휘둘렀다. 얻어맞은 팔다리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빗물처럼 상처를 타고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케이블 선에 두들겨 맞은 그 노동자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도 상처가 난 쪽으로 드러눕지도 못했다. 옆으로 칼잠을 자기도 하고 엎드려 자기도 했다. 이삼일이 지나자 얻어맞은 자리는 흉물스럽게 뱀이 지나간 것처럼 자국이 남았다. 그의 피부색은 죽은 사람의 시체처럼 시커멓게 변했고, 맞은 상처에서는 피고름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생사를 넘나들다가 결국 병균이 침투하여 몸이 고름투성이가 되어 죽고 말았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은 그동안 가또의 무자비한 폭력에 벌벌 떨었고, 혹사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겨울에는 바닷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혹한에 떨었다. 가또는 악랄하게 징용 노동자들을 벨트나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 패기도 하고, 신체 부위를 아무 곳이나 발길질해 댔다.

   ‘아이고! 여서 맞아 죽는 거 아이면, 빙신 돼서 나가겠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제.’ 영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수는 두들겨 맞고 죽은 노동자, 탄광에서 작업하다가 추락해 죽거나 돌무더기나 흙더미에 깔려 죽은 노동자, 열악한 생활 환경 때문에 병들어 죽는 노동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또 저넘 눈에만 안 띄믄 되는데······.” 그는 중얼거렸다.     

   영수는 오늘도 하루 할당량을 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잠이 든 그는 아배 꿈을 꾸었다. 칠흑 같은 캄캄한 밤중에 아배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벌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아배가 갑자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영수는 벌고개 책바위 근처에서 아배를 찾으며 불렀다.

   “아부지! 어데 있습니꺼? 아부지!”

   아무런 기척이 없자, 다시 목청껏 소리쳐 아부지를 불렀다.

   “아부지! 내 소리 들리믄 대답 좀 해 보이소!”

   그는 꿈속에서 ‘아부지! 아부지!’하고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가위에 눌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잠이 깨고 마음이 뒤숭숭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교대를 하고 막장으로 내려간 영수는 어젯밤 꿈을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날은 영수 일행 모두 일 잘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쉽게 할당량을 채울 수 있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전신에 땀과 석탄 가루를 뒤집어써서 바닷물에 풍덩 들어갔다가 나오고 싶었지만, 워낙 파도가 사나워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며칠 전에 한 노동자가 바다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갔다. 영수는 꿈속에서 순이를 만났다. 시냇가에서 순이와 함께 소쿠리로 물고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문 화단엔 복숭아와 채송화가 만발하였고 영수와 순이 부부의 아이들이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영수는 순이의 부드러운 머릿결에서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그는 생시였으면, 순이가 내 곁에 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영수는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깼다. 간밤에 꾼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래 무식쟁이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여서 글이라도 배우자! 그래야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촌 무지렁이 신세를 면할 게 아닌가. 마을 주민들에게 괄시받고 살 수는 없다. 같은 함바 아이들한테 하루에 한 자씩이라도 글을 배우자.’ 그는 다짐했다.   

   영수는 외사촌 성국 형 생각이 났다. 외사촌 형은 낙동군에서 제일 큰 한우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농장의 소는 1천 마리가 넘었다.  

   ‘그래! 내도 한우농장을 해보자! 행님한테 배아갔고, 내가 낙동군에서 제일 큰 농장을 맨들어 볼끼라!’ 그는 마음에 새겼다.

   이제 영수는 새로운 목표와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면 외사촌 성국 형으로부터 한우 사육과 농장 운영에 대해 배우고, 책을 통해 축산 지식을 습득하겠다고 다짐했다. 농장주가 되어 직원도 채용하겠다는 야무진 계산도 했다. 그는 밤마다 농장에 나가 가축을 돌보는 꿈을 꾸었다. 눈앞에 농장 모습을 떠올려보기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영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나갔다. 탄광 막장에서 고된 막노동을 해도 꿈이 있어 힘이 났고 희망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영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또가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는 물론이고, 할배가 무어라고 영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서 귓가에 맴돌기만 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환청 속에서 지내기를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잠결에 영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잔갑아, 잔갑아!” 영수는 눈을 번쩍 떴다.

   “니는 와, 여 와 있노? 여서 시방 뭐하고 있노, 집에 빨리 안 들어오고! 잔갑아!”

   “누구야!” 영수가 소리쳐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또 잠시 있다가 ‘영수야’하고 부르는 소리가 할배 목소리 같기도 하고, 아배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는 할매가 ‘잔갑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깜짝 놀랐다. 영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정신은 더욱 예민해지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지옥섬에 다시 아침 해가 떴다. 진절머리 나는 호루라기 소리와 가또의 고함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영수는 갱도 벽면에 동바리를 받치고 갱목을 천정에 대고 레일을 설치한 후에 채굴 작업에 들어갔다.

   막장에서 캐낸 석탄을 화차에 실으면 위에서 도르래로 끌어올려 경사면 레일을 따라 갱도 밖으로 내보냈다. 화차가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나면 자칫 잘못하다간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막장 바닥은 항상 질척거렸고 벽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곳도 군데군데 있었다.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가 노동자들을 덮쳤다. 오늘도 수압을 못 견뎌 막장으로 가는 도중에 갱도가 무너졌다. 다행히 막장과는 떨어진 곳이라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된 하루가 지나고 해가 수평선 바다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영수는 오늘 밤에도 꿈을 꾸었다. 며칠 전에도 탄광 작업하는 꿈을 꾸었다. 가또가 닦달하며 눈에 살기를 품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코노야로! 바카야로! 조센징!”

   꿈속에서도 가또가 소리치는 욕설은 잘 들렸다.

   매질을 당한 어린 노동자는 “아야! 아야!”하고 왜 마디 비명을 지르고 자빠져서 피를 절절 흘렸다.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서 영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하루가 시작되고 노동의 강도는 더욱 심해져서 잠깐의 휴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노동자는 바지에 오줌을 누기도 하고, 대변이 급할 땐 갱도에서 해결하여 바닥에 파묻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전부 공터에 모아놓고, 가또가 일장 훈시할 때마다 영수는 점점 빈자리가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가을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은 공허하고 산만했다. 세찬 바람이 불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겨울은 멀었는데 벌써 날이 춥다. 노동자들의 마음도 으스스해지고 몸도 찌뿌둥했다. 오늘 영수와 함께 일하는 막장 작업조는 동수와 여기서 사귄 만수와 여섯 명이다. 이들은 셋이서 교대로 작업을 했다. 막장에서 채탄 작업을 하다 지치면 뒤에 있던 사람과 교대하여 채굴 작업을 이어갔다. 영수가 교대로 하고 막장 뒤에 따로 수평으로 파놓은 굴에 앉아서 쉬려는데,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노동자 셋이서 갱목을 바치고 석탄을 캐려고 하는 순간, 천정과 벽면이 함께 무너져내려 한 명은 함몰되고 다른 한 사람은 흙더미에 다리가 깔렸다.

   영수 일행은 얼른 삽으로 흙을 파내 인명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막장은 워낙 공간이 협소하고 어두워서 더디게 구조작업이 진행됐다. 드디어 노동자 다리를 누르고 있던 바위를 지렛대로 치우고 꺼냈다. 그의 다리뼈는 으깨지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영수는 입고 있던 내의를 벗어 상처 부위를 싸매고 부상자를 화차에 실어 밖으로 이송했다. 반나절이 지나서 흙더미에 깔린 노동자를 발견하였는데, 이미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부상자를 싣고 갔던 화차가 내려와 시신을 싣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을 본 어린 노동자는 사색이 되어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가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종용했다. 영수 일행이 막장 채굴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데, 겁을 먹은 노동자들이 곡괭이질을 하지 않으려고 꽁무니를 빼고 삽으로 굴을 파는 척만 했다.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갱도 밖으로 나오니 세찬 바람이 불고 빗줄기가 몰아쳤다. 영수도 왼팔을 다쳤다. 기무라가 당분간 노동자들 옷 빨래하는 작업을 하라고 했다. 기무라가 영수를 배려한 거였다. 그가 주말에 영수를 자기 방으로 불러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는 영수에게 친근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날 밤 영수는 죽은 노동자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선잠이 들었다. 밤중에 자고 있는데 잠결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캄캄한 날이 낼이가? 모레가?”

   “응, 모레가 달이 안 뜬다! 그믐 아이가!”

   “그래! 모레 취침 호루라기가 불면, 우리 여기서 나가자!”

   “쉬, 누가 들을라! 어서 자자.”

   다음 날 영수는 그들이 누군지 얼굴을 보고 알았다. 그중에 봉현마을 동수도 끼어 있었다. 영수는 동수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야! 동수야, 내 좀 보자.”

   “어! 와! 말라꼬?”

   “니 참말로 나갈 끼가?” 영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조용히 해라. 니도 같이 갈라믄 준비해라!” 동수가 말했다.     

   지옥섬에서 영수 고향 동무 하나가 사라졌다. 아이 셋은 탈출을 감행했다. 총을 맨 감시병들이 탄광 주변을 돌면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주변에 뭔가 얼씬거리는 게 눈에 보이면 가차 없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동수 일행이 탈출을 시도한 그날 새벽에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고함이 마구 뒤섞여 들렸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심한 구타와 고문은 물론 죽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때였다. 탈출을 감행하던 조선 징용 노동자 셋이 철조망을 넘고 담벼락을 넘다가 마지막 순간에 잡힌 것이다. 잠을 자던 노동자들은 모두 자기 함바 앞에 줄을 섰다.

   가또는 방마다 인원을 파악했고, 영수가 지내던 방에만 세 명이 비었다. 다른 방은 모두 인원수가 맞았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들어가서 자라고 한 뒤, 붙잡은 세 명의 발목과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창고에 가두었다. 날이 밝자 기상 호루라기가 들리고 공터에 다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가또가 열불을 토하면서 하는 말을 통역 담당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야들처럼, 너거도 맞아 죽기 싫으면 내가 말하는 대로 해라!”

   가또는 눈알을 부라리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노동자들을 훑어보았다.

   “만약, 도망가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알았제!”

   노동자들은 모두 “예”하고 대답했다.

   모든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탈출자 셋은 꽁꽁 묶인 채,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들은 처음엔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야야! 아이고! 아이고, 오메!”

   “아이고매! 내 죽는다! 어메!”

   어린 노동자는 이내 신음마저 들리지 않았다. 뒤이어 동수도 비명을 지르다 조용해졌다.

   감시병들이 돌아가면서 세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머리며 몸통이며 팔다리 가리지 않고 매질해대는 바람에 아이들은 머리, 얼굴, 팔다리 할 것 없이 피를 줄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은 축 늘어졌다. 탈출 노동자 셋은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노동자들 앞에서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한 잔인성에 영수는 치를 떨었다. 그는 봉현마을에서 같이 징용으로 끌려온 동무 동수가 사라지자 의기소침해졌다.

   그날 밤 영수도 몇몇 노동자들과 함께 섬을 탈출하는 꿈을 꾸었다. 철조망을 넘고 거센 파도를 헤치고 헤엄쳐 가다가 감시 라이트에 발각되었다. 순시선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쫓기는 영수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거센 파도에 떠밀려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감시병들이 탄 순시선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발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순시선에 탄 감시들이 막대기로 영수 머리와 어깻죽지를 무차별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 아! 아야! 아아아!” 영수는 두들겨 맞으면서 “쪽바리 새끼들아!”하고 욕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발버둥 치면서 자맥질을 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팔을 내저으며 헤엄쳤지만, 파도에 떠밀려 몸은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감시병들의 매타작은 계속되었다. 그는 머리를 얻어맞아서 피가 철철 흐르고 정신마저 점점 혼미해졌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아! 여기서 죽는구나!’ 영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의 시신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바람이 잦아들자 시신 하나가 순시선 옆으로 떠내려왔다. 감시병이 긴 막대기로 시신을 건져 올리려 하자, 영수는 팔을 번쩍 들고 막대기를 잡아당겼다. 팔다리를 만져보니 감각이 느껴졌다. 그의 몸은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영수가 묵은 함바에서 노동자 세 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었으니, 다음날부터 그 함바에 남은 노동자 일곱 명에게 같은 협의를 뒤집어씌워 가또와 감독들이 일대일로 취조를 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방에 붙들려가 협박과 회유와 구타를 당한 노동자들은 “지는 모릅니더! 그 아아들하고 공모한 사실 절대 없었습니더!”하고 말을 해도, 취조를 맡은 감독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들은 신문을 하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노동자가 말을 하지 않자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아야! 아야! 지는 몰라예!” 함바에까지 신음이 들렸다.

   “똑바로 말 안 하믄, 니는 여서 못 나갈 줄 알아라!” 취조관이 말했다.

   고문을 당한 노동자 중 몇 명은 거의 산송장이 되다시피 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틀째가 되던 날, 드디어 영수도 문초를 받기 시작했다. 담당 취조관은 가또였다. 영수는 입안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트라우마의 징조가 나타났다.

   ‘아이고! 인자는 죽었구나.’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고 하는 말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가또는 동수 일행이 탈출하기 한 달 전부터 영수 행적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캐묻기 시작했다.

   ‘탈출한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날이 언제였느냐? 날짜 순서대로 같이 작업한 노동자 이름을 대라’고 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한 달 동안 함께 일한 사람 이름을 다 기억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수는 최근 같이 일한 사람의 이름부터 하나하나 기억해내면서, 사고가 있던 날 앞뒤를 기준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대답을 마쳤다.

   ‘작업이 끝나고 누구와 함께 밥을 먹었느냐’고 가또가 캐물었다. 이것도 영수는 사고가 난 날을 기준으로 해서 기억을 되살려 노동자 이름을 댔다. 가또는 영수가 대답하는 말을 전부 기록했다.

   다음엔 ‘누가 매일 영수 옆에서 잠을 잤는지’ 대답하라고 했다. 영수 옆에 자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서 다행히 함께 잔 노동자 이름은 쉽게 댈 수 있었다.

   가또는 이어서 다른 질문을 했다. 그들의 사전 탈출 계획을 들었거나 낌새를 못 차렸는지 물었다. 영수는 작업하고 나면 밤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여서 그들과 얘기할 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집요한 질문과 문초에도 의심스러운 징후가 보이지 않자, 가또는 영수 문초를 끝내고 함바로 돌려보내 주었다.      

   다음날 영수가 작업을 마치고 나자 취조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취조관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영수를 슬슬 달래면서 정황 증거를 들이대며 유도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영수는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새벽녘이 되자 취조관은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물을 때마다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바른대로 대라. 묻는 말에 사실대로 말해라. 안 그러면 너는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간다.” 취조관이 엄포를 놓았다.

   영수는 공포심이 밀물처럼 엄습해왔다. 입안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고, 벙어리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취조관이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영수는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팽팽한 피아노의 현처럼 긴장이 되어 얼굴 근육이 마구 꿈틀거리고, 턱이 덜덜 떨리고 살까지 떨렸다. 긴장과 공포는 가슴을 파고들었다가 팔다리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영수는 취조관이 묻는 말에 횡설수설했다. 아침이 밝아오자 그는 영수를 풀어주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옷에 배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함바에 들어온 영수는 그대로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자고 있는 영수를 노동자가 흔들어 깨웠다. 아침을 먹고 영수는 그날 외곽에서 채탄을 야적하는 작업을 했다. 막장보다는 한결 쉬웠다. 바람도 불고 시원한 공기도 마시면서 일할 수 있어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도 몸은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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