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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8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영수가 막장 작업 교대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통역 담당이 오라고 해서 따라갔다. 가또였다. 목덜미가 오싹해지고 등골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고슴도치처럼 주뼛 섰다. 애비의 폭행과 횡포로 생긴 트라우마가 다시 나타났다. 영수는 속으로 ‘정신 차리야 된다! 정신 차리자! 호랭이한테 물리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캤다 아이가!’하며 자신을 타일렀다.

   가또는 영수가 사전 공모 계획을 알고 있으리라 의심을 하던 차에 탈출 노동자 중에서 ‘동수’가 같은 동네 동무라는 걸 알아냈다. 드디어 가또의 고문과 문초가 시작되었다. 영수는 이빨을 꽉 깨물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목에 힘을 주었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어지러웠다. 전신에 있는 살이 부르르 떨리고 지옥의 구덩이처럼 한없이 깊숙한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또가 묻는 말도 귀에서 바람 소리처럼 윙윙거리고, 어린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그때 감독 한 사람이 서류를 들고 취조실로 들어섰다. 누가 들어왔는지 영수 눈에는 유령처럼 희미한 형체만 보이고,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귀에 윙윙거리는 소리와 아기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송장처럼 뻣뻣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류를 보면서 한참 얘기를 주고받더니, 가또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영수에게 엄지척을 내보이면서 다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영수는 무슨 말인지, 누가 나가고 들어오는지도 몰라 그대로 취조실에 석고상처럼 앉아 있었다.

   가또가 영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가라고 손을 내밀었다. 여직껏 영수는 반 혼수상태에 있던 환자처럼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모두 몽롱했다. 누가 그를 세게 흔들며 “영수! 영수!”하고 불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떴다. 기무라가 옆에 서 있었다. 함바로 돌아가면서 영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함바에 돌아온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다른 함바에 묵고 있는 노동자와 같은 작업조에 편성됐다. 영수는 ‘아하! 같은 방에서 또 공모를 할 수 있으니께, 다른 방 노동자하고 일하라는 거구나’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첫날 영수 작업조에 덩치가 작은 약골 한 사람이 끼어 있었다. 세 사람이 막장에서 재래식 도구를 이용하여 석탄을 캐고, 다른 세 사람이 화차에 채탄을 실어 운반하는데, 영수와 함께 일하게 된 이 약골 노동자는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듯이 채탄을 퍼서 화차에 실었다.

   이를 보고 영수가 한마디 했다.

   “야! 굴 팔 때는, 곡괭이로 쎄리 쪼사서 씨게 파고, 석탄도 삽으로 퍼서 한쪽으로 모아놓고, 화차에 실을 때도 한 삽 푹 퍼거라.”

   “니는 니 일이나 잘해라. 내는 이래 일하는 기 좋다.” 약골이 말했다.     

   있으나 마나 한 약골에다 일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말귀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해 영수는 분통이 터졌다.

   “야! 니, 어데서 왔노?” 영수가 말했다.

   “와? 내가 어데서 왔는지 그기 궁금하나?”

   “야! 이 새끼야! 니는 내 말이 말 같잖나! 와? 사람 말을 못 알아 듣노!” 영수가 고함을 질렀다.

   영수는 할 수 없이 약골 노동자 한 명이 없는 셈 치고 일했다. 12시간 동안 약골과 한 조가 되어 일했지만, 채탄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영수 일행은 깻묵 밥도 먹지 못하고 쫄쫄 굶은 채로 작업을 계속했다. 영수는 속으로 ‘두 번 다시 이런 넘하고는 한 조가 되믄 안된다.’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채탄 작업을 하여 겨우 할당량을 채우고 갱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무리하게 일한 탓에 영수는 전신이 아프고, 안 쑤시는 데가 없어서 그날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영수와 작업할 노동자는 모두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영수는 내심 ‘아! 오늘은 힘들지 않고 일하겠구나’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사람 중 한 명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막장에 들어가니까 끊임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영수는 속으로 ‘이 자슥 또라이 아이가!’하고 생각했다.

   “조장 아재요! 이래 일하는 기 맞는 기요? 우째 일해야 되는 기요?” 또라이가 말했다.    

   “아재! 입안에 석탄 가루 들어가니께, 입 닫고 조용히 일만 하믄 돼요.” 영수가 말했다.

   “아니! 내 말은 이래하믄 되는지 물어보는 거 아입니꺼! 물어보는 기 나쁩니꺼? 아재요?”

   “아재! 일 합시더, 일! 옆에 와서 귀에 대놓고 소리치믄, 내가 일을 못 하지 않소! 저리 비키나 있으소!” 영수가 말했다.

   오늘도 이상한 사람하고 같은 조로 작업을 하게 되어서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또라이는 어제 약골 보다는 일을 더 잘했다. 영수와 다른 노동자가 쉬지 않고 일해서 12시간 만에 작업 할당량을 채울 수 있었다. 영수는 ‘아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넘이 걸리믄 안 되는데’하고 갱도를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 늦가을 햇볕이 따뜻했다.

   삼일 뒤에 기가 막힌 우연이 찾아왔다. 영수 작업조에 약골과 또라이가 함께 배정되었다. 영수는 통역 담당을 대동하고 기무라를 찾아가서 하소연했다. 둘 중 한 사람을 바꾸어 달라고 읍소를 했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기무라는 영수의 말처럼 약골을 다른 노동자와 교체해 주었다,

   “어! 아재요! 또 보네요. 오늘은 우째 일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소.” 또라이가 말했다.

   영수는 씨익 웃고 나서, 열심히 삽질만 하라고 일러두었다. 석탄을 캐고 땅을 파는 작업은 영수와 다른 노동자가 도맡아 했다. 그날은 무리 없이 작업을 시간 내에 끝마칠 수 있었다. 영수는 속으로 ‘참, 시상에 이런 우연도 다 있네.’하고 빙그레 웃었다.     

   지옥섬에 겨울이 찾아왔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과 파도는 아가리를 벌리고 함바를 집어삼킬 듯이 덤벼들었다. 탄광은 갱도 깊이가 깊어질수록 산소는 부족하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가또는 작업 속도가 느리다고 들들 볶으면서 보이는 대로 노동자들에게 채찍을 가했다.

   사고는 매일 일어났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어떤 갱도에서는 수몰 사고로 조선인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작업을 하다가 웬만한 사고로 다쳐도 가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친 노동자의 상처에 파상풍균이 침투하여 몸이 썩어들어가도 가또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일만 시켰다. 오늘도 영수와 같이 막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한 명이 머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과다 출혈로 다음 날 죽었다. 노동자가 죽으면 병사로 처리하고, 화장해서 묻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동지가 지나고 거센 바람이 눈보라와 함께 휘몰아쳐,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고 눈을 뜰 수도 없었다. 파도는 이상한 굉음을 울리며 섬을 통째로 삼킬 듯이 덤벼들었다. 살벌한 추위와 오랜 굶주림으로 조선인 노동자들 몰골은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자연히 작업 진척이 늦어졌고, 가또는 더욱 악랄하게 노동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몽둥이찜질을 가했다.

   그날 밤 영수 귀에는 지옥의 저주처럼 호루라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딸까닥 딸까닥하는 소리가 저승사자의 발걸음처럼 들려왔다. 낄낄거리며 웃다가 소곤소곤하는 소리, 죽은 동수의 목소리가 들려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 영수를 뒤쫓고 있는 소리도 들리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환영도 보였다. 영수는 잠결에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함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영수야! 이리 온나! 여로 오너라.” 할배가 불렀다.

   검은 옷을 입은 동수가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동수가 손짓하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영수 얼굴을 아는 감시병이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영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채만 한 파도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거세가 몰아치는 벼랑 끝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오면 쏜다! 거기 서라! 서! 서라!” 감시병이 소리쳤다.

   ‘내 동무가 부르고 있다. 비키거라. 내 동수 따라갈 끼다.’

   영수의 낯은 저승사자의 얼굴처럼 창백했고, 눈은 저주받은 악마의 눈빛처럼 번뜩였고, 며칠 굶주린 늑대가 토끼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투는 것처럼 이빨을 드러낸 채 침을 질질 흘리며 감시병에게 다가갔다. 그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로 변했다. 걸어가면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감시병이 영수를 붙잡았다. 그날 밤 그 감시병이 아니었으면, 영수는 저승 제물이 될 뻔했다. 영수의 환청 증세가 더 심해지고, 환영 증세마저 발현되기 시작했다. 영수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졌다.

   다음 날 아침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탄광 갱도 작업이 이어졌다. 영수가 방장 노릇을 잘하고 같은 함바 노동자들을 잘 통솔하는 것을 보고 기무라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기무라가 영수더러 자기 막사로 오라고 했다. 그는 통역을 통해서 영수에게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영수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기무라는 통역하는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고 서투른 조선말과 눈짓과 손짓을 섞어가며 영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 어. 너 한글 잘해? 너 영수, 학교 다닌 거 맞아?”

   “한글 알아요. 학교는 안 다녔어요. 여기서 노동자들한테 배웠어요.” 영수는 몸짓을 섞어가며 의사를 표현했다.

   “나, 너 좋아. 너 진실해. 믿어.” 기무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손짓과 표정으로 통했다. 기무라도 조선 노동자들과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조선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가또처럼 무자비하지도 인정머리 없지도 않았고,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그가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면, 영수는 그에게 믿음이 갔다. 그는 일본인 감독 중에서는 그래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 영수는 방장을 하면서 그에게 많이 의지했다. 영수는 함바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까지 기무라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말은 전하지 않았다.

   기무라도 일본인이고 끌려온 노동자들은 조선인이라 함부로 말을 했다가는 무슨 경을 칠지 모를 일이다. 함바에 같이 지내는 노동자들이 기무라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했다.

   “방장, 감독관하고 무신 이바구 나눴노?” 태희가 물었다.

   “혹시, 탈출 모의나 낌새가 없는지 물었어.” 영수가 대답했다.

   영수가 함바에 돌아와 막 자리에 앉았는데, 딸까닥 딸까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입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찰칵 문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덜컹하고 함바 문이 열렸다.

   가또가 일본도를 차고 영수 일행이 묵는 함바를 불시에 들이닥쳤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딸까닥 딸까닥하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노동자들은 모두 얼음처럼 뻣뻣하게 굳어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저승사자가 온 것처럼 졸지에 함바 안은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가또가 함바 복도를 끝까지 걸어갔다가 휙 돌아서면서 영수를 째려보았다. 영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혀로 입술을 적셔보지만, 입술은 갈라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트라우마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함바 안은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가또는 노동자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더니 휙 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영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벙어리가 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이고 오메! 휴! 살았다!”하는 탄성이 함바에 있던 노동자들의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다음 날 밤에도 영수는 미칠 것만 같은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다. 그가 잠자리에 눕자마자 쥐가 사각사각 갉아먹는 듯한 소리,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 위를 또각또각 걷는 소리, 영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막아보기도 하고, 옆으로 누웠다가 엎드려보아도 환청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똑바로 누우면 이번에는 사고로 죽은 노동자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면서, 깔깔대며 웃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다. 누가 영수를 불렀다.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함바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밤중에 파도가 몰아치는 벼랑 쪽으로 팔을 벌리고 헤헤 웃으면서 걸어갔다. 바닷가 절벽 가까이 왔다. 초소의 감시병이 “거기 서! 서라!”하고 총을 겨누었다. 감시병이 총을 겨누며 가까이 다가왔다. 영수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감시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영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몸에 한기가 몰아닥쳐 정신을 차렸다. 그날 밤 영수는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바깥세상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이었다. 일제가 드디어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통역하는 아이를 통해 들려왔다. 조금 지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일본이 대동아를 잘 먹고 잘살도록 번영시킬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름도 모르는 섬으로 끌려와 죽음의 막장에서, 갱도에서 일해 온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들떴다.

   비행기 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굉음이 들리기도 하지만, 징용 노동자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통역 담당이 서양 놈들이 지금 도망치고 있다고 전해주곤 했다.

   “이기, 그라믄 일본 비행기가 서양 놈들을 때리는 소리 맞제?” 노동자 한 명이 물었다.

   “아, 그래. 맞다. 가또가 그렇다 카더라.” 통역 담당이 말했다.

   그는 뭔가 숨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자리를 떴다.

   징용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 통역 담당이 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영수는 요즘 들어 환청이 잦아들고 환영 증세도 그전보다 더 심해졌다. 몸에는 이상한 증세까지 나타나 갑자기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위가 엄습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까지 이르곤 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추위를 타는 증세는 환청과 함께 점점 심해졌다. 다행히 따뜻한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수가 이곳 탄광에 온 지 햇수로 3년째, 계절로는 세 번째 봄을 맞이했다. 가또로부터 전갈이 왔다. 통역 담당이 모두 공터에 모이라고 전했다. 공터에서 영수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리가 많이 비었다. 탄광에서 사귄 친구들 얼굴도 보이질 않았다. 영수는 그 전에 공터에 모였을 때보다 확연하게 징용 노동자 숫자가 줄어든 것을 느꼈다. 여기에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소름이 돋았다.

   영수 머릿속에는 온갖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가또의 일장 훈시가 끝났다. 영수 일행은 탄광 갱도로 빨려 들어가듯이 막장으로 내려갔다. 오늘도 가또는 가혹한 몽둥이 매질과 채찍질을 가하며 욕설을 마구 해댔다.

   “보케! 코노야로! 바카야로!”

   욕설을 밥 먹듯이 하고, “치쿠쇼메! 쿠소가키!”같은 심한 욕도 매일 듣고 지내다 보니 조선인 노동자들도 타성에 젖었다.

   여름이 다가오자 가또가 수시로 노동자들을 공터에 불러놓고 사상교육을 했다. 위대한 대일본제국과 천황 폐하에 대하여 한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자고, 여러분은 선발된 산업 전사요 훌륭한 황국신민이라면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노동자들을 둘러보며 내선일체를 강요하였다. 전쟁이 끝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영수 귀에는 대동아공영권이니 천황 폐하니 하는 소리만 들렸다. 통역 담당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희들 중 살아남은 자는 천황 폐하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 천황 폐하를 위해 우리의 충성심을 보여주자!”

   노동자들은 매일 선전과 선동 세뇌 교육을 받았다. 점점 총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폭음이 들리기도 했다. 가또가 위대한 천황 폐하의 일본군이 적을 쳐부수는 소리라면서, 일본 제국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영수는 오늘도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공상에 빠져들었다.

   ‘야! 영수야, 니는 누고? 니는 말라꼬 와 여기 있노? 배운 것도 없는 무식쟁이가 와? 여 왔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인자, 니는 여서 죽을 끼가? 아이면 고향에 가서 농사짓고 살 끼가?’ 밑도 끝도 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에게 물으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요즘 와서 영수는 생각을 많아졌다. 자다가 새벽녘에 깬 영수는 온갖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촌무지렁이가 농사 말고는 할 게 없다. 도시 공장 노동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외사촌 성국 형에게 한우 사육농장 일을 배워서 농장을 하자. 배운 게 없는 놈이 도시로 가면 뭐할 게 있을라꼬? 순이와 아들딸 낳고 고향에서 같이 살자. 그게 내 인생이다.’하고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한우 몇백 마리 키우면 아이들 대학 공부 어렵지 않게 시킬 수 있을 테고, 어딜 가도 사람 대접받으면서 괄시받지는 않을 것이다.

   순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순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집에서 살림하면서 착실하게 지내고 있겠지. 설마 딴 놈하고 눈이 맞아서 사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순이가 절대 그럴 여자가 아니다. 순이를 믿자. 영수는 순이와 맹세했던 그 약속을 믿기로 했다.

   ‘순이야! 쪼매만 더 기다리거라이. 내 니한테 쫓아갈 끼다! 우리 그날 밤 느티나무 밑에서 했던 맹세, 잊어믄 절대 안 된다이!’

   영수는 굳게 다짐했다. 전쟁 끝나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내 사랑 순이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함께 살자. 한우 농장 일도 배우자.      

   아침이 밝았다. 해가 뜨면 날마다 포격 소리와 포탄이 터지는듯한 굉음과 비행기 소리, 헬리콥터 소리가 잦아들고 점점 가까이에서 들렸다. 비행기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날엔 모두 갱도로 대피하라고 사이렌이 울렸다. 노동자들도 일본군이 이기고 있다면서, 왜 이리 소란을 떨고 허겁지겁 땅굴로 숨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내 비행기 소리가 멀어지면 가또는 다시 채탄 운반 작업을 독려했다.

   “통역 담당이 일본군이 서양 놈들을 박살 내고 있다고 캤는데, 말짱 거짓말 아이가?” 함바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상식이가 말했다.

   “아재 말이 맞는 거 같네. 왜놈들이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있는 기 분명한 기라.” 큰형 같은 화식이가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맞는 소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비행기가 뜨든, 포탄이 쏟아지든, 총소리가 울리든 갱도 막장에선 들리지도 않으니 막장 노동자들은 쉴새 없이 채탄 작업을 했다. 그러다 화차가 아래위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깥에 서양 놈 비행기가 떴거나 일본군이 쫓기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처음엔 탄광 밖에 무슨 큰일이 난 걸로 알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모든 노동자가 알게 되었다.

   이제 포격 소리가 나거나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바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은 사이렌이 울리기도 전에 갱도로 숨었다. 감독들의 호루라기 소리도 더 이상 노동자들에겐 두렵지 않았다. 어른 노동자들은 자기네들끼리 일본이 망하면 어떻게 배를 빌려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전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영수 일행이 막장에서 작업하던 도중에 갱도가 무너졌다. 노동자 여러 명이 돌무더기에 파묻히고, 천정에서 커다란 돌이 떨어져 노동자 한 명은 두개골 골절로 즉사하였다. 허연 뇌수가 피범벅이 되어 사체 얼굴을 타고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뇌수는 마치 부글부글 끓는 물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를 본 노동자들은 모두 치를 떨면서 공포와 불안에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영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돌무덤 속에 갇혔다.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채탄 운반조 일행이 생존자 구출 작업을 하는데, 막장은 워낙 좁고, 가스도 분출하고, 온도와 습도가 워낙 높아 눈코를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구출 작업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반나절이 지나 매몰된 노동자들의 발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윽고 다리가 보였다. 처음 발굴된 노동자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영수가 보였다. 평소에 자신들을 친동생처럼 보살펴주던 영수가 큰 돌 아래 깔려 있었다. 요행히 머리 쪽은 큰 바위가 서로 엇갈려 공간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조심스럽게 돌을 치우고, 지렛대를 바위 밑에 집어넣고 들어 올리면서 영수 몸을 조금씩 밖으로 끄집어냈다. 한참 만에 영수 몸이 돌무더기에서 빠져나와 들것에 실렸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곧이어 노동자 두 사람이 추가로 발굴되었다. 한 사람은 중태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여태껏 발생한 사고 중에서 가장 큰 사고였다. 가또는 미친개처럼 날뛰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조센징! 코노야로! 보케, 조센징!”

   그는 성질을 부리며 고함을 지르고, 주변에 보이대로 채찍을 휘둘렀다. 험상궂은 그의 얼굴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노동자에게 빨리 뛰어오지 않는다고 몽둥이찜질을 가하기도 했다. 노동자가 넘어지면 군홧발로 머리를 짓이겨 누르며, “코노야로, 바카야로” 소리치며 잔인함을 드러냈다.

   평소에도 그는 빨리 일을 안 한다고 때리고, 느리다고 발로 차고, 마음에 안 든다고 채찍을 가하고, 심지어 기분이 언짢아도 마구 팼다. 징용 노동자들도 숨을 죽여가며 가또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작업하다가 손가락이나 발목을 삐어도, 갱도 바닷물에 살이 헐고 짓물러도 아프단 소리를 하지 못했다. 치료는커녕 욕설과 매질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오후에 또 비행기 폭격이 시작되었다. 기관총 콩 볶는 소리가 들리고 여기저기 노동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막장에서 사고 처리를 다 하고 막 갱도 밖으로 나오려던 노동자들은 도로 안으로 피신했다. 포격 소리가 그치고 막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갱도 밖으로 나왔다. 순이 동생 창식이가 온몸에 총탄과 파편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아랫마을 순이 동무 성구가 창규 시신을 보았다.

   “아이고, 우짜믄 좋노! 순이야! 이기 꿈이가? 생시가?”

   성구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않고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는 지금 꿈꾸고 있는 기다’하고 자신을 타일러보기도 했다.

   그날 밤 영수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가 다시 환청과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화의 장면처럼 통논에서 소쿠리로 물고기를 잡고, 홍수가 난 종답에서 삽으로 메기를 두들겨 잡고, 뒷동산 풀밭에 드러누워 도시를 그리워하는 어린 영수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아배가 영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가 하면, 죽은 노동자들 시신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서 영수를 불렀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영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식은땀을 흘리고 한기가 들었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물, 물, 물!” 그는 마실 물을 달라고 했다.

   영수를 따르던 어린 노동자들이 시중을 들면서 수건으로 그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고, 상처 부위에 수시로 약을 발라주었다. 그는 계속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음 날 감독 책임자 가또가 배낭을 꾸렸다. 다른 감독들과 감시병들도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했다. 가또 일행이 떠났다. 심장을 파고들던 딸가닥 딸가닥하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은 ‘아! 이제 웬수같은 가또 놈이 떠나는구나. 일제가 전쟁에 졌구나.’하고 생각했다. 기무라가 배낭을 메고 가면서, 영수가 깨어나면 주라고 성구에게 쪽지를 전해주고 갔다.

   “만세! 만세! 일본 놈들 다 갔다! 인자는 우리 시상이다!” 노동자들이 소리쳤다.

   같이 소리치며 만세를 부르던 중년의 노동자가 “집에는 우째 갈 낀데요?”하고 주변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해방이 되었건만, 가또 일행이 떠나고 조선인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굶주리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찾아 가또와 감독들이 지내던 막사를 뒤져서 먹을 게 보이면 가리지 않고 입에 넣기에 급급했다. 상한 음식을 먹고 종일 설사를 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며칠간 구토를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갈 위험도 무릅쓰고 김이나 파래를 뜯고 조개를 잡아서 먹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아서 하루하루 연명했다. 며칠 굶은 노동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함바 주변에 있는 풀이든 개구리든, 심지어 땅속에 있는 굼벵이도 잡아 먹고, 허기진 나머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이대로 이삼일만 더 지나면 부상자나 병자 할 것 없이 모두 굶을 죽을 판이었다.

   노동자들은 “인자 묵을 끼 없나? 뭐 묵고 살 끼고!”하고 깡마른 얼굴로 서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해골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병든 노동자들과 전신에 중상을 입은 노동자들은 혼자 거동하지 못해 아사 직전에 이르렀다.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해 하나둘 쓰러졌다. 함바 주변에는 노동자들 시체가 하나둘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사체가 섞으면서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눈 뜨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사체에 파리떼와 구더기가 들끓어 차라리 가또 밑에서 일하던 때가 그리웠다.

   어느 날 섬에 군함 한 척이 도착했다. 미군이었다. 그들은 우선 부상자와 병자를 치료하고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먹거리와 옷을 제공하였다.

   영수는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미군 군의관이 영수 혈관에 링거를 꽂고 항생제를 투여하자 그날 오후부터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나자 영수가 깨어났다. 군의관이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영수는 왼팔과 왼쪽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고, 전신 타박상에 뇌진탕 후유증 증세가 남아 있었다. 하늘이 도왔다.

   다음 날부터 영수는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젊고 건장해서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었다. 머리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왼팔과 왼쪽 발목에 깁스를 했다.

   미군 의료진은 부상자와 병자들을 돌보며 이들이 혼자 거동할 수 있도록 치료를 열심히 해주었다. 영수도 이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고,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우째 된 긴지 누가 아나?” 영수가 자기를 돌봐주고 있는 노동자에게 물었다.

   “행님이 막장에서 일하다가 천장하고 벽이 무너져가꼬, 돌무더기에 깔맀는데. 머리 쪽에는 방구 두 개가 서로 기대서 움직일 수 있는 구녕이 생깄다 카데예. 그래서 머리는 안 다치고,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었는가 싶습니더. 발목하고 팔은 아매도 돌덩어리가 무너지면서 거기를 덮은가 봅니더.” 어린 노동자가 알려주었다.

   일주일 뒤에 배가 출항한다고 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몸을 추스르고 난 뒤라 혼자 군함에 오를 수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고향 가는 배를 탄 영수는 편안한 마음으로 선실에 앉아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졸음을 참고 있었다. 어느샌가 영수도 물밀듯이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잤다.

   이틀 밤낮을 달려 배는 거제도에 도착했다. 선창에는 팻말을 든 사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귀국한 노동자들과 그들을 찾으러 온 가족들로 선창은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영수가 봉림면 현수막을 든 사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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