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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9 돌아온 아비

   돌아온 아비    



           

   3년 만에 하동장 둘째 손자 영수가 목발을 짚고 왼팔에 깁스를 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하여 마치 말라비틀어진 산송장 같았다.

   “아이고! 내 새끼! 어데 보자!”

   어메는 아들 얼굴을 요리 뜯어보고 조리 뜯어보았다.

   “니가 영수 맞나? 잔갑이 맞제!”

   오매불망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을 끌어안고 그녀는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무신 요런 숭악한 꼬라지를 하고 왔노! 내 아들이, 와 이리 됐노! 아이고! 아이고!”

   어메는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노래져 안채 마당에 퍼질러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 넘어 무신 팔자가 이래 숭악하노!”

   실성한 듯 흐느적거리며 통곡하던 어메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남편과 큰아들을 찾았다.

   “야들아! 너거 아부지는 어디 인노?”

   안채에 송장처럼 누워있는 남편을 흘긋 쳐다보고는 큰아들을 불렀다.

   “선희야! 경희야! 너거 오래비는 어데로 갔노? 승찬아!”

   영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사랑채에까지 전해지고 할매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아이고! 내 새끼! 어데 보자, 잔갑아!”

   할매는 반가움에 손자 얼굴을 만져보고는 그만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조상님! 천지 신령님! 이기 무신 일인 기요! 우짜든지 굽어살피주이소! 우짜든지!”

   마당에 나와 있던 경희도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온 집안이 초상집이 되었다. 영수도 흐느껴 울면서 피고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깡마른 얼굴에서 유달시리 불룩 뛰어나온 광대뼈를 타고 주름살을 따라 빗물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매가 치맛귀로 눈물을 훔치고, 손자 손을 잡고 침을 질질 흘리며 안채에 누워있는 아배에게 데리고 갔다.

   “어 어 어, 잔 가 바······.”

   아배가 퀭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부지! 지가 돌아왔십니더! 잔갑이가 돌아왔십니더!”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아베는 반신불수에 동풍이 더욱 심해져서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반가움에 눈물만 글썽글썽했다. 영수는 큰절을 올리고, 아부지 손을 잡고 한참 쪼그려 앉아 있다가 수건으로 아배 입과 턱밑을 닦아주고 일어섰다.

   영수는 자기만 보면, 맨날 고함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행패 부리던 아배가 저런 꼴을 하고 있는 게 안쓰러워 마음이 짠했다. 그는 대청마루에서 할매와 어메에게도 절을 올렸다.

   “할매! 엄마! 지가 왔십니더. 그동안 별고 없어십니꺼?”

   “오냐, 오냐! 잔갑아! 어이 오너라, 내 새끼! 내가 인자 우리 잔갑이 보이께 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잔갑아, 이리 오너라!”

   할매가 두 손으로 손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랴! 고상 많았제, 잔갑아! 아이고! 이래 우리 아들이 돌아 왔으께, 인자는 밤에 다리 쭉 페고 자도 되겠십니더! 어무이?”

   어메가 아들 팔을 잡고 깁스한 팔을 딱하게 쳐다보는데,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부엌에선 경희가 작은 오빠를 위해 정성껏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궁이 장작이 타닥타닥 타면서 쉬하고 진을 내뿜고, 밥 뜸이 들고 있는 가마솥에선 솥뚜껑 틈새로 김이 새어 나왔다. 구수한 된장국 끓는 냄새는 안방까지 진동했다. 외양간 황소도 여물 달라고 음매 하고, 마구간 돼지는 밥 달라고 꿀꿀대며 보챘다.

   오랜만에 할매와 어메와 하동장 식구 모두 대청 교자상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저녁을 먹었다. 할매와 어메에게 오늘은 머슴 승이가 떠난 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건, 듬직한 영수가 있어서 일 게다. 저녁을 먹으면서 경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오빠를 바라보며 무슨 말이 나오나 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영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새벽녘에 수탉이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우는 소리를 들었다. 수탉 울음소리를 듣고 나자 영수는 자면서도 ‘아! 이제 집에 왔구나.’하고 고향에 돌아온 실감이 났다.      

   모처럼 그는 원 없이 잠을 잤다. 아침에 대청마루에 나와 마당을 둘러보았다. 댕댕이 짱구와 고양이 뺑구가 보이지 않았다.

   “짱구야! 뺑구야! 어데 있노? 짱구야! 뺑구야! 일로 온나!”

   뒤란 텃밭에서 고추잠자리를 보고 놀고 있던 짱구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바깥마당에서 메뚜기를 쫓던 뺑구도 옛 주인 목소리를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

   댕댕이 짱구는 꼬리를 치고 뒹굴며 오줌을 질질 싸면서 야단법석을 떨고, 냥이 뺑구도 야옹야옹하며 꼬리를 치켜들고 파르르 떨면서 재롱을 부렸다. 영수 무릎에 앉은 짱구는 신기한 듯 주인 얼굴을 쳐다보다가 손을 핥기도 하고, 품에 안긴 뺑구는 주인 입에 입술을 갖다 댔다가 가슴팍에 잼잼을 하기도 했다.

   영수는 오랜만에 닭장과 돼지우리와 염소 마구간과 소 외양간을 둘러보았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나자, 영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선희가 신랑 동식이와 다섯 살 된 큰 조카는 걸리고, 세 살 된 작은 조카는 등에 업고 친정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잔갑아! 잔갑아 어데 보자! 우리 동상 잔갑아······, 아이고! 니 와 목발을 짚고 있노? 팔은 또 와 이렇노?”

   그녀는 동생을 와락 껴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영수더러 하동장 집안을 대신해서 징용 가라고 말한 게 생각나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반가워서 눈물이 막 쏟아졌다. 곁에 있던 동식이가 와락 껴안으면서 “고생 마이 했제, 처남!”하고 말하는데, 영수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밤이 되어서도 승찬이와 영철이는 학교 핑계를 대고 하동장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날 밤 영수는 식구들과 사랑방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정담을 나누며 밤 깊어가는 줄 몰랐다. 고향에도 보름달이 떴다. 하동장댁 사랑채 위에 뜬 보름달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이고, 저 달을 보니께 좋긴 좋네! 내가 니를 보고 얼매나 집에 오고 싶었는지, 알제! 그쟈!” 영수는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우리 잔갑이가 고향만 보고 싶었제. 할미는 안 보고 싶고, 에미는 안 보고 싶더나?” 할매가 합죽한 입에 웃음을 가득 담고 말했다.

   영수는 할매의 그 말에 할매와 어메를 부둥켜안고 “와, 안보고 싶어겠는교!”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동안 영수를 괴롭히던 환청은 사라지고 환영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그는 깁스를 한 팔과 발목뼈가 붙으면 산소에도 가보고 장터에도 가보고 싶었다.

   다음 날 영수는 목발을 짚고 고향마을 골목길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게딱지처럼 산자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초가와 먼지 나는 신작로와 풀벌레 우는 방죽과 구불구불한 논둑은 예전 그대로인데, 사람 살아가는 인심은 이전만큼 못한 것 같았다.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순이네 싸립문으로 들어서자 마루에서 걸레질하고 있던 순이가 흘긋 쳐다보더니, “엄마야!”하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녀는 영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두 사람이 마당에서 얼싸안고 있는데 싸립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두 사람은 엉거주춤 떨어졌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꺼? 우째 옛날 그대로네예!” 영수가 말했다.

   “그래! 영수 자네는 언지 왔는가?” 순이 엄마가 말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감주 한 사발을 들고 와 영수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그녀가 영수에게 물었다.

   “우리 창식이 소식은 들었는가?”

   영수가 얼른 말문을 열지 못하자, 순이가 불안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영수야! 와? 우리 창식이한테 무신 일이 있나?”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영수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순이가 재촉했다.

   “영수야! 어서 말해바라. 우리 창식이 소식 알고 있제?”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다 말할 수가 없어서 대충 얼무버렸다.

   “창식이는 폭탄 파편에 다쳐갔꼬, 병원에 실려 갔다고 카던데······. 지도 다쳐갔고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십니더.”

   “아이고! 우리 아들 창식아! 우리 창식아!” 순이 엄마가 절규했다.

   순이도 동생 이름을 부르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창식아! 퍼뜩 집에 오거라이. 우리 창식아!”

   영수는 모녀를 다독거리며 창식이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주지 못한 죄책감에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영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순이네 집을 나와 방죽을 걸었다.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요란하게 봉현 들판을 가득 채웠다.     

   그는 돌아온 지 달포 만에 일가친지와 논밭을 다 둘러보고, 열흘 뒤 발목과 팔 깁스도 풀었다. 영수가 귀환한 지 두 달이 지나자 몸에 살이 붙고 환영도 사라져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하동장댁에 훈기가 돌고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할매는 손자를 보기만 해도 얼굴에 웃음꽃이 절로 피었다. 저녁을 먹고 식구들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할배 산소에 가볼 참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영수는 할매와 어메와 함께 집에서 담근 농주 한 병과 할배가 생전에 좋아하던 곶감을 들고 산소로 갔다. 영수가 할배 무덤 앞에서 술을 따른 다음, 할매와 어메와 함께 큰절을 올렸다.

   할매는 할배 생전에도 종종 쓴소리했지만, 오늘은 영감 무덤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우째 그래! 내 말 안 듣고, 똥고집 부리더만! 장손이 하는 기 뭐 있는교! 장손이 집안 풍비박산 냈는데! 뭐? 장손이 집안 일으킨다고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소! 인자는 영감이 입이 열 개라도, 내한테는 할 말이 없을 끼요! 그서 일리 나와보소!”

   할매는 술병에 남아 있던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큰 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영감! 장손이 어데 있는교? 시방 산소에 왔는기요? 맨날 장손, 우리 장손 카던 그 장손은 어데 있는교? 여! 영감 무덤 앞에 누가 와 있는지 보이는교! 잔갑이가 왔소! 우리 둘째 손주 잔갑이가!”

   시에미 넋두리를 듣고 있던 어메가 “어무이!”하고 슬며시 눈치를 주었다. 할매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며느리가 마음 상할 것 같아 말문을 닫았다.

   할매가 인자로운 눈으로 지긋이 영수를 바라보다가 “아비야!”하고 불렀다. 어메도 무슨 말인지 몰라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네? 여 아비 어데 있는데예?”

   영수는 할매가 누구더러 아비라고 부르는지 몰라 의아해서 되물었다.

   “잔갑아! 니가 인자 우리 집 아비다. 하동장 집안 가장이다, 이 말이라! 오늘부터 니가 우리 집안 아비다. 알았제!”

   손자 어깨를 붙들고 할매는 연거푸 아비라 불렀다. 집안에 의지할 남정네라고는 하나 없는데, 듬직한 둘째 손자 영수가 돌아왔고 할매도 고된 삶을 손자에게 기대고 싶었다. 이날부터 영수는 하동장댁 가장이자 집안의 기둥인 아비 역할을 했다.

   선산에서 내려온 영수는 가을 추수 준비를 서둘렀다. 다른 집에 비해 추수가 늦어졌다. 그동안 영수가 한쪽 팔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녀서 몸이 성치 않아 일할 수가 없었기에 추수를 미루어 왔다.

   “아비야! 오늘은 무신 일 할 끼고? 아비야, 니 시방 어데 가노?”

   할매는 둘째 손자가 믿음직스러워 자꾸 말을 시켰다. 어메도 작은아들을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비, 우리 아비” 이 말이 어메 입에 엿가락처럼 붙었다.  

   하동장댁 가장 영수는 가을걷이한 곡식을 뒤주에 가득 채우고 고방에도 나락 섬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영수 여동생 경희는 군청 공무원인 근식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봉림면 근방에서 하동장댁을 아는 사람들은 경희를 일등 신붓감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어렸을 때는 단발머리에 바지 입기를 좋아하던 선머슴아였지만, 지금은 긴 생머리에 스커트를 입은 어엿한 숙녀로 변했다. 영수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여동생 결혼식을 읍내에서 제일 호화로운 예식장을 얻어, 일가친지와 지인들을 모시고 성대하게 치러주었다.     

   날이 갈수록 아배 동풍은 더욱 심해졌다. 바깥 기온이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아배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영수는 아배를 가까운 병원에 입원시켰다. 의사가 아배 상태를 진찰하고 나더니 영수를 불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배는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도 채 못 가서 숨을 거두었다. 영수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르고 탈상을 했다. 승찬이와 영철이는 다음날 학교 수업을 핑계로 저녁을 먹고 떠났다. 할매 곁에는 손자 셋 중에 영수만 남았다.

   밤이 이슥해지자 할매가 어메와 영수를 불러 안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할매가 이부자리를 펴고 나서 가운데에 영수더러 누우라고 하고, 어메와 할매는 영수 양쪽에 자리를 폈다.

   영수는 할매와 어메의 따뜻한 품을 온몸으로 느끼며 밤늦도록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아배 산소 이야기며, 농사 이야기에다 어서 결혼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영수는 아배 첫 제사 지내고 나면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는 모처럼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이제 농한기로 접어들었다. 봉현마을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들판에서 타작하는 소리도 저물었고 마을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영수는 저녁을 먹고 마을회관으로 출근했다. 회관에서 노인회장이 강제징용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고 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제가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인가 뭔가 하는 법을 맨들어가지고 공포했는데, 징용을 할라꼬 하다 보니께 조선 사람들 반발이 무서웠제.”

   노인회장은 영수를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국민징용령을 미루고, 조선총독부가 1939년에 모집이라꼬 얄팍한 꼼수를 써갔고, 강제 동원을 시작한 기라.”

   “쳐 죽일 놈들!”

   동수 할배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갑자기 영수에게 물었다.

   “우째, 우리 동수 소식은 없노? 니는 우리 동수하고 같이 갔는데, 모리나? 동수가 징역을 딴 데로 가뿐나?”

   영수는 머뭇거리다가 “모리겠십니더, 같이 안 가서 지는 몰라예.”하고 대답했다.

   노인회장이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란데 조선 사람들이 호락호락 안하제. 총독부에서 또 속임수를 부리갔꼬 알선이라고 이름만 바까서 관공서에 할당을 내린 기라.”

   이번엔 영수가 무릎걸음으로 노인회장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맨날 면사무소 직원하고 순사가 할당 인원을 채울라꼬 마을을 돌아댕기면서, 징용 영장이 나왔다 캐사믄서 사람을 잡아가꼬 일본 넘들한테 넘깄제.” 노인회장이 물 한 잔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께 젊은 사람들이 안 갈라카믄, 니가 안 가면 너거 아부지 잡아간다고 카니께, 울며 겨자 묵기로 잡혀갔제. 그라고 나서, 강제로 조선 사람들을 끌고 가서 탄광에 보내 뿟다 카더라.”

   그 후로 일제는 국민징용령을 발동하여 1944년 9월부터 마구잡이식으로 사람을 잡아서 전쟁터로, 탄광으로 끌고 갔다고 했다. 대부분 북해도나 구주로 끌려가서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고 한다. 영수는 고향에 돌아와서 비로소 일제의 강제 동원 실상을 알게 되었다. 노인회장의 강제징용 해설이 끝나자,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이고! 이바구해바라! 끌리가서 머 했는지, 시방 궁금하다 아이가!” 마을 이장이 영수를 보면서 말했다.

   “영수 총각! 속 시워이 이바구 꺼내 바라! 총각 이바구 듣고 시퍼서 애간장이 다 녹을라 카네!” 부녀회장이 거들었다.

   영수는 강제 노역 기억을 떠올리기 싫었지만, 동네 주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야사를 시작했다.

   “그라마, 할 수 없지예. 지가 아랫마을 성구한테 전해 받은 쪼가리 이바구부터 하겠십니더.” 영수가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요 메칠 전에 노인회장님한테 이거 무신 말인지 알아바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거부터 시작해야겠네예.”

   첫 이야기는 기무라와 기무라의 쪽지에 대한 후일담으로 시작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기무라가 철수하면서 아랫마을 성구를 통해 전해준 쪽지에는 일본 글과 비뚤비뚤한 한글이 적혀 있었다. 노인회장이 일본말을 해석하고 한글과 이어 붙여서 전해 준 쪽지 내용은 이랬다.

   “우리 할아버지는 조선 사람이다. 나는 재일교포 3세이고 내 이름은 김해 김씨, 김길식이다. 그동안 너에게 내가 조선인 혈통이라는 말도 못 해서 몹시 괴로웠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가거든 건강하게 잘 살아라.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될 거야. 고맙다. 그동안 방장 일 잘 해줘서 고맙다. 김길식이가.”

   그 순간 영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기무라가 우리한테 잘해주었구만요. 그 사람 우리 함바 감독인데, 우리 방 아아들한테 잘 해주었습니더. 때리지도 안 하고, 욕도 안 했십니더!” 영수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우리 함바에 있던 세 사람이 탈출하다가 잡힜거든예. 그래가지고 우리 함바 아아들 모두 취조실에 끌리가갔꼬 일대일로 문초 받고 고문도 당했다 아입니꺼! 그때 기무라! 아니, 김길식 씨 이 분 없어시면 지도 가또한테 매맞아서 죽었을지도 몰라예. 가또 그넘! 숭악한 넘이거든예!”

   영수가 목이 메였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기무라가 자기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빛과 동수가 지옥섬에서 탈출하고 나서 취조를 받을 때 자기를 배려해 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고맙지예! 김길식 씨 아니었으면, 우리 함바 사람들, 악독한 가또 그 넘한테 몽딩이 찜질 당해가꼬, 모두 저세상 사람 됐을 끼라예!”

   영수가 말을 마치자 회관에 모인 노인들은 모두 “그래 맞다! 조선 사람 핏줄은 못 속이는 기라!”하고 맞장구를 쳤고, 아낙들은 “아이고, 그래서 살아 돌아왔구먼!”하고 영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어서 옛날 못 먹고 못 입던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이전에는 춘궁기가 오믄, 보리죽도 묵기 힘들었제. 묵고 살기 힘든께 일본으로, 북간도로 처자식 데꼬 갔제.” 노인회장이 말했다.

   “아! 만주 말고도 저그 억수로 추븐 시베리란가 카는 데도 갔다고 하데.” 동수 할배가 말했다.

   “우리도 묵고 살기 힘들어서, 산에 가서 나무 껍데기 벳기갔꼬 빨아 묵기도 하고, 칡 뿌리도 캐 묵고 도라지도 캐 묵고 했제.” 노인회장이 당시의 힘든 상황을 회상했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 조선인들이 멀리 해외로 많이 이주하였다고 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들은 처음엔 괄시도 많이 받고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고생도 많았다고 했다. 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회장이 정리를 했다.

   “자아! 밤이 늦었으니께, 낼 또 이바구 하고 자로 갑시더.”

   영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기무라가, 아니 재일교포 3세 김길식 씨가 조선 노동자들을 배려해준 게 들통이라도 나서 그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봉현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한겨울을 밤마다 마을회관에 모여, 영수가 들려주는 징용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냈다. 가을에 추수한 고구마를 깎아 먹기도 하고, 강냉이를 삶아 오기도 하고, 콩을 볶아 먹기도 하면서 마을의 인심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징용 노동자들의 참상이 봉현마을에도 전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다 많은 조선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오다 귀향길에 배가 폭격을 맞아 몰살된 사고도 있었고, 악천후 속에서 야미선 이라고 불리던 작은 목선에 몸을 실었다가 태풍을 만나 바다에 수장된 사고도 있었으며, 귀국길에 올랐다가 이백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실종되기도 했던 사고도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복구 청소작업에 투입되어 잔류 방사능에 노출되어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모노세키 항구에 떼로 몰려들었다. 배표가 없어 길바닥에서 노숙하다 하루에도 몇십 명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고, 시체 치우는 일을 하면 배표를 빨리 준다는 말에 열흘 간 그 일을 하고 배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듬해 봄에 승찬이가 동생 영수와 영철이에게 유산을 나누자고 연락을 해왔다. 승찬이 자신은 부산에서 살 거고, 영철이도 지금 서울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농사지을 일이 없다고 하면서 형제끼리 얼른 재산을 분배하자고 했다.

   통보를 받는 삼 형제가 하동장댁에 다 모였다.

   “내가 장남이니께, 절반은 내가 가질란다. 나머지는 너거 둘이 똑같이 나누믄 될 끼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승찬이 형이 하는 말에 영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동생 영철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철이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낌새였다.

   “선희 누부야도 있고 경희도 있는데, 와 영찬이 생이가 유산을 반이나 가지 갈라꼬 하는데? 생이하고 영철이는 객지에서 하숙하고 학교 댕긴다꼬 돈 갖다 쓴 거는 생각 안 하나? 내는 생이 말에 찬성 못 하겠다!” 영수가 말했다.

   승찬이는 영수가 호락호락하지 않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온 영찬이가 성질을 부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뭐시라꼬! 니 말은 내가 유산을 가져다가 썼다꼬?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다른 집도 장남이 반 떼가고, 나머지 가지고 행제들끼리 나눗다 카더라.”

   승찬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영철이가 끼어들었다.

   “맞다! 저 아래 정동 아재도 아들이 서이한테 재산 나누줄 때, 승찬이 생이 말대로 했다 카더라.” 영철이가 거들었다.

   승찬이가 막내 동생 영철이가 맞장구를 치자 큰소리로 말했다.

   “저 아래 아재도 아들이 너인데, 장남 경수 행님이 반 가지고 가고, 남은 반 가지고 동생 서이서 갈랐다 안카나! 무신 말인지 알겠나?”

   “그거는 경수 행님이 농사지으면서 동생들 뒷바라지 다 했으니께 그러는 거 아이가?” 영수가 말했다.

   “니는 아무것도 모리면서 어데서 헛소문만 듣고 그런 소리 하노! 경수 행님 동생들 객지에서 집에 돈 갖다 쓴 기 얼만데,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승찬이가 말했다.

   “맞다! 승찬이 생이 말이 맞다!” 영철이가 편을 들었다.

   영수가 승찬이와 영철이를 번갈아 보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말다툼이 길어지고 목소리가 커지자 승찬이가 심술보가 터져 자기가 한 말대로 안 하려면 영수더리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큰소리쳤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일자 무식꾼이라 생각했던 영수가 승찬이와 영철이가 객지에서 공부하느라 학비와 하숙비로 논밭 판 것을 일일이 따지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섯 남매가 공평하게 분배해도 승찬이와 영철이가 훨씬 많이 가져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대드니 승찬이도 할 말을 잃었다. 첫날은 유산 분배를 하지 못하고 삼 형제 말다툼으로 끝났다.

   다음날 다시 삼 형제는 유산 분배 문제로 언성을 높였다.

   “어제 내가 말한 대로 빨리 끝내자. 나도 바뿌고 영철이도 바쁘다 아이가!” 장남 승찬이가 말했다.

   “내는 승찬 생이 말하는 대로 못 하겠다. 선희 누부야 하고 경희 불러 가지고 같이 이바구해 보자.” 영수가 말했다.

   오후에 선희와 경희가 왔다. 하동장 대청마루에 삼 형제와 자매, 어메와 할매가 나란히 앉았다. 손자들 말을 듣고 있던 할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맞다. 이전에는 장남이 승찬이 말대로 그래 했다. 장남은 조부모, 부모하고, 갤혼 안 한 삼촌도 있고, 안주까징 머리 안 올린 고모도 다 한 집에서 살았으니께, 장남한테 재산을 마이 물려 주었다.”

   할매는 숨을 고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라고, 또 그때는 우리가 눈이 어두버서 아무것도 모릴 때라 그래 했제. 시방은 의논 좋게 해라. 순리대로 해야 안 되겠나?”

   할매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니 승찬이도 영철이도 할 말이 없어 어메 눈치를 보았다.

   “형제 셋이서 우애 있게 지내고, 의논 좋게 하거라. 어무이 하신 말씀이 맞다. 할매 말씀대로 하거라.” 어메가 나섰다.

   “그라믄, 낼 선희 누부야 하고 경희도 오라고 해서 다 같이 이바구해보자.” 영수가 말했다.

   “야들아, 너거들 다섯 남매가 다 모이갔고 마음 상하지 않게 서로 의논 좋게 하거라.” 할매가 매듭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승찬이도 영철이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영수는 승찬이가 닦달할 때도 긴장하거나 불안하지 않았고 입안이 마르지도 않았다. 그를 억눌러왔던 아배의 폭력과 횡포가 사라지면서 여태껏 영수를 괴롭혔던 트라우마도 종적을 감추었다. 지긋지긋한 긴장과 공포의 트라우마는 사라졌다.

   영수가 갑자기 흰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청마루에 모인 하동장댁 식구들 모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영수는 한자로 합의서라 쓰고, 다섯 남매가 똑같이 나눈다는 내용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승찬이와 영철이가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입회인에 할매와 어메 이름도 쓰고, 여기 모인 다섯 남매와 할매와 어메에게 지장을 찍어라고 했다. 할매와 어메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어! 어······ 니가! 아비 니가······.” 어메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무식하다고 업신여김을 당해 왔던 작은 아들 영수가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글도 자기 눈앞에서 쓰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니가! 니가! 아비 니가!” 어메는 이 말만 되풀이했다.

   하동장댁 대청마루에 모인 식구들은 어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했다. 그리하여 하동장댁 재산은 다섯 남매가 똑같이 나누게 되었다.

   재산 분배를 해결하고, 영수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승찬이 생이하고 영철이는 객지에서 살 거 아이가? 내가 할매하고 엄마 모시고 여게서 살 끼다.”

   영수가 고향에서 농사지으면서 할매와 어메를 모시고 살겠다는 말까지 덧붙이니, 장남인 승찬이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할매가 기분이 좋아서, “아비야! 니가 우리 집 가장인기라! 하동장 집안 가장인기라!”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선희가 합의서에 지장을 찍으면서 “잔갑이가 할매하고 엄마 모시고 살건데 더 주야 되는거 아이가?”하고 말했다.

   “그라고보이께, 언니 말이 맞네!” 경희가 응답했다.

   자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승찬이와 영철이는 여기서 머뭇거리다간 지금 받은 재산을 도로 내놓아야 할 판국이었다. 형제가 마지막으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고, 다섯 남매가 한 부씩 나누어 가졌다.

   승찬이와 영철이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할매와 어메에게 큰절을 올리고 그날 봉현마을을 떠났다. 유치원 교사를 하는 경희가 “우리 영수 오빠야! 필체가 승찬이 오빠보다 더 좋네!”하고 칭찬했다.

  기실 영수는 탄광에서 함바 방장을 하면서 같은 방에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글을 배웠다. 모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했기에 영수가 그들로부터 글을 배우기란 어렵지 않았다. 영수는 탄광에서 강제 노역하면서, 글을 배우고 익히던 때가 생각났다.

   ‘인자부터 글은 내하고 씨름한데이! 한 판 붙어 보자이. 내 꼬옥 니를 이기고 말끼다!’

   그날부터 함바 아이들을 붙잡고 영수는 국민학교 1학년 과정부터 글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학교 6년 동안 배울 것을 1년 만에 배우고, 중학교 공부도 태희로부터 일대일 과외지도를 받았다.

   그날 배운 것은 막장에서 쉴 때마다 옹벽에 써보기도 하고, 쉬는 날에는 흙바닥에 쓰면서 익혔다.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 허공에 대고 글을 쓰고 익혔다.

   여름이 다가왔다. 보리타작과 모내기로 시골에선 부지깽이도 달려든다고 하는 농번기다. 영수는 이제 어엿한 자기 논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되었다. 매형 동식이가 거들어주니 보리타작도 모내기도 기계로 쉽게 갈무리했다. 논밭에 심은 곡식은 영수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쑥쑥 자라나, 주변에선 영수네 논밭 곡식이 최고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가을에 영수는 풍작을 거두었다. 추수를 마치고 그는 논 한 마지기를 팔아 부산에 양옥집 한 채를 샀다. 할매는 논 파는 걸 탐탁게 여기지 않아 손자에게 말했다.

   “아비야, 내 죽거든 다 팔아서 부산에 가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무식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영수는 나중에 아이들이 도시에서 학교 다닐 것을 대비해서 집을 샀다.

   겨울로 접어들자 농사일도 끝나고 마을회관 사랑방 좌담회가 다시 열렸다. 동네 주민들이 다 모였다. 영수는 저녁마다 마을회관으로 출근했다. 영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은 밤마다 누가 모이라고 안 해도 모여들었다. 그날은 탄광에서 못 먹고 굶주림에 시달렸던 이야기를 꺼냈다.

   탄광에서 매일 콩깻묵에 현미 밥알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 걸 먹으라고 주는데, 그것도 양이 부족해 배가 고팠다. 징용 노동자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물을 사발로 마시고 자거나, 밤중에 몰래 창고를 털어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다.

   추운 겨울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어른 셋과 아이 하나가 창고를 털러 갔다가 감시병에게 발각되어 어른 셋은 도망치고 아이가 붙잡혔다. 곧바로 매질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아이고! 지발 살리주이소! 목숨만 살리주이소! 시키는 대로 다 하겠십니더!” 어린 노동자가 부르짖었다.

   “바카야로! 조센징!”

   감시병이 목도를 들고 패기 시작하자, 아이는 처음엔 앓는 소리를 내다가 조용해졌다. 감시병들은 시체를 곧바로 매장했다.

   창고 감시가 심해 더 이상 훔쳐 먹을 수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허기를 달래려고 땅을 파서 굼벵이도 잡아먹고, 청개구리도 잡아먹었다. 허기에 못이긴 노동자는 빈대도 잡아먹고 쥐도 잡아 날것으로 먹기도 했다.

   “얼매나 배가 고팠으믄 쥐까징 잡아묵었겠노! 빌어묵을 놈들!” 동수 할배가 흥분하여 말했다.

   “불쌍한 아아들을 그래 배를 곪기고, 몽둥이로 쎄리 두드리 패고! 가또 그넘은 인두겁을 쓴 마구 아이가!” 노인회장이 분노했다.

   영수가 말을 계속했다.

   “배가 고파서 아무거나 막 잡아묵고 하다가, 중독이 돼서 설사도 하고, 토하기도 하고, 심한 사람은 며칠 지나서 죽었습니더.”

   이야기를 듣던 노인들이 혀를 끌끌 차며 치를 떨고, 마음 여린 아낙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청년회장이 분통이 터져 “나라가 힘이 없으니께, 그런 거 아입니꺼!”하고 정부 관리들을 마구 욕해댔다. 오늘도 밤이 이슥하여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영수는 바람도 쐴 겸 아랫마을로 천천히 걸어갔다.

   때는 겨울이라 날씨는 제법 찬 바람이 불고 으스스했다. 영수는 두 차례 헛기침을 하고 순이네 울타리 옆을 지나갔다. 방문이 열리더니 순이가 나왔다. 그녀도 기침 소리를 듣고 혹시 영수가 아닌가 하고 대청에서 담장 너머 얼씬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순이가 나지막이 “영수야!”하고 부르자, 영수가 “어”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순이가 팔짱을 끼자 영수가 힘껏 그녀를 껴안았다.

   “와 이래, 늦은 밤에 돌아 다니는교?” 순이가 말했다.

   “니, 와 이라노! 안 하던 존댓말까지 다 하고.”

   “아이, 몰라예.”

   순이가 코맹맹이 소리로 아양을 떨자 영수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달빛은 두 남녀를 비추고 길게 늘어선 그림자는 하나가 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입맞춤뿐 아니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방죽길을 따라 달빛을 받으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을을 벗어났다가 한참 만에 되돌아오고 있었다.

   “밤이 많이 늦어서예, 인자 들어가이소.”

   그러자 영수가 다시 순이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그녀 귓불을 애무하고 목을 타고 입술을 더듬었다. 순이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거친 숨소리가 나왔다. 영수 사타구니에 힘이 모이고 젊음을 어찌 주체할 수가 없다.

   영수는 그날 밤 순이를 식구들 몰래 사랑방으로 데리고 와서 잤다. 새벽닭이 울자 순이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하동장댁을 나섰다. 영수도 겉옷을 걸치고 순이를 아랫마을까지 데려다주었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아쉬운 듯 한참 껴안고 있다가 헤어졌다.

   날이 밝아오자 영수는 닭과 계란을 경운기에 싣고 읍내 5일 장터로 갔다. 저번 달 추곡 수매도 좋은 값을 받았고, 가축을 키워 판 목돈도 읍내 농협에 저축했다.

   통장에 제법 돈이 모이고, 내년에는 꼭 승찬이 형이 팔아먹은 종답과 웃등 밭을 도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서도 영수를 듬직하게 믿고, 이장은 언제나 노인회장과 영수를 불러 동네일을 의논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그는 마을회관으로 갔다. 주민들이 모여 영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영수야. 내가 니 이바구 안 듣고 자는 날에는 잠이 안 오는기라.” 노인회장이 한마디 했다.

   회관에 모인 주민들도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그라믄, 오늘은 사고 난 이바구 할라 카는데, 괜찮습니꺼?”

   주민들은 “괜찮다”고 하면서 어서 이야기해보라고 종용했다. 영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입을 꾹 다문 채,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있습니꺼. 같이 일하던 사람이 다치믄 치료받아야 안 합니꺼!”

   “그럼, 그렇지! 사람이 다쳤는데, 그넘들이 치료도 안 해주나?” 노인회장이 되물었다.

   “치료는 어데서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고, 다친 자리에 진물이 나고, 고름이 흐르고, 그라다가 병균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만신창이가 되갔꼬, 난중에는 그만 가는 기라예.”

   “어데를 간다꼬?” 눈치 없는 한 아낙이 물었다.

   “아지매, 고걸 꼭 죽었다 케야 알아듣는교?” 청년회장이 거들고, 옆에 있는 부녀회장도 “그렇지”하고 거들었다.

   “또 어떤 때는 감독이 목도를 가지고 쎄리 패는 기라예. 빨리 안 움직인다고 패고, 쉰다고 두들기 패고, 이넘이 쎄리고 저넘이 쎄리고, 쎄리맞은 노동자는 꼬꾸라지갔고 일어나지도 못하는기라예.”  

   조용히 듣고 있던 노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 소리 했다.

   “천하에 몸씰 넘들! 짐승 같은 넘들 아이가! 저거는 자슥도 안 키우나!”

   영수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계속했다.   

   “노동자가 죽으면, 탄광에 작은 쓰레기 소각장맨치로 생긴 벽돌 화장터가 있십니더. 거서 시체를 태워버리는 기라예.”

   모두 침을 삼키며 영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라면 그다음에는 난리도 아닌기라예. 죽은 사람이 입던 옷하고 신발은 먼저 가져가는기 임자라예.”

   “머시라꼬! 그넘들이 옷도 안 주고 일 시키나?” 이장이 물었다.

   “옷은 사치고 밥이라도 마이 주었으면 원이 없었지예” 영수가 주민들 얼굴을 쳐다보았다.

   회관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천벌을 받을 놈들”하면서 가또와 일제를 싸잡아 욕했다.

   개중에 청년회장이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마구 해댔다.  

   “일본 천황인가 뭔가 하는 놈이 책임자 아입니꺼! 그놈이 빨리 죽어야지예! 그놈을 탄광에 처넣어서 일을 시키야제!”

   노인들도 옳은 소리라고 거들었다. 밤이 늦어 모두 고무신을 질질 끌고 회관 마당을 나섰다. 달이 밝아서 골목을 훤하게 비추고,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솟쩍 솟쩍! 솟쩍 솟쩍! 하고 피를 토하듯이 울었다.

   밤이 늦어 영수도 사랑채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장이 영수를 찾아왔다. 영수는 무슨 일로 이른 아침나절부터 이장이 자기를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이장님, 어쩐 일입니꺼? 아침부터.”     

총각 이장 영수, 면 이장회의 대표로 선출

   이장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그동안 봉현마을에 이장할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십 년 동안 동네 이장 일을 해왔는데, 다음 달부터 영수가 이장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제의에 영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노인회장하고 의논해보자고 하고 이장을 돌려보냈다.

   저녁을 먹고 영수는 으레 마을회관으로 출근했다. 회관에는 노인회장과 이장, 부녀회장, 청년회장이 나와 있었고 마을 원로인 노인들도 자리해 있었다. 영수가 회관 방으로 들어가자 이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어르신들, 부녀회장님 오시라고 한 거는 봉현마을 이장을 새로 뽑자고 말씀드리려고 오시라고 한깁니더.”

   이장은 영수를 보고 말을 이어 나갔다.     

   “지가 동네 이장 일을 십 년째 하고 안 있습니꺼. 그래서 새로 이장으로 영수 청년을 추천합니더. 영수가 안주 나이는 젊지만 동네 어르신들 신임이 충만하고, 도리에 밝아서 제가 마을 이장으로 추천해서 어르신들 의견을 들을라꼬 오시라고 했십더.”

   이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노인회장도, 원로들도 모두 좋다고 박수를 쳤다. 부녀회장도 청년 이장님과 손발 맞추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거들며 박수를 쳤다.

   영수는 이렇게 해서 마을 주민들의 추대로 차기 이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달부터 봉현마을은 영수가 노인회장과 부녀회장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하기로 했다. 이장이 새로 뽑힌 이장 영수더러 인사말을 하라고 했다.

   “아이고, 어르신들 이렇게 신임해 주시는데, 지가 우째 마다하겠습니꺼. 아무튼 위로는 노인회장님과 어르신들 모시고, 부녀회장님과 의논해서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십니더.”

   “아이고, 인사말 준비 했는 갑네, 말도 참 잘하네.” 부녀회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라믄 지가 오늘 새로 부임한 이님 대신 이바구 하나 할라 캅니더.” 청년회장이 나섰다.   

   “그라믄 그렇체! 좋지, 함 해바라.” 노인회장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하동장댁 머슴 하던 승이가 헤치이하고 씨름했던 이바구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지가 승이와 친구니께 잘 압니더.”

   “내도 쪼매 알기는 하는데 자세히 이바구 해바라.” 노인회장이 말했다.

   청년회장은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에 승이가 논 일을 마치고 간지등으로 등목하러 갔다. 어스름 빛이 내려올 때, 간지등으로 가는 길에 웬 낯선 총각을 만났는데, 이 총각이 난데없이 승이더리 씨름을 하자고 했다.

   승이는 ‘원 미친 넘이 다 있나.’ 속으로 생각하고 간지등으로 올라가는데, 이놈이 자꾸 씨름 한판만 하자고 졸라댔다.

   “그래! 이놈아! 정, 니 소원이 그라믄 해보자!”

   힘이 장사인 승이는 총각의 허리춤을 불끈 쥐고 안다리를 걸어 보고, 밭다리도 걸어보고, 들배지기를 해봐도 이놈이 끄떡을 안 하더란다.

   수상히 여긴 승이가 이놈을 자세히 보니 도깨비가 아닌가. 시골에선 흔히 해치이라고 하는데 어른들 말로는 해치이가 씨름하자고 하면 오른쪽으로 넘기면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해치이는 왼쪽 다리가 없어 밭다리를 왼쪽으로 걸고 넘기면 그냥 넘어간다고 하는 말이 떠올라 승이는 냅다 왼 밭다리걸기로 해치이를 넘어뜨렸다. 씨름에서 진 헤치이는 “지가 졌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소문대로 간지등 헤치이는 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였다.

   그날 밤은 헤치이 이야기로 대신하고, 다음 달 초에 봉현마을 대표 회의를 마을회관에서 갖기로 결론을 맺었다.   

   해가 바뀌어도 아직은 엄동설한이라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저녁을 먹고 나면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오늘도 주민들은 영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를 기다렸다.

   영수가 회관으로 들어서면서 “아이쿠! 다 와 계시네예. 지가 일이 쪼매 바빠서 늦었십니더.”하고 인사를 했다.

   부녀회장이 “아이고! 총각 이장님 오셨네.”하고 반기자 거기 모인 주민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자리에 앉은 영수가 탄광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은 지가 일하던 데가 비행기 폭격을 쎄리 맞아가지고, 조선 노동자들이 떼로 죽은 이바구 할랍니더.”

   “어떤 넘들이 비행기로 폭탄을 퍼부었노?” 이장이 물었다.

   “처음에는 지도 몰랐어예. 맨날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콩 볶는 총소리가 나고, 그라믄 탄광에 싸이렌이 울리고, 노동자들은 안 죽을라꼬 굴속으로 도망가기 바빴지예.”

   모두 침을 꿀꺽 삼키고 영수 입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내사 청년회장님 이바구 들을 때마다, 오금이 저려서 가마이 못 있겠네예.” 부녀회장이 넋두리했다.

   “뭐? 뭐시라꼬! 오눔 누고 싶으믄 변소 갔다오믄 될 끼 아이요!” 귀가 어두운 동수 할배가 말했다.

   “아이고! 할배요. 오줌이 아이고, 오금이 저리다고요! 맴이 쫄아서 다리가 저리다 이 말 아입니꺼!” 부녀회장이 말했다

   아낙들은 부녀회장과 동수 할배 사이에 오가는 얘기를 듣고 키득키득했다.

   영수가 기침을 한 번 하자 모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 중에서 일본말 할 줄 아는 통역 담당 세 사람을 뽑았는데, 그 사람들이 ‘이거는 연합군이 일본 넘들을 쎄리 때리는, 기관 총소리하고 폭탄 터지는 소리’라고 하데예. 그래서 지도 알았지예. ‘아! 인자 일본 넘들이 전쟁에서 밀리고 있구나.’ 생각했지예.”

   영수가 숨을 돌리고 계속 이어갔다.

   “지가 막장에서 천장이 무너져갔고 돌무더기에 깔리습니더. 몇 날을 생사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일하는 섬에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차고, 기관 총알을 비 오듯이 퍼부었다고 합디더. 조선인 노동자들 시체가 여기저기 쓰레기처럼 널리 있었다꼬 하데예. 아랫마을 창식이도 기관 총알하고 폭탄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성구가 카데예.”

   이 말을 하고, 영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고, 쯧쯧! 참! 안됐네. 그래서 아랫마을 창식이가 죽었구마.” 부녀회장이 순이 엄마가 참 안 됐다고 측은해했다.

   여기저기서 아낙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낙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집 아들이 그래 죽었구마!“하고 안타까워했다.

   밤이 깊어 오늘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모두 잠자러 갈 시간이 됐다. 몇몇 청년들이 마음도 울적하고 기분도 그런데,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했다.

   ”청년회장이 같이 가야제. 우리 대장 아이가!“

   청년들이 영수더러 함께 가자고 해서 그도 따라나섰다.     

   아직 농사철은 멀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겉만 녹았지, 논밭을 쟁기로 갈고 씨를 뿌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영수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밤마다 순이를 만났다. 저녁을 먹고 순이를 만나러 아랫마을 강둑으로 걸어가다가 읍내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부녀회장을 만났다.

   “부녀회장님! 어데 갔다오십니꺼?” 영수가 인사를 했다.

   “읍내 볼일 보고 오는 길이요. 어데 마실가는기요?” 본동댁이 물었다.

   “예! 날도 좋고 하늘에 별도 총총하고 해서 바람 시러 갑니더.”

   영수가 지나가는 말투로 대답하고 방죽을 따라 걸어갔다.

   안 그래도 부녀회장은 총각 청년회장 영수가 순이와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혹시 영수가 순이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닌가 하고 궁금증이 생겨 몰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강둑을 지나 느티나무 정자 가까이 가자 영수가 나지막하게 순이 이름을 불렀다.

   긴 생머리에 치마를 입은 처녀가 다가오고,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순이야! 니 우째 이래 이뿌노!” 영수 목소리가 들렸다.

   “몰라예!” 교성이 섞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영수 입술이 순이 입술을 더듬고 목덜미를 지나 귓불을 핥자, 순이는 나지막한 신음을 냈다.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든 두 청춘남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들판에서는 요란하던 풀벌레 울음소리도 그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강둑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청년의 어깨에 긴 생머리를 한 처녀가 기대어 밤하늘을 가리키며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영수와 순이의 그림자였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영수는 순이 손을 잡고 일으켜 어깨를 감싸 안고 아랫마을로 향했다. 밤이 무르익어 캄캄한 하늘엔 별빛만 초롱초롱하고, 상큼한 풀냄새를 실은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한참 이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부녀회장은 소문이 맞긴 맞구나 하고 발길을 돌려 봉현마을로 향했다.

   다음날 영수 어메가 웃새미에 물동이를 이고 샘물을 길으러 갔더니 아낙들이 한창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거기엔 부녀회장도 있었다. 오후가 되자 어메는 웃등 밭으로 가는 길에 옆집 아낙을 만났다.

   “밭 매로 가는교?” 어메가 말을 걸었다.

   “야! 풀이 마이 커가지고 채소가 풀 속에 숨어 버렸어예.”

   두 아낙은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옆집 아낙이 갑자기 어메에게 영수 얘기를 꺼냈다.

   “아이고! 우리 동네 이장님, 장개 보내야겠던데요.”

   “그기 무신 소리인기요?” 어메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아낙은 미소만 지은 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어메는 속으로 ‘웬 별 싱거운 여편네도 다 있네’ 하면서 웃등 밭으로 올라가 풀을 매기 시작했다.

   한나절이 지나고, 그녀는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낮에 옆집 아낙이 하던 말을 시에미에게 전했다. 이를 들은 할매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그라믄 그러체, 요새 아비가 밤마다 마실을 나가더니 연애질하고 있었구먼’하고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할매가 동네 마실 가다가 옆집 아낙을 만나 슬쩍 물어보았다.

   “어데가는 기요? 참, 내 물어볼 말이 있는데. 그 소문 어데서 들었는 기요?”

   그 아낙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부녀회장이 읍내 다녀오는 길에 영수와 순이가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 주었다. 할매는 어서 둘째 손자 장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시에미로부터 영수가 연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미는 그날 밤 아들을 불러 조용히 물어보았다.

   “니 요새, 밤마다 아랫마을 순이 만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맞나?”

   “어, 어! 엄마는 우째 아는 기요?”

   “그라믄 그렇째! 맞구먼! 아이고 우리 아들 얼른 장개 보내야겠네.”

   어메는 아랫마을 순이라면 야무지고 얼굴도 이쁘장하게 생겨서 며느릿감으론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밭에는 콩을 심고 언덕에는 옥수수를 심었다. 봄비가 내리고 금세 새싹이 올라오고 곡식들은 서로 키재기하듯 하룻밤 자고 나면 쑥쑥 자랐다.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영수는 마을 일을 보면서 집안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농약을 치고 배수로를 정비하고 밭에 가서 제초제를 뿌리고 풀을 베어 소에게 여물로 삶아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영수가 저녁을 먹고 나니 할매가 안채로 오라고 했다. 영수가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안방에는 할매와 어메가 앉아 있었다.

   “아비야! 인자 니도 장개 들어야제! 순이 빨리 집으로 데리고 오너라. 너거 어메도 할미하고 같이 늙어간다 아이가.” 할매가 말했다.

   “할매요,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십니더. 아부지 첫 제사 지내고 나면 결혼식 올릴라고 합니더.”

   할매와 어메도 “니 생각이 그라믄 그래 하자.”고 말하며 흡족해했다.

   영수는 가을 추수도 매형 동식이와 함께 거뜬하게 해냈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고 아배 첫 기일이 다가와, 그는 집에서 담은 농주와 과일을 싸 들고 할매와 어메와 함께 선산으로 갔다.

   할배 무덤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아배 무덤으로 내려와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할매가 영수에게 미안해서 자기 아들 무덤에 대고 나무랐다

   “내가 둘째 손자 까막눈만 면하게 국민핵교라도 보내자고 할 때, 내 말 들었으면 내 원도 한도 없을 낀데.”

   어메도 남편 무덤을 바라보며 원망 조로 말했다.

   “맨날, 술만 퍼마시고 한 기 뭐 있는교! 아들내미 공부 좀 시킸으믄 하동장댁 펄펄 날고 있을 낀데. 보고 있지예?”   

   모처럼 영수가 할매와 어메하고만 있는 자리에서 마음속에 품어왔던 말을 꺼냈다. 승찬이 형과 아배를 생각해서, 집안 식구들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는데, 고향에 돌아오니 형은 재산 욕심부리고, 막내 동생은 이간질하고, 그래서 정말 억울하고 답답했다.

   “망구 씰데없지예.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징용까지 끌리갔다 몸 베리고, 안주까징 밤에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아입니꺼!”

   영수가 징용 갔다 오고 나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승찬이 형이나 아배는 한마디도 안 하고 영철이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이제 누구를 원망하고 신세 한탄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한 식구니까 다 이해하고 용서하자고 생각했다.

   “내처럼 무식하고 못난 넘! 인자 내 장개가믄, 내 새끼는 이래 안 키울 끼요! 못 배우고, 무시당하고, 천시받도록, 안 나둘 낍니더!” 영수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을 했다.

   “동무들은 다 핵교 댕기는데, 내는 혼자 소 몰고 산으로 들로 댕기고, 지게 지고 소 풀 비로 댕기고, 나무하로 댕깄다 아입니꺼. 그기 그리 보기가 좋습디꺼!” 먼 산을 바라보며 영수가 원망 섞인 말을 했다.

   “내는 인자 그래는 안 살 끼요! 내가 국민핵교만 나왔서도 면장도 해묵을낀데! 내가 승찬이 생이만큼 공부했으믄, 군수 아이라 도지사, 국회의원도 해묵었을 끼라요! 안 그렇소 할매요!”

   그날 산소에서 할매도 울고, 어메도 울고 영수도 울었다. 세 식구가 다 같이 울었다. 영수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원망하고 싶어도 할배와 아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원망할 사람도 곁에 없었다.

   시골 무지렁이들이 사는 고향에서 낙인처럼 따라다니던 학벌이, 케케묵은 유산이, 할배와 아배 무덤 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평생 영수 가슴에 응어리졌던 주홍글씨가 지워지고 있었다. 산소에서 내려온 영수는 제사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밤을 깎고 대추를 치고 문어 꽃을 만들었다.

   오후에 선희 부부와 국민학생 조카 둘, 경희 부부가 왔고, 저녁이 되자 승찬이 부부와 영철이도 왔다.

   “야들아! 지사 저녁에 지내거라. 이전에는 한밤중에 지냈는데, 요새는 모두 다 객지 생활하고, 멀리서 오고 바쁘니께 저녁 묵고 지내도 괘안타.” 할매가 손자들에게 말했다.

   “맞다. 다른 집에서도 다 저녁밥 묵고 지낸다 카더라. 할매 말씀대로 하거라,” 어메가 시에미 말에 보탰다.

   영수는 저녁을 먹고 일찍 제사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따르고 제사를 지냈다. 이른 저녁에 지내는 제사라 영찬이와 영철이는 다음날 일이 있다고 하면서 곧바로 봉현마을을 떠났다.     

   그해 겨울, 영수 나이 스물세 살에 순이와 결혼했다. 선희처럼 구식으로 집에서 하는 혼인식이 아니라, 예식장에서 영수는 양복을 입고 순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할매와 어메는 폐백을 받으면서 대추와 밤을 한 움큼 쥐어 순이 치마폭에 던져주고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손주 마이 낳거라! 너거들 복도 마이 받거라이!” 할매가 덕담했다.

   “마이도 말고 손주 둘만 낳거라, 딸도 있으면 좋체!” 어메가 말했다.

   고모들도 모두 영수와 순이의 절을 받고 덕담하면서 준비한 봉투를 주었다. 형제자매들도 서로 맞절하고 상견례를 치렀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다. 영수 마음은 새처럼 날아갈 듯이 기뻤고 순이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듬직한 신랑 어깨에 기대어 속삭였다.

   “니는 내하고 결혼하이 좋나?” 영수가 물었다.

   “좋지예. 맨날 밤에 넘 눈치 안 보고, 한집에서 같이 살고예······.”

   영수가 순이 어깨를 감싸고 뺨에 살짝 뽀뽀를 했다.

   “그라마, 니는 내하고 밤에 만날 때, 너거 아부지하네 들키믄 우짜노하고 똥줄이 탔겠네?” 영수가 물었다.

   “말도 마이소. 똥줄이 아이고 오금이 저렸어예. 아부지만 속이믄 되는 기 아이고, 동네 사람들 눈도 안 있습니꺼!”

   순이는 더욱 가까이 영수에게 기댔다.

   제주도에서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오름에 오르기도 하고, 제주도 명물인 자리돔회도 먹고, 제주 똥돼지 삼겹살도 먹었다. 2박 3일간의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신혼여행을 마친 두 사람은 순이 친정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오후에 봉현마을로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아비, 잘 갔다 왔노? 우리 손부 보이끼네, 내 맴이 와이리 좋노!” 할매가 순이 손을 꼭 잡았다.

   “아이고! 어무이! 우리 메느리 아입니꺼! 지가 얼매나 맴 졸이믄서 기다맀다꼬예.” 어메가 너스레를 떨며 순이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하동장댁에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거늘, 함께 즐거움을 나눌 할배도 아배도 없고, 할매와 어메, 선희와 경희 자매만 올케와 영수를 맞이했다.  

   한 해가 지나고 영수가 고향에 돌아온 지 세 번째 맞이하는 설날이다. 작년에 지은 햇곡으로 송편을 빚고 시루떡을 져서 정성스레 제사상에 올렸다. 텃밭에서 딴 대추며 밤이며, 집에서 직접 말린 곶감을 배와 사과와 함께 상 위에 푸짐하게 차리고 할배와 아배 제사를 지냈다.      

   승찬이도 영철이도 도회지에서 설을 쇠러 고향으로 왔다. 형제들은 할매와 어메를 모시고 다과를 들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승찬이는 학교 교무주임으로 승진했고, 영철이도 곧이어 승진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다음 날 시집간 선희와 경희가 친정에 왔다. 선희 신랑 동식이와 두 조카, 경희 신랑 근식이도 계장으로 승진하여 집안 경사가 났다.

   오랜만에 형제자매가 만나고, 처남남매가 화투장을 들고 고스톱을 쳤다. 예의 고스톱을 치다 보면 따는 사람이 있고 잃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승찬이가 꼼수를 부렸다.

   슬쩍 두 장을 뒤집어 몰래 자기에게 유리한 쌍피를 가지고 가서 점수가 금세 5점으로 나버렸다. 그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해도 영리한 영철이가 큰 형의 손놀림을 보았다. 승찬이가 영철이에게 눈짓하고 영철이도 고개를 끄떡했다.

   다른 사람들은 쭉정이가 너무 없어서 충분히 세 번 고를 해도 될 판, 승찬이는 고를 불렀다. 그리하여 농사꾼 동식이와 꽁생원 근식이는 피박에 네 곱절로 뒤집어서 써서 큰돈을 잃고 말았다.

   싸움의 발단은 여기서 시작됐다. 승찬이는 영철이에게 눈감아주는 대가로 푼돈을 조금 떼주었다. 가만히 있을 영철이가 아니었다.

   “큰 생이, 돈 마이 땄는데! 내가 응원해주었다 아이가! 좀 더 도고!”

   “나중에 따면 니한테 더 주께. 그자, 있다가 더 주께.” 승찬이는 막내 동생을 눌러 앉혔다.

   이에 심술이 난 영철이가 홧김에 고자질했다.

   “아까 전에, 큰 생이 속임수 부리면서 두 장 뒤집었다 아이가! 그래가지고 쌍피 갖고 가서 점수가 난 거 내가 다 봤다.”

   승찬이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영철이 말을 무마하려고 했다.

   “아이다, 영철이가 지금 내가 돈을 마이 따니께 심술이 나서 거짓말을 하는 기다. 영철이는 거짓말을 잘 하는 거, 다 안다 아이가!”

   화투판은 난장판이 됐다. 오랜만에 만난 처남남매와 형제들끼리 불편한 얼굴이 되어 설날 저녁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어메가 와서 “와이라노? 승찬아! 영철아!”하고 아들 둘을 나무라며, 사위들에게 미안해서 절절매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할매가 선잠이 들었다가 건너와서 어서 방으로 들어가 자라고 했다. 겨우 진정이 되고,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승찬이가 떠나고, 곧이어 영철이도 떠났다.

   선희와 경희가 차린 아침 밥상에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할매가 손주사위들에게 미안했던지 차린 것 없어도 많이 먹으라고 연거푸 말했다. 장모도 사위 눈치 보기가 민망했던지 우리 사위들 식성이 좋아 뭐든지 잘 먹어서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수가 매형 두 사람과 선희와 경희에게 할배와 아배 산소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하자, 다들 그러자고 해서 술과 안주를 싸 들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할매와 어메도 함께 나섰다. 산소에 도착하자 돗자리를 펴고 상석에 가져온 술을 붓고 안주와 젓가락을 올린 뒤, 모두 큰절을 올렸다.

   할매가 또 넋두리를 시작했다.

   “공부 시키바야, 망구 씰데가 없는 긴데. 다 봤지요?”

   할매는 승찬이와 영철이를 빗대어 할배 무덤에 대고 말했다.

   “영감 말마따나, 장손만 공부시키믄 집안 다 일어난다 안 했십니꺼! 그 말이 맞는교? 우리 집안 일어났십니꺼!”

   남편 무덤 앞에서 어메도 신세 한탄했다.

   “어무이 말 듣고, 그때 아비 공부 시킸으믄, 이녁이 말한 대로 우리 집안 일으났을 끼라예. 산소 앞에 누가 왔는지 잘 보이소.”

   영수와 동식이와 근식이는 못 들은 척하며 봉현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져온 술로 음복하고 영수는 할매와 어메를 모시고 산소에서 내려왔다.

   영수는 선희와 경희에게 농사지은 찹쌀과 고구마와 채소를 한 보따리 챙겨주고, 자매는 머리에 이고 신랑들은 어깨에 짊어지고 하동장댁 대문을 나섰다.     

   봉현마을 이장 영수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했다.

   “안녕하십니꺼, 봉현마을 주민 여러분! 알립니더. 오늘은 정월 대보름입니더. 저녁 일찍 잡수시고, 모두 마을회관 마당으로 오이소. 보름달이 뜨면 달집도 태우고, 올해 농사 풍년들구로 빌고, 보름 음석도 같이 나누드입시더.”

   영수는 할매와 어메와 함께 아침 일찍 귀밝이술로 데운 청주를 마시고, 오곡밥을 먹고, 부스럼도 깨물어 한 해 동안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를 튼튼하게 하는 액땜을 하였다. 할매와 어메는 누구보다도 영수가 있어 마음이 훈훈하고 든든했다.

   그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달집을 만들고, 타고난 재주로 방패연과 꼬리연을 만들어서 달집 문에 매달았다. 회관 마당에는 커다란 달집이 세워지고, 주민들도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녘 하늘에 둥근 정월 대보름 달이 서서히 떠올랐다. 노인회장과 청년회장 영수가 달집에 불을 지르고, 모두 달을 향해 가족의 무사안일과 안녕을 빌었다.

   마을 사람들 얼굴도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서로 복을 빌어주고 화기애애하게 부녀회와 청년회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으레 저녁을 먹고 나면 마을 주민들은 회관에 모였다. 보나 마나 영수 입만 바라보고 있을 터. 그는 마을 주민들이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할 이바구는 쬐끔 망신살이 뻗치는 이바구라에.”

   마을 주민들은 침을 삼키며 시간 끌지 말고 영수더러 빨리 이야기를 꺼내라고 종용했다.

   “거참! 자꾸 침 흘리게 만들지 말고, 속 시원하이 이바구 해바라.” 이장이 먼저 말을 했다.

   “사실 징용 끌려 온 사람들은 다 한창 나이 아입니꺼. 남정네들이 그거 못 풀면 무신 짓을 할지도 모르고. 여자도 없고 해결은 해야 하는데, 우짭니꺼. 혼자 해결해야지예.”

   아낙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영수가 하는 말을 들었다.

   “자다가 옆에서 이불이 들썩들썩하고 금세 풀냄새가 나믄 일이 끝났다 아입니꺼. 같은 방에 여남은 장정이 자는데, 하룻저녁에 한 사람만 그 일을 하고 싶겠습니꺼? 두서이 그라다 보믄, 아침까지 방안에 비릿한 냄새가 남아 있어가꼬, 그기 하루 이틀 지나도 냄새가 안 없어지는 기라예.” 영수가 길게 말을 했다.

   “그라믄 우째 카는데요?” 부녀회장이 물었다.

   “여름에는 케케묵은 곰팽이 냄새하고 발 냄새하고, 그기 섞이갔고 골치가 띵하고 아픕니더. 그래갔고 지발 밖에 나가서 해결하고 들어오라 카는 사람도 있어예.”

   부녀자들이 킥킥거리며 수군댔다. 그때 노인 한 분이 말을 이었다.

   “그라믄, 겨울에는 우짜노? 추버서 밖에서도 힘들 낀데······.”

   “그래도, 겨울에는 곰팡이 냄새하고 발 냄새는 덜 나니께, 여름보다는 훨씬 낫지예. 거는 바람이 마이 불어갔고, 겨울에 문을 안 열어도 환기는 잘 됩니더.”

   남정네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잘 안다는 눈치고, 여자들은 자기네들끼리 쑥덕쑥덕했다. 그것은 남자들에게는 비릿한 풀 냄새로 역겹지만, 여자들에겐 밤꽃 냄새처럼 은근히 여심을 유혹하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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