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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5 지옥섬으로 끌려가다

   지옥섬으로 끌려가다        




   다음 날 영수는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가 저들끼리 부대끼며 서걱거리고 쓰름매미가 쓰름 쓰름 참나무 우듬지에서 울고 있었다. 억새를 한아름 동여매고 나서 나뭇짐을 짊어지고 어수룩한 해질녘에 마을로 내려오는데, 웃등을 내려설 즈음 하동장댁 바깥마당에 낯선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다. 일본 순사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 칼을 찬 사람도 보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그는 내려오던 길을 돌아서 도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고 밤이 이슥해지자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골바람마저 불어 여름 반소매 옷만 입은 영수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낙엽과 솔잎을 긁어모으고 이파리 넓은 떡갈나무 나뭇가지를 꺾어 바람막이로 얼기설기 엮어서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은 등잔 호롱불처럼 가물가물하고, 둥그렇게 타원을 그린 은하수 무리가 더덕더덕 회칠을 한 것처럼 희끄무레하다. 별똥별이 노란 꼬리를 이어가며 북쪽으로 날아갔다.

   추위는 조금 가시는 듯했지만, 밤송이가 떨어지는지 도토리가 떨어지는지, 적막 속에서 툭툭 하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팔다리에 소름이 돋고 신경이 곧추서는데, 수풀 속에서 밤 짐승이 새를 잡아 먹는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산짐승이 컹컹하고 우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산골짝에서 메에엑 메에엑 하고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자 공포심은 극에 달해 머리카락이 주뼛 섰다. 시간은 저녁 끼를 한 참 넘긴 때라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추위와 배고픔과 무서움으로 더 이상 산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순사도 갔겠거니 하고 나뭇짐을 짊어지고 마을로 내려왔다. 대문을 들어서자 뒷간에 다녀오던 아배와 마주쳤다.

   “이넘의 손! 어데서 자빠지 놀다가 인자 오노! 배지가 고파서 인자 오나?” 아배는 예의 욕설과 함께 고함을 질렀다.

   “아, 아! 아입니더. 산에서 미끄러져 갔고, 건겅이 나뭇짐 지고 내리오는 길입니더.”

   “그라모, 낼은 나무하로 가지 말고 집에 가마이 있거라이!”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씨이! 와 내만 보믄 잡아묵을라 카노! 만다꼬 내보고 집에 가마이 있으라 카노? 내가 뭐 잘못한 기라도 있나?’

   아배는 영수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고함을 질러대곤 했다. 영수가 장독대에서 씻다 말고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내를 일본 넘들한테 팔아묵을라 카나······.’

   그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아배 꼴이 보기가 싫어졌다.

   ‘내만 보믄 고함 지르고, 욕을 사발로 퍼붓고, 와 그라노? 인자는 내가 빙시처럼 가마이 안 있을 끼다!’

   영수는 그동안 맺혔던 응어리가 목구멍으로 불쑥 올라왔다.

   ‘내가 시방 나이가 한두 살 얼라도 아이고. 그렇다꼬, 이 집 하인도 아인데, 무신 종놈 부리듯이 행패를 부리고 욕을 해대노.’

   영수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할배도 영 못마땅했다.   

   ‘그래! 맞다. 저 아래 동수 맨치로, 내도 그래야겠다. 동수가, 저거 아부지가 지한테 막 욕을 해대고 고함지르고 해서, 대놓고 할 말 했다 카더라. 저거 아부지하고 대판 소리 지르고 했다 캤제. 그라고 나서 동수한테 동수 아부지가 고함도 안 지르고 함부로 안 한다 카더라.’

   영수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중에라도 아배가 고함 지르면 같이 해볼 참이었다.  

   ‘내도 아부지가 내한테, 막 욕을 퍼붓고, 고함지르고, 종놈 취급하믄 가마이 안 있을 끼다!’

   영수는 그동안 어리숙해서 아배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해왔다. 오늘따라 자신이 못나 보였다. 아배에게 순종만 해온 게 이런 사달을 불러온 거 같다고 생각했다. 세수를 끝내고 대청마루로 올라온 아들을 보고, 부엌에서 저녁 설거지하던 어메가 불렀다.

   “잔갑아! 밥 못 묵었제? 배고프겠다! 퍼뜩 밥 묵어라.”

   “야! 엄마, 알겠십니더.”

   그날 밤 영수는 순사가 왜 우리 집에 왔는지 의아했다. 무언가 집히는 데가 있었다. 요즘 흉흉한 전쟁 소문이 떠돌고 있는지라 사람을 잡으러 다닌다고 하더니 나를 잡으러 왔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자, 머슴 승이가 영수더러 아랫마을 종답에 가보자고 했다. 할배는 읍내 볼일 보러 나갔고, 아배는 마실 나가서 집에 없고, 어메에게 “승이 행님하고 논에 다녀오겠십니더.”하고 들판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집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면사무소 직원과 순사가 하동장댁에 들이닥쳤다. 마을회관에 놀러 갔다가 돌아온 아배가 영수를 찾았다. 집에는 영수도, 승이도, 어메도 없었다. 아배가 고함을 지르며 영수를 불렀다. 들판에 나가 있던 승이와 영수도 아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승이가 대답하지 말라고 했다.

   “잔갑아, 아무래도, 저넘들이 니를 잡으로 온기 맞을성싶다. 그러니께 너거 아부지가 저래 난리제.”

   “행님, 우짜믄 좋은 기요?”

   “그냥, 도망가뿌라! 니가 없으면 저넘들도 안 올 끼고, 너거 아부지도 니를 더 이상 찾지 않을 끼다.”

   “행님! 지가 갈 데가 어데 있다고 도망가란 말인 기요?”

   승이와 영수가 봉현마을을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하동장댁에 들이닥친 면사무소 직원과 순사가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독대며, 도장이며, 뒤란 나무 삐까리까지 집안을 샅샅이 들쑤셔도 영수를 찾지 못하자, 두 사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어제 내가 한 말 못 들었소? 오늘 아들 꼭 붙들고 있으라 캤는데, 어데다 숨긴 거요?” 순사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아이고! 지가 밖에 볼일이 있어갔꼬 나간 새에, 소풀 비로 간 모양입니더. 낼은 꼭 붙들어 놓겠십니더!” 아배가 절절맸다.

   집안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승찬이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순사가 흘긋 승찬이를 보더니 아배에게 말했다.

   “하이! 아들이 이제 오는구먼. 자! 인제 같이 갑시다!”

   순사가 승찬이 팔을 잡자 승찬이가 어리둥절하며 금세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승찬이는 볼품없을 정도로 삐쩍 마르고 왜소한 체격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할배! 할배! 내 잡히갑니더! 살리주이소!”

   “이기 무신 일이고! 아이고! 안됩니더! 야는 일도 한번 안 해 본 약골입니더! 우리 작은 손자가 장골이라요. 작은 손자 데리 가이소! 안됩니더!”

   할배가 싹싹 빌며 통 사정하자, 순사는 노인이 하소연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던지 영찬이 손목을 놓고 할배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작은 손자가 아니란 말이요? 우째 힘도 제대로 한 번 못 쓰는구먼. 데리고 가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겠네.”

   순사는 재수 옴 붙었다는 표정으로 카악 하고 침을 마당에 뱉었다.

   “예! 우리 작은 손자는 일도 잘하고, 심이 센 장사라요. 그 아는 데꼬 가믄 두 사람 모가지 일을 할 낍니더.” 할배가 대답했다.  

   “그라믄 좋소! 영감님 말 믿고 가겠소. 삼 일 뒤에 다시 오겠소, 작은 손자 꽉 붙들어 두시오!” 면사무소 직원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순사와 면사무소 직원이 대문을 나서자 할배는 “하이고! 십년감수했네······. 간 떨어질 뿐 했네!”하고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 기대앉았다.

   그는 하이고 하이고 하는 말만 수십 번 되풀이했다. 한숨을 돌리고 나자, 그제야 사각턱 자린고비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농사일 제대로 안 해본 아배는 기운이 다 빠져 마당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얼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기운을 차린 아배는 대청마루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벌벌 떨고 있던 어메가 정신이 들었는지 “아이고! 천지 신령님! 고맙십니더. 우짜든지 도아주이소!”하고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리다가 승찬이를 보고 “니는 우째 딱 맞차서 집에 오노? 큰일 날 뿐 했다 아이가!”하고 아들을 나무라듯이 말했다.

   드디어 아배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넘의 손! 집구석에 처박히 있으라고 했거마! 또 어데로 갔노? 들어오믄, 다리 몽딩이를 뿌사 뿌야겠다!”

   때마침 읍내 외출 나갔던 할매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와? 무신 일이고?”

   “또 면사무소 직원하고 순사가 왔다 아입니꺼!”

   “잔갑이 데꼬 갈라고 왔더노?”

   “야. 그넘의 손! 지가 어제 집구석에 가마이 있거라 했는데,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요.”

   아배가 할매에게 승찬이가 때마침 집에 들어오다가 순사한테 잡혀갈 뻔했다고 하자, 할매도 “아이고! 간 떨어질 뿐 했네. 우짜든지 조심해야제.”하면서 사랑채로 들어갔다.

   그때 승이와 영수가 바깥마당으로 들어서면서 두 사람이 하는 끝말을 들었다. 아배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아들을 보았다.

   “이넘의 손! 어데 쳐박히 놀다가 인자 오노! 집구석에 쳐박히 있으라고 내가 신신당부했거만! 다리 몽딩이를 뿌사나야겠네, 이넘의 손!”

   “와 그래 고함을 질러샀고 그랍니꺼?” 영수가 대꾸했다.

   “머시라꼬? 이넘의 손이, 인자 아부지한테 대드나? 머 잘했다꼬 대드노!” 아배가 씩씩거렸다.

   “지가 머 잘못했십니꺼? 맨날 논에 가서 일하고, 나무하러 산에 가고, 소풀 비고, 집에 오믄 짐승들 밥 주고 했는데, 머시 잘못댔십니꺼?”

   “이 빌어묵을 손이, 눈까리 똑바로 뜨고 쳐다보믄 우짤 끼고? 아부지가 집에 있으라 카믄 집에 가마이 있어야제! 와 말을 안 듣노?”

   “지가 이 집 종입니꺼? 시키믄 시키는 대로 쪽쪽 다 하고. 이거 해라 카믄 이거 하고, 저거 해라 카믄 저거하고. 해라 카는 대로 하는 기 종넘이 아이고 뭡니꺼? 지가 이 집 식구 맞십니꺼?”

   ”뭐! 뭐시라꼬! 야이 빌어묵을 손아! 어데서 못된 거 배아갔고 애비한테 대드노!“

   참다 못한 할배가 밖에 나와 말했다.

   ”야야, 소리 낮차갔꼬 잘 타일러라. 잔갑이 니도 아부지가 말하믄 ‘예 알겠십니더’하고 공손히 말해야제. 그기 무신 소리고!“

   영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배를 등지고, 할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할배요! 지가 사람 새끼 맞습니꺼? 지가 짐승 새끼입니꺼? 국민핵교 문짝에도 못가보고, 맨날 죽으라꼬 일만 하는 거 모르십니꺼! 와 사람 대접을 안해줍니꺼? 할배는 몰라서 지한테 묻습니꺼?”  

   할 말이 없어진 할배가 ‘에헴’ 기침을 하고 바깥마당으로 나갔다. 할매가 고무신을 질질 끌고 안채 마당으로 건너왔다.

   “아이고! 우리 잔갑이 우짜고. 잔갑아! 인자 그마하고 밥 묵자.”

   할매가 예의 입버릇처럼 “아이고! 조상님, 천지 신령님! 우짜든지 구버살피주이소! 우짜든지!” 중얼거리며 대청마루로 올라갔다.   

   어메가 부엌에서 아배가 고함 지르는 소리를 듣고 구시렁거렸다.   

   “와, 멀쩡한 잔갑이를 일본 넘한테 넘길라 카노? 맨날 술만 퍼마시고, 일도 안 하는 사람이 가야제. 누가 씰데없는 사람이고? 일 안 하고 밥만 축내는 이녁이 가야제.”

   승이도 잔갑이 처지가 딱했는지 혀를 끌끌 찼다.

   그날 밤에 영수는 아배와 낮에 다툰 일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데다, 순사가 집으로 온 일로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저승 사자에게 끌려가는 기분이 이런 건지 심장이 벌렁벌렁하여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는 일본 순사에게 쫓기고 있었다. 순사가 영수 목덜미를 잡으려고 하자, 그는 순사 손아귀를 뿌리치고 뒷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라! 거기 서라! 안 서면 너거 아부지 잡아간다! 서라! 서라!” 순사가 바싹 뒤쫓아오며 소리쳤다.

   영수는 산을 오르느라 용을 쓰고, 가슴이 답답해서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뛰었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순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손끝이 영수 몸에 닿을락 말락 하자, 영수는 바락바락 악을 쓰며 도망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등 뒤에 서늘한 기운을 느낀 영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했다. 순사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영수 목을 겨누었다.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다. 순사가 영수 목덜미를 붙잡았다.  

   “와 이라는 기요! 안 갈 끼요! 나는 안 갈 끼요! 놔주이소! 지발, 놔주이소! 할매! 어메! 퍼뜩 도아주이소!”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질러봐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순사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리기만 했다. 힘들이지 않고 영수 두 팔을 포승줄로 결박한 순사는 칼을 겨눈 채 영수를 끌고 갔다. 영수는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을 번쩍 떴다. ‘아이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긴장이 풀리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며칠 동안 불안과 초조 속에서 지내다 보니 영수는 무척 예민해졌다.

   삼 일째가 되던 날, 아침을 먹고 나자 아배가 영수를 불렀다. 어딜 가지도 못하게 방에 들어와 아배 옆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어메는 한숨만 푹푹 내쉬고, 할매는 봉창 문을 통해 바깥 눈치를 살폈다.

   영수는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서 설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아배에게 뒷간에 다녀오겠다고 허락받고 통시깐에 앉아 있는데, 면사무소 직원과 순사가 하동장댁에 들이닥쳤다.

   “인자는 아들 데리고 가야겠소. 어데 있소?” 순사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 주이소. 통시에 볼일 보러 갔십니더.” 아배가 대답했다.

   “빨리 볼일 마치고, 나오라고 하시오!” 면사무소 직원이 소리쳤다.

   “아, 예! 얼른 데꼬 오겠십니더!”

    아배는 급히 달려갔다. 통시는 텅텅 비어 있었고 배가 아프다고 똥깐에 간 영수는 줄행랑을 놓았는지 보이질 않았다. 아배가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순사가 쫓아왔다.

   “아니! 퍼뜩 데리고 안 오고 뭐 하는 기요!”

   아배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절절매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면사무소 직원이 뒷간으로 왔다.

   “아니, 당신! 방금 전에 아들이 통시에 갔다고 했잔소! 거짓말하는 거요 뭐요? 지금 우리를 놀리는거요?” 면사무소 직원이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고! 아입니더.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봐주이소!” 아배가 울상이 되어 하소연했다.

   “저번에도 사정사정해서 당신 말 믿었는데, 인자는 당신 말 못 믿겠소! 할 수 없제. 당신이라도 갑시다!” 순사가 팔을 끌었다.

   “지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봐주이소! 지가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겠십니더! 낼은 그넘 붙잡아놓겠십니더! 지발! 딱! 한 번만 더······.”

   아배가 무릎을 끓고 싹싹 빌었다.

   그때 영철이가 학교를 마치고 막 대문으로 들어섰다.

   순사가 영철이를 쳐다보고 “저 애가 작은아들 맞는기요?”하며 안채 마당에서 서성거리던 어메를 보고 물었다.

   “아이고! 얼라한테 와 이리 캅니꺼! 야는 안주까징 얼라라예. 우리 작은 아들은 집에 없어예. 아매 소풀 비로 간 거 갔습니더.”

   어메가 영철이를 부둥켜안고 벌벌 떨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영철이도 눈치를 챘다. ‘아이고! 이거 잘못하면 순사한테 끌려가겠네. 우자믄 좋노?’하며 눈알을 굴리다가, 불쌍한 척하면서 순사 눈치를 살폈다. 영철이는 머리가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다.

   며느리 목소리를 듣고 할매가 사랑채에서 고무신을 질질 끌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이고! 저 아는 막내 손자라요! 인자 국민핵교 댕기는 얼라라요!”

   순사와 면사무소 직원이 영철이를 보니 아직 어린애였다.

   “그라믄! 이집 사정 봐서, 열흘 뒤에 다시 오겠소. 이번이 마지막이요! 약속 꼭 지키시요!” 순사가 말했다.

   순사와 면사무소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 하동장댁을 떠났다.

   영수는 엊그제 승이와 함께 대문을 들어서다가 할배와 아배가 주고받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일본 순사한테 붙잡혀가면 징용살이해야 한다는 것도 소문으로 들었다.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동장 집안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리가 났다. 열흘 뒤에도 영수가 없으면 승찬이나 아배가 끌려가야 한다. 할배는 장손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아 놓았다. 자칫 잘못하면 아배가 징용살이 갈 판이 되었다. 할매와 어메는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고! 조상님, 천지 신령님! 우짜든지 구버살피주이소! 우짜든지!” 할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어메도 두 손을 모아 “천지 신령님! 우짜든지 도와주이소!”하고 간절히 빌었다.

   순사가 말했던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날이 밝아오자 할배와 아배가 영수를 찾기 시작했다.

   “아비야! 잔갑이는 어데 있노? 퍼뜩 찾아갔고 델꼬 오너라. 면사무소 직원하고 순사가 금방 들이닥칠 낀데······.” 할배가 안절부절못했다.

   “잔갑아! 영수야! 어데 있노! 이넘의 손! 어데로 갔노!”

   아배가 흥분하여 안채 마당과 바깥마당을 수선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하도 고함을 질러대서 목이 다 쉬었다.

   아배는 오금이 저려 걸음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절절맸다. 영수가 없으니 자기가 끌려갈 판이다. 여태 찬물에 손 한 번 담겨본 적이 없는 샌님에다 주정뱅이가 강제 노역으로 끌려가게 생겼으니 어찌 무섭고 두렵지 아니하겠는가.

   얼굴은 하얀 분필 가루를 칠한 것처럼 창백해지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얼이 빠진 사람처럼 마당에서 왔다 갔다 했다. 순사가 올 시간이 다 돼가자, 아배는 애간장이 타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대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배는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혀 마치 포획 틀 속에 갇힌 들짐승처럼 몸서리치며 졸도 직전까지 갔다.

   대문 밖에서 딸까닥 딸까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비는 동네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넋을 잃고 대문을 흘긋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대문으로 들어오는데, 사람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들 어데 있소?” 순사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정신줄을 놓은 아배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허수아비처럼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순사가 아배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다그쳤다.

   “아들 어데 있소? 내 말 안 들리는 거요!”

   순간 아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사가 눈앞에 서 있었다. 기겁하여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아배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하자, 순사가 아배 팔을 잡았다.

   “그라믄, 할 수 없제. 당신이 갑시다!”

   정신이 돌아온 아배는 미친개한테 물렸는지 전신을 벌벌 떨면서 벙어리처럼 “어 어 어”하며 대문 밖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때 할배가 바깥 볼일을 보고 골목길로 들어오다 아배가 끌려 나오는 것을 보았다. 허겁지겁 달려온 할배가 읍소를 했다.

   “하이고! 순사 양반! 우리 아들내미는 일도 할 줄 모릅니더! 아주까징 지게도 한 번 안 지보고, 농사도 한 번 안 지어 본 샌님이라요! 내가 우리 작은 손자 책임지고 붙들고 놓을끼니께, 지발 이 늙은이 얼굴 바서 한 번만! 딱! 한번만 더 바주이소!”

   할배가 애걸복걸하면서 싹싹 빌자, 순사가 난감해서 면사무소 직원 얼굴을 쳐다보았다. 면사무소 직원이 할배 얼굴을 쳐다보고 나서 순사에게 눈짓으로 찡긋했다.

   “좋소! 내일 열 시에 오겠소! 그때 작은아들이 없으면 누구든지 잡아가겠소!” 순사가 매서운 눈초리로 아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순사와 면사무소 직원이 가고 나자 아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 동네 마실을 나갔다 들어오던 할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가 와 이라노? 무신 일이고? 와? 순사가 또 찾아왔더노?”

   그때까지 축담에서 떨고 있던 어메가 할매에게 순사가 왔다 갔다고 알려주었다. 상황을 대충 눈치챈 할매가 아들을 부축하여 대청마루에 앉혔다. 아배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 충격으로 아직 말을 못했다. 저녁을 먹고 식구 모두 사랑방에 모였다. 할배가 “이 일을 우짜믄 좋노! 우째야 순사가 우리 집에 안 오겠노?”하고 탄식했다.  

   “영감! 그 글 배아갔고 어데 씨묵을 끼요? 아는 사람 없는 기요? 빽이라 카는거 말이요! 빽!” 할매가 영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할배는 할매 눈을 슬슬 피하면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랑방에는 침묵만이 흐르는 가운데 아배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더듬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 넘의 손! 손 모 모가지를 부 부 붙들어, 매 나야제.”

   “이녁 간수나 잘하소! 지 앞가림도 지대로 못하는 주제에······.” 어메가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다.  

   달리 뾰쪽한 묘수가 없었다. 영수가 돌아오기만을 모두 학수고대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자 멀리서 건장한 청년 하나가 하동장댁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배는 혹시나 영수가 아닌가 하고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올수록 다른 사람이었다.

   그날 밤 영수는 외가 농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외삼촌도 외사촌 성국이 형도 어찌해야 좋을지 가슴이 미어지고 체한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외삼촌이 영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영수야, 누가 가도 될 판이믄 우짜겠노! 우짜꼬 잔갑아? 니가 그래도 덩치도 있고, 일도 할 줄 아니께, 우짜겠노?”  

   “내도 밤새 생각했다 아이가. 이 말 조카한테 하고 싶은 외삼촌이 어데 있겠노?”     외삼촌과 성국이 형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 영수를 설득했다. 영수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갈 수도 없고, 안 갈 수도 없었다.

   ‘내가 와 가야 하노? 승찬이 생이는 전문핵교도 댕기고, 영철이도 핵교 댕기는데, 내만 핵교도 못 댕기고 머슴처럼 일만 하다가 끌리가야 돼노? 촌에서 맨날 죽으라꼬 일만 하다가, 또 뼈 빠지게 죽을 고상하러 내가 가야 하노! 동무들처럼 핵교도 못 댕깄는데, 와 내가 가야 하노? 농사 지으믄서 고상 고상 하다가, 죽을지도 모리는 곳에 내가 와 끌리가야 하노? 와 내만 맨날 죽도록 고상해야 하노?’

   그는 그동안 농사일하면서 아배한테 툭하면 욕 바가지에 두들겨 맞던 때가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아배가 자기한테 절절매는 꼴을 보고 싶었다.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순진한 시골 청년 영수는 식구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할배와 아배, 승찬이와 영철이 다 미웠다.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 내가 가믄 보기 싫은 꼬라지들 안 보고 살고, 속이 시원하겄제. 내 없이면 농사 짓는 것도, 모두 생고생 할 끼다.’

   그는 속이 후련해지면서 기분이 통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가뿌자! 외삼촌도 그라고 성국이 행님도 그란다 아이가. 모두 내가 갔으믄 하고 바라는데, 우짤 끼고? 내가 가뿌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속이 후련했다. 영수는 아침을 먹고, 외사촌 성국이 형과 함께 봉현마을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영수를 보고 아배는 예의 고함도 지르지 않고 영수 눈치를 슬슬 살폈다. 영수는 할배와 아배에게 하동장 집안을 위해서 자기가 강제징용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수 말을 듣고 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하루는 유달리 길었다. 할배도 영수 눈치를 살폈다.

   아배는 혹시 영수가 어딜 도망갈까 봐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통시에 갈 때도 “어데 가노?”하고 뒤따라오고 도망갈 낌새라도 있는지 유심히 아들 얼굴을 살폈다. 할배도 바깥마당에 나와 밤늦도록 둘째 손자 영수가 도망칠까 봐 서성거리며 전전긍긍했다.

   할배와 아배가 하는 꼴을 보고 영수는 또 욱하며 ‘내가 왜 가야 하노?’하고 심연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원망과 분노와 반항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심지어 저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 집구석에 보기 싫은 꼬라지들 더는 안 보고 좋다 아이가! 아이고, 인자는 징글징글하다. 그래! 이 집구석을 나가뿌자.’

   생각에 여기까지 미치자, 영수는 눈을 잘끈 감고 잠을 청했다.    

   대청마루 게으른 괘종시계 추 돌아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리고, 마치 째각 째각 시한폭탄 초침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쩌벅 쩌벅 순사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삐이꺽 대문 열리는 소리, 또 쩌벅 쩌벅 바깥마당으로 들어오는 발소리, 이내 안채 마당에서 멈춘 발걸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영수는 버둥거리며 발을 힘껏 내질렀다. 털썩! 이불이 앉은뱅이 책상에 부딪히는 소리, 대청마루에서 아배가 요강에 오줌을 누고, 영수 자는 방문을 열었다가 살며시 닫는 인기척이 들리고, 영수는 허공에 붕 떠 있던 나신이 끝없이 벼랑 낭떠러지로 천 길 계곡으로 떨어지는 꿈도 꾸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밤새 벼랑으로 떨어지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밥을 먹고 통시깐에 갔다. 아배가 뒷짐을 지고 따라왔다.

   어메는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할매는 “아이고 내 새끼 우짜꼬!”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수는 입안이 마르고 입속에서 단내가 났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하동장 텃밭 언덕을 쳐다보고 대문을 나서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하동장 둘째 손자 영수가 끌려갔다. 농번기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즈음, 영수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 일제가 관공서에 동원 인원을 할당하고 징용 대상 나이 하한선도 13세~15세로 대폭 낮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골 마을마다 면사무소 직원과 순사가 징용 영장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갔다.

   “안 갈 끼요! 와 내가 끌려가야 하는데요?” 봉현마을 영수 동무인 동수가 반항했다.

   “영장이 나왔는데 안 갈라 카믄, 너거 아부지가 대신 가야한다. 그라믄 너거 아부지 잡아갈란다.” 순사가 으름장을 놓았다.

   아버지를 잡아가겠다고 하는데, 동수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봉현마을에서 남자는 여섯 명이, 여자는 세 명이 잡혀갔다.

   면사무소 직원과 순사가 호구 조사표를 들고 다니면서 집집마다 들이닥쳐 벽장 속이나 보리 삐까리 뒤에 숨어 있던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다 찾아내서 잡아갔다. 끌려가는 아이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울지도 못하고 얼이 빠진 채 질질 끌려갔고, 어른들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그나마 정신이 있는 아이는 “아부지! 아부지! 내 좀 살리주이소!”하고 울부짖으며 끌려가고, 어떤 아이는 눈물만 줄줄 흘리며 넋을 잃고 끌려갔다. 여자아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혼절한 채 끌려갔다.

   순이가 사는 아랫마을에서도 남자 다섯 명에 여자 네 명이 잡혀갔는데, 순이네는 남동생 창식이가 잡혀갔다. 봉림면에서 남자 오십여 명, 여자 이십여 명이 강제로 잡혀갔다.

   “아이고, 아이고! 우짜믄 좋노! 우짜믄 좋노! 아이고!” 봉현마을 율산댁이 곡을 했다. 외동딸 옥이가 잡혀가자 그녀는 마당에 퍼질러 앉았다.   

   “아이고, 동수야! 우리 동수야! 인자 가뿌믄 언제 볼 끼고? 내 죽고 나믄 올 끼가? 아이고! 우리 동수야!” 동수 할매가 울부짖었다.

   마을마다 줄초상이 난 것처럼 울음바다로 변했다. 하나뿐인 아들이나 딸을 빼앗긴 부모들은 정신을 놓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낙들은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하고, 남정네들은 뒷짐을 진 채 먼 산을 바라보며 주르륵 눈물만 흘렸다.

   봉현마을 골목은 휑하니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고, 동네 강아지들만 멋모르고 뛰어다녔다.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처량한 곡소리는 들판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귀뚜라미 소리에 뒤섞여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영수가 애지중지하던 댕댕이 ‘짱구’도 그가 떠나자 고개를 쳐들고 종일 커어엉 커어엉 하고 구슬피 울고, 고양이 ‘뺑구’도 사료를 먹지 않고 엎드려 눈만 꺼벅꺼벅하며 슬픈 표정을 짓고 종일 시무룩했다.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는 부두에서 큰 배로 옮겨탔다. 배 안에는 쌀과 콩 등 곡식이 한쪽에 쌓여 있고, 염소와 돼지와 닭 등 가축들도 실려 있어 똥오줌 냄새가 진동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객실과 갑판에는 아이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뱃고동이 울리고 닻을 올린 뱃머리는 서서히 육지로부터 멀어졌다. 이때까지 넋을 잃고 놀란 올빼미 눈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하고 우는가 하면, “할매, 할매!”하고 우는 아이도 있고, 여자아이들은 모두 소리 내어 “엉엉”하고 울었다.

   영수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국민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고, 어릴 때부터 집안 심부름에 소소한 집안일까지 하다가 덩치가 어른만 해지자 머슴 일 배우느라 밤낮없이 생고생만 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낯선 땅으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자신의 신세가 억울하고 원통하고 처량했다. 철이 든 영수는 울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이젠 부모를 원망해도 세상을 원망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며, 꼴 보기 싫은 아배와 할배 낯짝 안 보고 사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자위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배는 사흘 밤낮을 달려 어두컴컴한 저녁 무렵에 뭍에 도착했다. 남자들만 내리고 여자아이들을 실은 배는 삐걱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둑어둑한 초저녁이라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었고, 불빛도 없고 민가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영수가 내린 뭍은 섬이었다. 배 안에서 며칠을 지냈는지 모두 녹초가 되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여기가 섬인지 육지인지 전혀 가늠이 안 되었다.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배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니 허리에 칼을 찬 일본 순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바카야로! 조센징! 코노야로! 조센징!”

   영수와 그 일행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이다. 씨름선수만 한 덩치에 인상이 험상궂게 생긴 순사가 앞으로 나와, 손짓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한 줄로 서서 앞 사람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걸으라고 했다. 이 순사의 지시에 따라 다른 순사들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코노야로! 조센징! 바카야로! 보케! 조센징!”

   영수는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조센징은 조선 사람을 말하는 거 같았다. 도착한 첫날 밤에 순사들은 함바 하나에 노동자들을 열 명씩 집어넣으면서, 회초리를 마구 휘두르며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영수 일행은 정신없이 앞 사람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방은 합판으로 덧씌우고 벽체는 판자를 덧댄 임시거처 같았다. 돼지우리처럼 방안은 구린내와 곰팡내로 악취가 진동하고, 파도를 막기 위해 붙여놓은 널빤지 사이로 바닷물이 밀어닥쳐 방바닥은 축축하고 끈적끈적했다.

   영수는 봉현마을 동수와 함께 같은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은 모두 아이들이 배정되었다. 저녁은 깻묵에 현미가 조금 섞인 밥이 나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그곳에서 주는 깻묵 밥을 받아먹고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호루라기 소리에 잠이 깼다.

   여기저기서 “바카야로! 조센징!” “코노야로! 조센징!”하는 일본 순사들의 고함과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비명이 마구 뒤섞여 난장판이었다. 어제 배에서 내린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은 공터에 다 모였다. 반대편 공터에도 노동자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이미 여기서 작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순사들은 영수와 함께 온 조선인 노동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이름 대신 번호를 나누어주었다. 그날부터 그들은 노동자를 번호로 불렸다. 그들은 함바를 나누어 감독하면서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영수가 묵는 함바의 감독 이름은 ‘기무라’였다. 그는 일본 순사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 칼을 찼지만, 왠지 친근감이 가는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침부터 정신 줄을 빼앗긴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은 겁에 질려 감독이 손짓하는 대로 훈련받는 개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전 내내 기합과 구타에 시달리느라 모두 얼이 빠졌다. 점심도 깻묵 밥이 나왔는데 어떤 사람은 먹지 않고 버렸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주워 허리춤에 감췄다.

   점심을 먹고 영수가 주변을 휘둘러보니 섬은 축구장 서너 배만큼 넓었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땅이었다. 사나운 범고래가 물 위로 솟구치듯이 이층 집채보다 더 큰 파도가 몰아쳐서, 거무죽죽한 벽돌 관사를 덮치고 판자를 덧댄 함바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섬 둘레는 시커먼 바위와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그 너머엔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이무기처럼 달려드는 사나운 파도가 넘나들었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각 함바에 방장을 선임했다. 기무라가 듬직한 영수를 방장으로 지명했다. 그날부터 영수는 방장으로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함바 인원을 파악하고 문제의 징후가 있으면 즉시 감독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영수가 방장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에게 많이 의지했다. 이곳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도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감독에게 보고도 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았다.

   영수 또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니 고향이 어데고?”

   “내는 봉림면 하동마을이다. 니는 어데고?” 영수가 말했다.

   “어! 내는 범동마을이다. 내 이름은 만수다.”

   “그래, 내 이름은 영수다.”

   그날부터 영수는 같은 함바에서 지내는 아이들 이름과 고향, 나이 등에 관해 물어보았다. 다들 영수와 같은 봉림면 출신이라 정감이 갔고, 나이는 대부분 영수보다 어렸으며, 세 명은 영수보다 형이었다.

   열 명 중에서 영수만 빼고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셋이나 되었다. 같은 함바 아이들에 대해서 알고 난 뒤부터 영수는 그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더욱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일본인 우두머리 감독이 노동자들을 공터에 모아놓고 너희들 중에 일본말 할 줄 아는 사람 있으면 손들라고 하여 몇몇 조선인 노동자들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든 그들은 불려 나가 즉석에서 구두시험을 치르고 세 명이 뽑혔다. 그때부터 그 세 사람은 일본인 감독의 통역을 맡으면서 모든 침식을 관사에서 했다. 조선인 통역 담당이 선정된 것이다.

   통역 담당을 통해 드디어 징용 노동자들에게 작업이 할당되었다. 오늘부터 2교대로 12시간 일하고, 굴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운반하는 작업을 하라고 전했다. 작업 할당량도 떨어졌다. 하루에 채탄 할당량은 화차 10트럭, 15트럭으로 탄의 질에 따라 달랐다. 막장에서 채탄하는 작업 도구는 곡괭이와 삽과 재래식 장비가 전부였고, 할당량을 다 못 채우면 그나마 조금 주던 깻묵 밥도 안 준다고 했다.

   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갱도는 처음엔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곧바로 40도에서 45도 급경사로 내려갔다.

   ‘아이고! 우째 이래 깔딱시린 데서 일하노? 일하다가 넘어지믄, 그냥 저 속에 파묻히겠네. 우짜든지 조심해야제.’ 영수는 아찔했다.

   “아! 영수야! 이리 우험한 데서 우째 일하노?” 같은 봉현마을 출신 동수가 말했다.

   “내도 모르겠다. 니 고무줄이나 끄나풀 있나? 여서 일할 때, 몸을 서로 묶아가지고 일하믄 그래도 괜찬을성 싶다.” 영수가 말했다.   

   영수 말대로 막장에서 채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몸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어 고무줄이나 끈으로 서로의 몸을 묶고 일했다.

   갱도 안의 작업 환경은 참혹했다. 매캐한 석탄 가루와 먼지, 평균 45도가 넘는 고온에 습도는 90퍼센트를 넘었고, 유독가스가 분출되어 막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금세 땀에 절어 파김치가 되었다. 바닥에는 물이 고인 곳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와 토할 것만 같았다. 고인 물은 검푸르다 못해 푸르죽죽하여 음침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갱도에 바닷물이 새어 들어와 매일 물을 밖으로 퍼내면서 채굴 작업을 했다.

   노동자들은 매끼 주는 깻묵 밥을 먹고 배고픔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지냈다. 어떤 노동자가 굶주림에 시달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풀을 뜯어 먹었는데, 독미나리에 중독되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후에 죽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밥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데, 어린아이 주먹만 한 깻묵 밥을 먹고 갱도에 들어가서 한나절 동안 석탄을 캐면서 중노동을 하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물을 한 바가지 마시기도 하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종일 갈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징용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중노동에다 과도한 할당과 휴식 시간도 없이 장시간 혹사에 시달렸다. 열악한 갱도에서 12시간 과도한 노동으로 혹사당하고, 작업을 마치고 함바로 들어오면 방 안은 습기와 땀으로 악취가 코를 찔러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였다. 함바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지만, 역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밤에는 벼룩 때문에 전신이 가려워 잠도 쉬이 들지 못하고, 쥐는 벽체 틈새로 들어와 자는 노동자 몸을 타고 다니기도 해, 숙소 환경은 최악이었다. 질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했고, 온몸이 벼룩에 물려 긁어서 전신이 마치 칼로 그어놓은 듯한 상처투성이로 뒤덮인 노동자도 있었다.

   아침은 호루라기 소리로 시작됐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문을 탕탕 두드리며 일본인 감독들이 고함을 질렀다. “바카야로! 조센징!” “고노야로! 조센징”하는 욕설이 마구 뒤섞여 들렸다. 게다가 우두머리 감독의 포악한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예사로 매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 댔다. 징용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구타와 폭행에 시달렸다.

   “바카야로! 조센징!” 우두머리 감독은 제대로 일을 못 하는 노동자에게 욕설과 함께 채찍을 휘둘러댔다.

   “코노야로! 치쿠소메!”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힘에 부쳐 쉬거나 일을 빨리하지 않으면, 그는 몸둥이로 두들겨 팼다.

   ‘딱!’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고, 노동자 한 명이 연신 방귀를 뽕뽕뽕 뀌면서 “아! 아야야!” 소리 지르면서 나뒹굴었다. 그는 몽둥이에 엉치뼈를 두드려맞았다.

   다음 날 그 노동자는 반대쪽 팔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불구가 되는가 싶더니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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