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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고닫기 OPCL May 24. 2021

장애인 복지 정책에는 '특별함'이 있다?

2021년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난 다음 날에 기록한 글.

어제부로 올해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났다. 언제나처럼 치열한 선거였다. 여기서 '치열한'은 후보들뿐 아니라 투표 참여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치열함도 속해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많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특별하게 느낀 내용들이 있어 적어보고자 한다.



'없으면 말고' 법

지난 2019년, *공직선거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그중에서도 제67조의 2 1항에는 장애인의 투표 편의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소는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등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 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규칙에는 조건 하나가 붙는다. '다만 원활한 투표 관리를 위해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는 곧 필수가 아니라는 거다. 다시 말해 '편의 시설이 없으면 말고!'다.

출처 | 부산일보

(제67조의 2 2항에 따라 이동 약자가 투표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공직선거법
: 우리나라 선거에 필요한 법



있어도 무의미한 법

올해 선거에서는 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이 있었음에도 사전 투표부터 장애인의 투표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투표소 직원이 공직선거법을 숙지하지 못해 동행인의 정당한 투표 보조 행위가 거부된 사례에서 비롯됐다.

출처 | 경향신문

사례 1
서울에 사는 A 씨는 뇌 병변 장애인으로 손이 계속 흔들리는 장애 특성이 있다. 그는 지난 2일 활동 지원사와 함께 투표소를 방문했다. 활동 지원사가 투표를 돕기 위해 기표소에 함께 들어가려 했지만 투표소 직원이 막아섰다. 결국 직원은 A 씨를 활동 지원사와 분리시키고 가림막도 없는 탁자에서 기표하게 했다. 이는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라는 공직선거법이 지켜지지 않기도 한 사례다.

사례 2
부산에 사는 지적장애인 C 씨는 지난 3일 어머니와 투표소를 방문했다. 어머니가 C 씨와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무원은 '지체, 시각장애인만 보조인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라며 제지했다. 어머니가 항의하자 직원은 '내가 데리고 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이 또한 어머니가 항의하자 결국 직원은 C 씨 혼자 기표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혼자서 기표가 어려웠던 C 씨는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사례 3
경기도에 사는 발달장애인 D 씨도 투표소 직원으로부터 '지체장애가 아니면 보조인을 둘 수 없다'라며 제지를 받았다. 결국 D 씨의 어머니도 항의했다. 그러자 투표소 직원은 'D 씨, D 씨 어머니, 직원'이 함께 기표대에 들어가도록 했다. 심지어 직원은 투표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D 씨와 어머니에게 보조원과 함께 투표했다는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며 개인 정보를 따로 수집했다.


그렇다면 투표소 직원들은 왜 이렇게 밖에 대처할 수 없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위 세 법안에 대한 차이를 알겠는가? 그렇다. 투표소 직원들이 이들을 제재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침을 바꾸며 시작된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시각장애, 신체장애 유권자라는 문구가 빠지게 되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에게만 보조인을 허용하는 공직선거법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관계자는 말했다. 결국 2021년 재·보궐선거를 앞두며 법안은 다시 개정되었다. 그렇게 투표소 직원들은 짧은 주기로 바뀐 법안, 그리고 장애에 대한 한정된 범위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이번 총선에서 일부 장애인들에게는 '있어도 무의미한 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소수라서 어쩔 수 없는 법

현재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형 선거공보물이 제공된다. 하지만 점자 선거공보물은 활자물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이유는 공직선거법 제65조 2의 제1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 공직선거법 내용에 따라 점자는 활자보다 차지하는 면적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점자 선거 공보물에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다. 이에 대해 한 시각장애인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지만 2020년 9월에 기각되고 만다. 이유는 점자 선거 공보에 핵심 내용을 포함하도록 규정해 선거권 침해를 예방했고, 시각장애인이 선거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많으며 국가가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보물
: 선거 홍보물(포스터, 현수막 등)



무책임한 법(feat. 할 수 있지만, 못할 수도 있어!)

 공직선거법 82조 2항에는 '후보자 연설 방송에서 청각장애인 선거인을 위해 한국수어 또는 자막을 방영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를 다시 읽어보면 '방영해야 한다'라는 의무가 아닌 '방영할 수 있다'라는 *권고성 문장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로 생기는 일은 무엇일까?

출처 | 파이낸셜 뉴스

 바로 두세 명 이상의 후보자가 나오는 토론회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참석자를 전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수어 통역자의 위치 때문에 특정 후보에 시선이 고정되고, 누구의 발언인지도 모를 수밖에 없던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권고성
: 권유하다



이 네 가지 사례만 봐도 장애인 관련 정책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이처럼 여전히 우리나라 정책은 장애인에게도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한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장애인에게 있어 불합리한 정책이 얼마나 많고 심각한 일인지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을 알아야 악법을 없앨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실현 가능한 법은 얼마나 될까? 정말 모든 정책이 모든 장애인에게 이롭게 적용되고 있는 걸까? 나는 비장애인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정책이 아직까지 수두룩하다. 한편 신체나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에게는 나보다 더 필요한 정책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당근 마켓, 2021 재보궐 선거 정보 확인 서비스


얼마 전 당근 마켓 앱(App)에서는 지역 커뮤니티로서 투표소가 있는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준비물까지 알려주는 서비스를 지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장애인들의 출입이 쉬운 곳을 안내해준다던지, 투표에 있어 필요한 공직 조력자의 역할을 함께할 수 있는 서비스 또한 지원되었다면 이들에게도 더욱 유익한 서비스가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정책이 빠르게 바뀔 수 없다면,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들이 움직여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에게 편리한 시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더 편리하다는 사실을.



에디터 '옌'의 3줄 요약
1. 장애인에게 불합리한 주요 선거법 4가지
 ① 없으면 말고 법
 ② 있어도 무의미한 법
 ③ 소수라서 어쩔 수 없는 법
 ④ 무책임한 법(feat. 할 수 있지만, 못할 수도 있어!)
2.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적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3. 장애인에게 편리한 시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더 편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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