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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ia Feb 28. 2024

20240228_비행기 모드

늦은 저녁 단톡방에 그림벙개 공지가 떴다. 사실 수시로 뜨긴 하지만... 내일 시간 되는 사람들은 지정된 장소로 오라는 내용이다. 이 톡방에 초대받은 지는 몇 년 되었다. 요즘 날도 많이 풀리고 야외에서 그리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오랜만에 콧바람도 쐴 겸 모임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참석합니다.”라고 남기고 가방도 싸 놓았다.

다음날 아침, 몸이 무겁다. 어제 글을 다 써 놓고 뒤로 가기를 잘못 눌러 쓴 글들을 몽땅 날려 처음부터 다시 쓰느라 화병이 나 아침에 늦잠을 자버렸다.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지만 참석한다고 내 입으로 뱉은 말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모든 게 낯선 것투성이다. 그래도 “나오니까 좋다.”


그림책 작업은 긴 호흡으로 하나의 결로 가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중간에 멈추면 그 흐름이 흐트러져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가 않다. 작년까지 각종 수업에 쉴새가 없이 달리다 보니 정작 본업인 그림책을 중간에 멈추곤 아직까지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어 슬슬 조바심이 난다. 왜 이렇게 그림 그리기가 싫은지... 사람들은 말한다. 정말 좋아하는 건 직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그 이유를 알 것 같지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 보니 나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 이쯤 되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는 내 프로필은 아마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좋아한다면 맨날 그리고 밥 먹고 나서도, 자고 일어나서도 그려댔겠지. 그림책 작업이 내 일상에 [On 모드] 라면 어반 드로잉은 나에게 있어 [Off:비행기 모드]와 같다. 본업이 잘 안 풀릴 때 머리를 식히러 골목투어를 하며 그날의 분위기를 짧은 호흡으로 한 장에 담고 “오늘도 즐거웠다.” 로 마무리하는 쉬어가는 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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