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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ia Mar 20. 2024

20240319_그곳에 가면

      종로에 그림 그리러 가곤 하는데, 그곳은 그릴거리, 볼거리, 맛집으로 가득하다. 신도시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세월을 품은 한옥집. 좁고 복잡하지만 그들만의 질서가 있는 아기자기한 골목집. 돌아보면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비틀즈를 좋아했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설레었다.

      한때, 어쩌면 지금도, 한 소녀의 마음을 훔친 시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이곳은 오랜 시간 방치된 아파트의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가압장은 고지대 등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말하는데, 문학관을 새로 짓지 않고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의 형태를 보존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세월을 가득 담고 있는, 나이 든 건물들을 좋아하는 터라 이곳이 더 애착이 간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이 있다. 건물 벽 콘크리트에 그대로 남아있는 물때를 보면 거대한 또 하나의 우물이 연상된다. 그의 삶을 형상화한 듯 건물 전체가 시인의 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의 한 구절이다. 그의 집 마당에 있던 ‘우물’에 비친 달, 하늘, 자신을 보고 시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우리는 가끔 사물이나 자연에 마음을 빗대기도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그런 심리가 아닐까.


     문학관 뒤쪽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언덕’에 다다른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 언덕에 올라와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곳에 적힌 ‘서시’를 읽으며 걸으니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어른이 되어도 기댈 곳은 필요하다. 나도 내 언덕 하나 생길 수 있길.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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