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점일기 018

시작이 일상

by 윤 서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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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두부(서점원의 반려묘)가 소주잔을 깼다. 치우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 올려 둔 내 잘못이지. 덕분에 난데없이 새벽 청소를 하게 됐다. 이웃에 방해가 될까 청소기를 돌릴 수도 없어서 물티슈로 대충대충 닦아냈다. 그 와중에 또 깨진 유리에 손을 베었다. 굉장히 익숙한 감각!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에게도 한참이나 칼과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양공장에서 일을 하던 때와 정육점에서 일을 할 때. 칼에 베이거나 찔렸을 때 느껴지는 싸하고 찌릿한 감각. 조심을 한다고 조심을 해도 분기별로 한번씩은 상처가 났고, 그건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13년 경력의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칼을 쥐고 있으면 칼에 상처를 받고, 돈을 쥐고 있으면 돈에 상처를 받고, 사람을 쥐고 있으면 반드시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 마련. 오- 인생이여. 이런 잡생각으로 청소를 마치고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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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 두 가전기기의 싸움이 한창이다. 겨울에 접어들 무렵, 어쩐 일인지 한동안 기침이 멈추지 않았는데 원인은 코로나가 아닌 건조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만한 가습기가 하나 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가습기 하나 틀어 놓으니 자기 전과 일어난 후 토할 듯이 몰아치던 기침이 싹 사라졌다. 쾌적한 환경! 이것이야 말로 삶의 질 향상!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인가? 따위의 감탄을 했고, 이왕 문명의 혜택을 경험한 거 예전부터 눈 여겨 보던 공기청정기도 하나 들여놓았다. 나의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하지만 나는 몰랐지, 두 가전기기가 서로 앙숙일 줄이야. 가습기는 열심히 습도를 높였고, 공기청정기는 열심히 습도를 줄였다. 얌전히 작동하던 공기청정기가 가습기만 틀면 우웨에에엥- 하며 공습 싸이렌을 울리듯 모터를 돌리며 화를 낸다. 그러면 가습기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잔잔히 퐁퐁퐁- 만들던 습기를 거의 뭐 방역차마냥 뿌아아앙- 하고 내뿜는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의 싸움이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둘 다 야간모드로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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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새벽에 깬 이후로 다시 잠들지 못하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깅도 하고 홈트도 하고 아침밥도 챙겨 먹고 사람들의 출근 시간이 되면 못 돌린 청소기도 다시 돌리고 새나라의 어른이마냥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 생활을 패턴으로 만들어 볼까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해가 뜨니 다시 잠들었다. 해볼까 했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평소대로 알람이 울리자 평소대로 ‘아 그냥 하루 쉴까’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군. 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몸소 깨달으며 오늘 하루를 보통 사람들보다 느지막하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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