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미산가 팔찌. 실을 엮어 만드는 간단한 장신구지만, 한번 매듭을 지어 묶으면 웬만해선 풀리지 않는다. 강제로 잘라내거나, 정말 몸의 일부로 삼고 지내면서 자연스레 낡고 헤져서 끊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자연스레 닳아서 끊어질 때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팔찌를 맬 때 소원을 빌면, 언젠가 닳아서 끊어질 때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로맨틱한 미신도 있다. 그래서 ‘소원팔찌’로 더 많이 불리기도 하고.
어제, 내가 차고 있던 마지막 미산가 팔찌가 툭 하고는 끊어졌다. 요 팔찌는 서점을 오픈하기 이전(2019년 이전)부터 찼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자 시절에는 잔뜩 차고 다녔더니 막상 팔찌가 끊어졌을 때 언제 어떤 소원을 빌며 매듭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이 팔찌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래서 아쉬움 보다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소중한 내 소원이 이루어지겠군! 마침내.
물론 그동안 팔찌가 끊어지며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었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내 삶이 당시에 바랐던 대로 흘러온 것 같으니까, ‘이루어지긴 이루어지는데, 그게 즉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정도로 대답하겠다.
기쁜 날이다. 몇 년을 몸처럼 지냈더니 그 얇은 몇 가닥의 실이 없어진 지금, 굉장히 허전해서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니 기쁘다. 이제 내 몸에 장신구는 유니세프팀 팔찌가 유일하다. 미산가 팔찌는 요번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때 다시 하나씩 착용할 생각이다. 예전에는 어디든 여행을 가면 숙소에서 팔찌를 만들고 있는 여행자가 꼭 한 명은 있었는데, 그들에게 팔찌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엉성한 팔찌를 기념 선물이라며 주고받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디로 가야 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팔찌여. 기쁜 날, 내 소원을 이루어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