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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Jul 15. 2020

안방마님일 때 보이는 것들

배신감과 사람보는 안목

나는 낯선 이에게 마음을 쉽게 열고 잘 믿는 편이라 처음엔 비교적 관계 맺기가 쉽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 중 어떤 이는 그 관계가 지속되고 어떤 이는 나중에 내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되어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내게 처음으로 인간에 의한 배신감을 느끼게 한 사람은 같은 과 대학동기였다. 3학년 무렵 친해져서 졸업작품을 같이 준비하게 되었는데(2인1작), 그녀는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한 학기 내내 작업실에 한 번 나타나지 않고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를 해 내게 큰 배신감을 줬었다. 학생을 무섭게 다그치기로 유명한 설계교수로부터 홀로 질책받으며 얼마나 큰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로 내게는 자면서 이를 가는 버릇이 생겼다. 


또 한 명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만난 같은 팀 선배 언니로 직장생활에 필요한 팁을 알려주고 낯설고 힘든 시기에 의지가 되었었다. 처음엔 직장생활의 힘든 점을 나누는 사이였는데 점차 친해지면서 끊임없이 자기 가족을 자랑하고 별것 아닌 일들을 비밀로 해 관계가 소원해졌다. 나중에 타인을 통해 그녀의 비밀과 이중적인 행동들을 알게됐을 때 그녀의 두 얼굴에 어이없음과 충격을 받았었다.


둘 다 당시에는 믿었던 친구와 지인이었기에 관계가 끝나고도 상처와 배신감으로 한동안 큰 분노를 느꼈었다. 



그런데 오늘 가만히 떠올려보니 그들은 내게 손해와 상처를 입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다. 둘 다 내가 외롭던 시기(전자는 친한 친구가 휴학을 해서 과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던 때, 후자는 직장에 처음 들어가 모든 게 낯설던 시기)에 알게 되었고, 졸업작품전과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해야했기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수시로 자괴감에 빠져들던 때였다. 말하자면 둘 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닌 시기에 만나 마음의 안방자리를 내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전자는 필요에 의한 관계를 맺고 자신의 목적달성이 최우선인 유형이고 후자는 자존감이 낮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비밀로 하고 자기 주변 자랑을 과하게 늘어놓는 유형인데, 내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봤던 게 공통점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 보는 안목이 없던 내가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어했던 시기에 그들을 만났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은 내게 상처를 줄 어떤 의도도 갖고있지 않았고 그저 자기가 생긴대로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배신당했고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 "그들은 세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야. 나를 이용하고 해코지하려고 접근한 게 아니야. 다만 내가 외롭고 힘들어서 사람보는 눈이 없을 때 그들을 만났던 거야. 그러니 담번에 누굴 만나면 냉큼 안방을 내주는 게 아니라 툇마루나 사랑방 정도 내어주고 천천히 살펴보고 친해지면 돼.'하면서 무의식의 세계에서부터 나를 조금씩 토닥이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잘 믿고 내 마음을 확 열어보이는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 인생의 안방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누가 찾아와도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을 이제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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