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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Nov 04. 2020

시댁 마일리지

시댁에는 언제 좋은 마음으로 갈 수 있을까

결혼 전 남편집으로 인사를 갔을 때 아버지(지금의 시아버지)가 처음 하셨던 말씀이 "아이고, 이렇게 없는 집에 시집와서 어떡하노" 였다. 당시엔 농담이겠거니 하며 웃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뼈가 있는 말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시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시아버지는 매달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항암치료를 하러 오셨고 그때 결재하는 기차표와 병원비는 남편의 카드라는 걸 결혼하고 알았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얼마나 좋은지 암환자는 특례 적용이 되어 본인부담이 5%이다. 그러니 실재 결재되는 금액은 몇천원, 많아도 몇만원 남짓이었다. 그런데 항암 사이클이 몇 번 돌고나니 더 이상 치료효과가 없게 되고 병원에서는 새로나온 면역항암제를 권했다. 문제는 그 약이 비급여라는 사실. 한번 맞는데 약 600만원이 드는 약이었다. 그걸 4주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하니 어떤 달은 카드 결제액만 1000만원이 넘는 경우가 생겼다. 남편도 나도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제약사에서 환급해주는 금액이 약 50%여서 그나마 적은 금액(?)으로 첫 번째 면역항암제 사이클이 끝났다. 병원비 부담에 집을 팔고 집안에 불화가 생긴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그것도 한 사이클이 끝나고 나서 몇 개월을 쉬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통증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시어머니께 푸는 날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시아버지가 병원에 오시는 날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약을 타다 드리고 필요한 서류를 받아오는 걸로 내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점점 요구사항이 복잡해졌다. 전동침대가 편할 것 같다, 에어콘이 고장났다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아들한테 요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화가났다. 내 친정 일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거야 라며 마음을 다독이려 했지만, 그런 요구를 너무나 당연하게 하는 시부모님과 시누이, 그걸 너무 당연하게 척척 해내는 남편을 보면서 화가 나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최근에 또 어이없는 일이 있었는데 시아버지 묫자리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선산의 어느 위치에 묻히고 싶으셨다는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본인이 묻힐 묘의 그림을 그려서 이렇게 해달라고 했단다.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묘 둘레로 화강암을 두르는 것이었다. 돌값만 7~800만원이 들었고 공사비까지 해서 천만원이 나왔다.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에 있으셨던 시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보내준 과일과 주스가 너무 많았다며 몇번이나 고맙다고 얘기를 했다. 고작 귤 한 상자에 쥬스 3병이 뭐가 그리 고마울까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본인과 남편이 묻힐 묫자리를 원하는대로 만들어준 데대한 고마움이었던 거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드린다는데 아버지 마음이 좋으시다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맡겨질 숙제였다. 이번에 공사하면서 시부모님 무덤 주변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무덤도 이장해온다는 계획으로 무덤 4기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벌초와 관리를 남편이 해야 할 상황이 예상되는 것이다.

지금은 사촌형들과 만나서 일년에 한번 벌초를 하는데 형들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벌초는 남편 몫이 될 것을 생각하니 남편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기분 좋게 효도하고 돌아온 그날부터 남편은 몇일간 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났었다. 막상 앞날을 생각하니 부담감과 걱정이 꽤 큰 모양이었다.


이 문제는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싶어 먼발치서 구경하는 입장으로 지켜보던 나도 남편이 스트레스 받아하는 걸 보니 점점 짜증이 나고 원망이 시부모님께 가기 시작했다. 죽고나면 아무런 기억도 없을텐데 그렇게 무덤을 만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하루하루 본인의 삶이 꺼져가는 환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금이라도 이후의 일을 생각한다면 시어머니도 그걸 말려야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오히려 그렇게 기뻐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시댁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스트레스 받아하면서도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는 효자아들인 남편이 미워지는 것이었다. 당신 부모님은 지금까지 돈 한 푼 모아둔 게 없대? 아들이 호구도 아니고 병원비, 기차표, 핸드폰 값에 인터넷 비용까지 당신이 왜 다 내야 하는데? 거기다 죽으면 없어질 몸이 뭐가 그리 아까워 화장 하지 말고 매장을 하라 하시고 무덤에 돌까지 두른대? 본인 무덤을 그림 그려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랬다는 얘긴 정말 처음이다. 그리고 딸(시누이)은 자식도 아니야? 딸은 뭐 하나 도와주는 것도 없으면서 병원에 나오는 것도 못한대?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적이 여러번이다.


그렇지만 참았다.

나는 이 집에 시집온 지 2년도 안된 며느리니까. 내가 모르는 이 집안의 내력과 분위기가 있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핏줄로 얽힌 내 부모의 일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내 남편이 마음 아파 할 거니까. 

그냥 아무 말도 안했다.


"내 죽으면 무덤같은 거 만들지 말고 깨끗이 화장해서 뿌려라. 그리고 내 제삿날엔 너희끼리 만나서 여행을 가든지 맛있는 거 밖에 나가서 사먹어라. 가끔 내 얘기하며 웃고 내 생각이나 해주면 좋겠다."

이런 쿨하고 멋진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럼 정말 제삿날마다 시부모님을 회상하며 참 멋지고 쿨한 분이라고 감사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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