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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Jun 30. 2020

(난임일기) 두번째 시험관 시술

못먹어도 고!

2020.6.4.(목) 3개의 수정란(8세포기 2개, 6세포기 1개)을 이식했다.

지난 번 수정란보다 상태가 좋다는 의사의 말에 그동안 챙겨먹었던 영양제가 힘을 발휘하는구나 싶었다.


채취, 수정, 배양, 이식이라고 하니 과학 용어같지만 이 과정은 노력과 의지, 기술로 사람 한 명을 창조해내는 일이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프로젝트이다. 


이번에는 이식 후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자 싶었다.

어차피 '될 놈 될, 안될 놈 안될'인데 가슴 졸이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편한 게 낫다는 게 한번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였다. 그래도 이식 후 2일째까지는 조심하며 집에만 있다가 3일째부터는 가까운 곳에 외식도 하러 나갔다. 3일째까지 아랫배가 묵직하고 허벅지까지 저리는 아픔에 뭔가 변화가 있구나 싶어 내심 기뻤다. 


맘 까페에서 다른 사람들의 착상증상을 검색하며 내 증상과 비교하고 이식 후 언제까지 착상이 일어나는 지 착상표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러다 이식 6일 부터 동네 까페에 나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오랜만에 재밌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잠시 동안 내 몸에 수정란이 착상 중이라는 생각도 깜빡하곤 했다.


이식 이후에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임신 유지 호르몬을 계속 투여하는데 지난 번에는 질정만 처방받아 썼는데, 이번에는 주사제와 질정을 같이 처방받았다. 나는 도저히 내 배에 주사를 놓을 수가 없어서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 전에 놔주었다. 이것도 처음엔 아프고 힘들다가 3일쯤 지나니 크게 힘들지 않게 됐다.


이식 12일차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로 임신 여부를 확인하지만 대개 그 전에 테스터기로 확인이 가능하다. 테스터 꽝이 나와도 주사와 질정을 그만둘 수 없고 당첨이 된다해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으니 이번에는 최대한 늦게 테스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9일차부터 테스터의 유혹에 흔들렸지만 참았다. 그런데 이미 이때 나는 결과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난번 착상이 됐을 때는 아랫배가 살살 아픈 느낌이 지속적으로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것도 없고 컨디션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었다. 이식 4일 정도엔 붓고 스치기만해도 아프던 가슴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살이 빠지는 것이 그랬다.


이식 11일차 새벽에 테스터의 깨끗한 한 줄을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탄식에 남편이 잠에서 깨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동안 마음 한켠으로 접어뒀던 걱정이 어둠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당장 올 연말엔 복직을 고민해야하고 다음 번 시술이 성공한다 해도 내 나이 44살에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울까하는 것들이었다. 나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클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이를 길러낼 정력과 젊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력이 필요할텐데 과연 환갑이 넘어서까지 그걸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침대에 누워서 남편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확실한 건 아이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심플했다. 원하는 때에 은퇴를 할 수 있고, 근교에 작은 전원주택이나 텃밭을 가꿀 땅을 사고 여행을 다니고 부담없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가 생긴다면 그런 삶은 영원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 모든 편안함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클까?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그 아이에겐 그것이 최상인걸까?


하지만 이 모든 걱정 때문에 아이(우주)창조 프로젝트의 남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돈은 더 벌 수도 있고 체력은 키울 수 있지만 가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론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걱정은 차곡차곡 접어 다시 마음 한켠으로 넣어둔다. 휴직할 때 최소 4번의 시술은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일단 2번 남았다.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시험관 시술의 정해진 절차이니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결과는 역시 꽝이었다. "두 번째 실패하니 진심 걱정이 된다."고 말했더니 의사는 "여러 번 하다보면 됩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고 몸관리, 운동 열심히 하시고 두 달 뒤에 봅시다." 한다.




다시 내게 두 달의 휴가가 주어졌다.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근육을 두른 활력 넘치는 몸을 만들어 다음 번에 도전하고 싶다. 

체지방율을 낮추고 근육량을 50%(현재 46~7%)로 높이기 위해서 실내 자전거를 사고 동네 뒷산에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못먹어도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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