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커리어) 자발적 낙오자, 돈에 눈뜨다

by 깊은바다 상어유영

공포와 두려움의 단어 '낙오'.

어릴 적 숙제 안 하고 놀면 엄마에게서 '나중에 낙오자가 되면 어떡할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낙오자'(그때는 '나고자'인 줄 알았다)는 내 심연 깊이 두려움으로 파고들었고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는 낙오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점철되었다.

학교, 전공, 직업, 사는 곳,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삶의 큰 과정은 대오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것만 얻으면 엄청난 희열과 행복이 따를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늦은 결혼과 시험관 그리고 출산 또한 대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내 두려움이 원동력이 되었다.


대오에서 벗어나는 초식동물은 맹수의 밥이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무리 속에서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하던 내가 시험관이라는 복병을 만나고 사직서를 냈다.

직업인에서 자발적으로 낙오자인 백수가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번이 두 번째 자발적 낙오인데 첫 번째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수능을 보러 재수학원에 들어간 거였다.

사실 그건 더 안전하고 나아 보이는 그룹으로 점프 업 하기 위한 낙오였기에 이번과는 결이 다르다.

이번에는 아이를 갖겠다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직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직서를 내자마자 국민연금,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바뀌었고 보험료, 핸드폰 등 각종 공과금과 붓고 있던 적금도 매달 내야 했다.

먹고 쓰는 돈이 아닌데도 그냥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돈은 그냥 현실이었다.

적금, 예금,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작은 돈들을 긁어 증권 계좌에 모으고 내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봤다.

생활비로 쓰면 일 년 안에 다 써버릴 정도로 변변치 않은 금액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제일 만만한 게 예금, 적금이지만 그건 너무 이자가 낮았다.

뭔가 적극적으로 돈을 불려야 할 것 같았는데 제일 접근이 쉬운 게 주식이었다.

지금껏 내 주식투자의 이력은 뉴스에 샀던 화장품 대장주를 손해 보고 판 게 전부였다.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싶어 산책하고 운동할 때 주식 투자 팟캐스트를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용어도 생소하고 내용의 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답답해하면서도 끊지 못하고 팟캐스트를 1년 이상 들었을까.

뉴스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고 들은 것과 주식 시장은 일치하지도 않았다.

한동안은 유튜브에 나와서 말하는 전문가들한테 실망해서 보지 않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과 너무나 결과가 달라서...

그냥 들어서는 답이 없겠다 싶었다.

이렇게 해서 언제 투자하고 돈을 버나 싶어 답답한 마음에 도서관에 갔다.


PER, EPS, 차트, 연준, 환율, 금리, CPI, 경상수지, 재정정책, 금융정책 등등 자주 나오는 용어부터 알고자 검색도 하고 노트에 정리도 했다.

돈을 왜 버는지, 얼마만큼 벌 것인지, 돈과 정치의 관계, 돈의 역사 같은 큰 흐름과 돈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정립해야 하는 필요성도 느꼈다.

맨큐의 경제학(만화)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경제와 돈에 대해 무지한지를 알았다.

매일 돈을 쓰면서 그에 대해 호기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 개탄스러웠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다.


코로나 때 유가가 마이너스를 찍고 주가가 바닥을 치고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를 한다고 팟캐스트에서 난리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투자 타이밍인지를 몰랐다.

조만간 주유소 기름값이 떨어지겠네 하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오르기 시작하던 한국 부동산은 양적완화를 등에 업고 날아올랐다.

인플레로 그나마 있던 티끌 같은 내 자산이 마구 녹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냥 까막눈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던가.

자발적 낙오자가 되니 소속은 없지만 자유가 주어졌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았다.

나라님 욕도 대놓고 할 수 있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좋아하는 역사, 예술, 심리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며 궁금하던 것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커지던 시기였다.


특히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계획하고 쓰고 누린다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그룹에 속해있을 때는 그룹에 속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시간이 컸다.

출근하고 일하다 보면 하루가 갔고 퇴근해도 일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시간보다는 그룹을 더 우선순위에 뒀다.

그룹의 정체성이 내 정체성을 대신했고 나라는 개인은 잊혀갔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그룹 정체성이 없어지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연하기도 했지만 내가 재밌어하는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계획하고 그대로 할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하니 이 행복을 계속 누리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생활을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돈으로 바꾸는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키우면 당연히 복귀할 거라던 노동시장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정확히 얘기하면 녹슬지 않고 사회 속에서 보람과 존재감을 느낄 정도로 노동하되 내 정체성과 시간이 침해받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싶어졌다.


우선 한달에 쓰는 생활비, 노후 준비, 아이 교육 등 목돈이 들어갈 것들의 규모를 알아야했다.

여행은 얼마나 자주 갈 것인지, 아이 교육은 어디서 어떻게 시킬 것인지, 하다못해 외식 횟수 등 내 생활 방식과 삶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

박봉의 공무원으로 살아와 씀씀이가 크지 않은게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이미 커져버린 씀씀이를 줄이면서 목표를 정하는 건 비현실적인 것을 알기에...


돈은 현실이면서 내 삶의 방향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지만 그에 휘둘리지 않고 부려야 하는 대상임을 알게됐다.

목표 금액과 수익률을 넣으니 최소 6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현업에 있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기간동안 쉬지않고 투자하고 노동도 해야했다.

환갑, 칠순, 팔순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감이 잡혔다.


자 이제부터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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