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커리어) 돌아 돌아 결국 나

운동을 시작한 첫 한 달은 아이 낳고 아픈 것보다 더 아팠다.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다 아팠다.

살면서 붙인 파스 수보다 그때 붙인 파스가 더 많았다.

아침에 눈 뜨면 밤새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피곤했다.

하지만 운동을 멈추진 않았다.

지금 멈추면 영원히 이 컨디션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늦게 낳은 것도 미안한데 엄마가 아프면 그건 아이에게 못할 짓이니까...


한 달쯤 지나니 덜 아프고 덜 피곤하고 체력도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혈당도 체크해보자 싶어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고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나는 당분이 들어가면 거의 매번 혈당이 피크를 쳤다.

엉망이던 식단도 조절해야 했기에 카페, 유튜브를 찾아 식단을 짰고 아침 식사만큼은 그대로 실천했다.

음료수, 면, 돈가스, 햄버거 같은 음식은 되도록 멀리했다.

내친김에 수영도 등록했다.

배워서 하는 운동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고 긴 더위에 지쳐 수영이 간절하기도 했다.

두 달 만에 몸무게는 앞자리가 바뀌었고 체지방율은 31%에서 24%로 떨어졌다.

체력이 나아지자 짜증도 덜났다.


길고 진한 더위가 가고 선선하고 쨍한 가을이 왔다.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주로 건강 관련 책을 읽었고 간혹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책도 읽었다.

운동하고 책 읽고 유튜브 보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오전 오후 내내 쉼 없이 움직이고 읽고 생각하느라 기력이 달린 채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조금 생긴 에너지는 하원하고 시작되는 육아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는 18개월이 넘자 자아가 생기기 시작해서 예전과 달라졌다.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다.

자기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아이도 답답해하고 나는 자꾸 조급해졌다.

밥도 해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하고 지금 씻어야 9시 전에 잠드는데... 그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지금 찾은 이 열정과 희망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내 시간과 열정을 아이가 뺐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잦았다.

열심히 만든 밥을 거부하거나 어르고 달래 한 시간이 넘도록 밥을 먹이고 나면 지치고 화가 났다.

특히 시간이 정해진 외출 전에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미친 여자처럼 소리 지르고 날뛰었다.


심하게 화낸 날은 모두 잠든 밤에 방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두 돌도 안된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아이의 영혼에 회복되지 않을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닌 건지,

오지 않을 아이를 시험관으로 억지로 오게 한건 아닌지,

또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은 다들 평온해 보이는 데 내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밤마다 걱정하고 반성했지만 다음 날 반복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며 호출이 왔고 등원 때 유난히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나를 짓누르자 운동도 공부도 자아실현도 사치였다.


25년 2월, 그날도 어김없이 등원 전쟁을 치르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선생님께 안겨주고 나오면서 어린이집 원장님 방으로 그냥 들어갔다.

원장님 방 테이블에 앉아서 눈물을 쏟았다.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나는 수영도 가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할 게 너무 많은데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가만히 듣던 원장님은 나에게 공부를 좀 하라고 했다.

공부?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러겠다고 하고 나왔다.

미칠 것 같던 마음을 쏟아낸 것만 해도 위로가 됐으니까.

하지만 공부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아파트 도서관에서 육아 관련 책을 찾아봤다.


거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찾게 됐다.

육아하면서 감정조절 안되고 분노를 반복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에 풀지 못한 분노와 억압된 내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상처받고 억압된 내면 아이를 보듬고 치유하고 용서해야 내 아이에게 그 상처를 대물림 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얘기였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나는 억울하게 혼나고 섬세하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은 여전히 미숙하고 상처받은 아이 상태이다 보니 육아 과정에서 계속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실마리를 찾게 되니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궁금한 게 많았다.

육아, 아동 발달, 심리 관련 서가에서 책을 골라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다.

소장하고 반복하여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절판된 것들은 중고서점에서 주문했다.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 늦은 밤까지 읽고 쓰고 회상하며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고 내 부모님과 그들의 부모님까지 양육환경과 그들의 삶을 이해해 보려고 상상력을 펼쳐봤다.


반복되던 답답함과 죄책감은 이유를 알고 나니 해결방법도 보였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모든 책임과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렸던 사고방식도 다르게 생각하니 한결 나아졌다.

이제야 내 마음을 답답하게 괴롭히던 문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무얼 하든 제일 중요한 건 건강과 체력.

그리고 편안한 마음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결국 돌아 돌아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 그때 읽은 책 중 많이 도움된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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