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2017)
각자가 살아온 세계
캐서린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버지와 남편의 포스트를 이어받는다. 잘 이어져 오던 신문사를 앞으로도 잘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신문사의 신념보다는 회사의 존속을 더 우선시한다. 신문사의 일은 따라가기도 벅차다. 자신에게 넘어온 막중한 책임을 수습하는데, 남들의 기대치를 따라가는데 급급하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당당히 얘기하지 못한다. 친한 이가 자기네 기사로 상처받을까 마음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다. 그 때문에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인 자신이 경영을 하게 될 거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미래만 그렸을 뿐이다. 그래도 포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은 넘친다. 그런 그녀에게 예상에도 없던, 그 사랑하는 포스트가 맡겨진다.
벤은 전형적인 언론인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고 자신의 일에 굉장히 몰두한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 주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기사를 보도함으로서 회사, 캐서린이 받게 될 손실, 피해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언론사의 사명감, 자신의 신념만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벤은 그런 꿈을 이룩하고 싶어 한다. 정부의 위협보다 그 위험천만하고 흥미진진한, 숨겨져 있다 드디어 발견된 사실을 가지고 선두에 서고 싶어 한다. 한발 앞서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한다.
진실이 나오기까지
진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이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사실을 발굴해야 된다. 그 사실에 얽힌 관계와 사건들을 파악하고 혹여나 이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죄 없는 이, 이와 무관한 이가 피해 입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이 사실에 얽힌 이해관계로부터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위협으로부터 잃을 수 있는 수만 가지 것들, 회사나 친구, 가족, 재산, 명성 등을 떠올려보고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 판단된다면 이제 밖으로 내보낸다. 이는 영화에서 눈에 띈 것만 적은 것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유로 공개되어야 할 많은 사실이 수면 아래 묻혀 우리를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 것이다. 하지 못할 이유는 많다. 생각하면 할수록 많아질 것이다.
무수히 많은 부정적 이유를 딛고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의외로 조촐하다. 신념이나 충동성. 이는 하지 못할 이유만 줄줄 읊어대는 상황에서 벗어나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준다. 앞만 보게 만들고 생각의 틀 안에 갇혀 같은 자리만 맴도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며,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하게 한다. 물론 그 강한 관념이나 충동이 후회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강한 동력이 있음에도 머뭇거릴 수 있다. 그러나 후회를 해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그 자리에 머무는 것도 최선이라 할 순 없기에 진실을 끌어안고 생각의 틀에서 뛰쳐나온다. 영화 속 이들이 그런 용감한 일을 해낸다.
우리의 일
마지막의 캐서린은 과거 포스트의 경영인이 찍힌 사진을 지나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을 마주한다. 그녀는 치열하게, 열렬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을 지나 인쇄소로 간다. 기계도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움직이며 회사에 이바지 한다. 회사 내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상당히 역동적이고 고무적인 장면의 연속이다. 이젠 캐서린도 그 곳에 함께 서 있다. 더 이상 아버지와 남편의 회사가 아닌 그녀의 회사에 서 있다. 그녀는 겉돌지 않고 그곳에 딱 끼워 맞춰진 톱니처럼 그들 속에 진정으로 속해진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그녀의 힘으로 나머지 톱니가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말뿐이던 직업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벤은 자신의 일에서 조금은 떨어져 회사로 시야를 넓힌다. 나의 일, 기자팀의 일에서 이젠 회사라는 우리의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몰두하는 일로만 회사가 돌아가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또한 그간 보인 캐서린의 행동을,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고발 기사 출판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캐서린은 언론인의 자세와 사명을 배우게 되고, 벤은 경영인이 짊어진 짐을 이해하게 된다. ‘각자의 일’에서 ‘우리의 일’이 되려면 당연하고 자연스럽던 나의 것을 잠시나마 뒤로하고 억지스럽게 새 길을 찾아 걸어야 한다. 캐서린은 수동적이고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경영인의 옷을 입는다. 벤도 으레 신문사라면 진실을 보도하는 게 무조건 맞다라는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캐서린과 회사가 많은 것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이들의 화합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캐서린은 다른 경영 이사들,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앞지르게 되고 벤은 다른 신문사를 앞지르게 된다. 뒤따르기만 하다 이젠 그들이 앞서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들 뒤를 따르게 한다. 각자의 일보다 우리의 일이 좋은 이유를 이들을 통해 확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