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 시온 감독의 차가운 열대어(2010)
불편함과 익숙함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재밌게 보았다.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 영화가 불편하지 않았던 난 이런 내용, 이런 장면들, 이런 연출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가? 내게 있어 불편함은 안 되는 것을 하는 상황 또는 원래는 되는 것이 안 되는 상황에서 온다. 그런 측면에서라면 원래는 이 영화가 내게 불편함을 줬어야 한다. 내게 오랜 시간 심겨 있던 기존의 도덕적 잣대를 허무는 상황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 영화는 오히려 재미를 넘어 왠지 모를 해방감마저 느끼게 했다.
사람의 마음, 다짐, 믿음, 이전의 경험이라는 것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영화일 뿐이라는 믿음, 이런 것들도 거뜬히, 덤덤하게 보아야 그 불편함 안에 숨겨진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즐기며 봐야 한다는 개인의 다짐,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마주했던 지난날의 경험. 이 모든 것들이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기준,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이라는 기준을 허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본다.
가족애와 진심
샤모토는 타에코와 미츠코를 위해, 즉 가족을 위해 희생한 적이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샤모토의 변화, 그 시작점은 가족 안전의 위협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이는 정말 말 그대로 표면적인 이유이다.
가족애와 자기애. 솔직하게 우린 무엇을 우선으로 하는가? 나야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기애가 우선이지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애라 말하는 사람들도 상당할 것이다. 정말로 여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면 왜 그런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겠다. 여기엔 이전의 경험, 최근 집중하고 있는 것, 지금 처한 상황 등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족애가 한 개인에게 있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발현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경험적 가치를 줄 수 있는지 등이 말이다.
다시 샤모토 얘기로 돌아가자. 샤모토는 가족을 위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인물인가? 단정 짓기 힘들다. 영화상에서야 사실은 자기애를 키우고 싶었던 인물인데 가족애가 우선이라 믿고 있는 인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의 삶 전반을 놓고 생각했을 때도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수 있겠냐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영화상 그가 마주한 상황이 그를 그리 몰아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상황이 이어졌다면 난 영화에서 가족애가 최고라는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나약함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샤모토는 강해졌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억누르고 있던 본능,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그런 것들로 진짜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니. 오히려 이를 부정하고 싶다. 이전과의 상대적 차이가 샤모토를 나약함에서부터 탈출시켰다고 보게 만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도 그가 여전히 나약한 인간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된다.
내게 있어 진정한 강함이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다. 유연할 수는 있으나 꺾이지는 않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지킬 줄 아는 것이다. 고고하고 여유로운 것이다.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꾸준함의 힘으로, 다양한 경험의 힘으로 길러진 것이다. 그래서 샤모토는 여전히 나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