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븐(1995)
인간의 민낯
인간을 보여주는 영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관심이 가는 영화는 감추고자 하는 인간의 민낯을 세련되게 보여주는 영화다. 부끄러움에 숨겨두었던 이면을 찾아내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재구성해서 다른 느낌으로 보여주는 영화.
보통 우리가 꺼리는 것들은 실제와는 다른, 기이한 형태로 우리의 머리에 각인된다. 그것들은 우리가 감출수록, 더 깊은 내면으로 밀어낼수록 추하고 더럽게 변해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꺼내기 힘들어진다.
그런 우리의 왜곡된 각인을 깨부수고 감춰진 것을 솔직히 인정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떳떳하게 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고,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영화나 예술 또한 실제를 바로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을 표면 위로 끌어올려 우리가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보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7가지 죄악
'탐식,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욕정, 시기'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드러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존 도는 그러한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7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존 도의 생각이 맞는다면 인간의 본능은 더러운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고, 그렇기에 감춰야만 하는 것인가. 그런 솔직하지 못한 자기 통제가 무조건 옳은 것인가. 본능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의 더러움으로부터 수치심을 느끼는 삶이 우리와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하는가.
관찰의 바른 예
어떤 것을, 어떠한 상황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서머셋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 대상이 풍기는 첫인상의 덫에서 벗어나 그들이 이후 보여주는 작은 요소들에 집중하라. 가슴 깊이 새길 명언을 얻었다.
해피엔딩의 조건
어릴 적 행복의 기준은 단순했다. 주인공이 불행을 이겨내고 엔딩을 행복으로 장식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결말이었다. 그땐 그런 아름다운 결말만을 뜻했다.
그러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해피엔딩의 조건이던 시절은 갔다. 이젠 힘들게 하는 것들을 파괴해버림으로써 불행의 연속을 끊어내는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이 영화처럼 살인자, 그 악마 같은 놈이 그저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는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다.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행복한 결말로 가는 방법이 무궁무진해진다. 왠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