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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pr 26. 2024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이야기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난 이 두 사람과 법원에서 처음 마주했다. 처음엔 두 사람의 문제가 꽤나 심각해보였다. 대화를 진행할수록 언성은 높아져가는데 두 사람의 의견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화면엔 오로지 씨민과 나데르, 둘만이 담겨져있다.


그리고 마지막... 둘은 다시 법원에 와있다. 처음 보여진 문제에 대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과는 달리 테르메가 화면의 중심에 서있단 점과 더 이상 이 문제가 심각해보이지 않는단 점이다.

결정을 내렸다 말하면서도 쉽사리 자신의 결정을 말하지 못하는 테르메. 이 아이는 극중에서 진실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극중 발생한 모든 문제의 화근이 누구이며 누구의 잘못이 더 컸는가를 아이의 결정에 따라 결정하려고 들었던 게, 그리고 아무 대답없던 아이의 모습에서 결국 두 사람이 별거하고자 했던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여기게 된 게.


시작과 끝만 보면 영화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들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사이 발생된 다른 사건들의 원인 또한 둘의 별거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린 객관성을 잃기 쉽다. 가까운 과거 또는 지금 현재 받고 있는 경험이 상황의 심각성을 가중시키고 이후 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가정부와의 문제가 발생되기 바로 직전에 별거라는 주제를 가지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었다. 때문에 모든 시작의 중심이 이별 때문이라 얘기해버릴 수 있다.


굳이 이 이야길 꺼내는 이유, 내가 왜 다른 논점보다 이 주제에 더 시선이 갔는가 하는 이유는 요근래 어떤 문제를 놓고 이를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어서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이를 해결하면 그 문제의 시초에서 이어진 다른 문제들 또한 자연스레 연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 보았다. 이때까지 난 가중치를 고려하지 않았다.


영화 <나비효과, 2004>를 본 적 있는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보고나서야 이 영화에 대해 인지하게 된 사실이 있다. 거기서는 현재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씨앗만을 해결하려든다. 그 때문인지 현재는 늘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근원만 해결하려고 들다보면 결국 가장 근본적 원인인 우리의 존재자체를 부정할 위험도 있단 사실만 알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우리의 존재가 있다. 문제가 있다고 나를 없앨 순 없는 노릇이며 그렇다고 크게 부각되어 보이는 중간단계의 문제를 놓고 잘못되었다며 무작정 접근하기에도 모순이 있다. 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발생시키는데 관여한 여러 원인들을 세부적으로 파악함에 있어 지금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얼만큼 크게 기여하였는지 그 가중치 또한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 또는 개선에 가장 효과가 있을 듯한 문제 위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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