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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



한국판과 일본판


처음 본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에서 만든 작품이었다.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의 조합으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만들어진다는 기사를 보고 난 직후였다. 한국판에 대해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억누르기 위해 본 것이었는데 일본판에서 보여주는 일본 특유의 감성에 반해버렸다. 정말 리틀 포레스트라는 이름에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영화였다. 차분하고 느슨하면서도 풍부한. 자연과 그 속에 녹아든 사람을 잘 담아냈다.


반면에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약간은 긴장감 있으면서도, 템포가 빠르고, 자연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그 긴 사계를 2시간 내로 함축하려다 보니 그 특유의 느리고 여유로운 템포와 자연과 사람 간의 유대관계는 많이 죽어버린 것 같다. 그 때문에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판과 한국판. 비교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겹쳐있기도 하고, 또 많은 것들이 다르기도 하다. 일단 소재가 자연, 요리, 시골에서의 삶, 힐링, 엄마와 딸 등으로 겹친다. 그리고 메뉴, 인물 구성도 유사하다. 더 나아가 영상과 음악도 유사하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 구도와 움직임이 그리고 통통거리면서도 산뜻한 BGM이 닮아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작은 숲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했다. 일단 영화에서 ‘리틀 포레스트’가 지니는 의미부터. 일본판에서는 여기에 대해 크게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의미를 단순히 자연 속 일부를 뜻하는 것이라고만 이해했다.


한국판은 이 의미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고 중요시했던 것 같다. 이 단어에 대한 해석을 마지막에 언급함으로써 이전에 보여준 모든 장면이 이 리틀 포레스트에 모이게 했고 이에 맞춰 이전 장면들의 의미가 다시 매겨지게끔 했다.


한국의 이 작은 숲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공간으로 설정되어있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 나의 공간, 나의 자연. 그 안에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나의 고향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다. 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이 자연의 공간은 나를 자라게 하고 살찌게 한다.



영화의 시간


이 영화는 사계를 제대로 보여주기엔 약간은 촉박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일본판의 경우 넉넉한 러닝타임으로 각각의 계절을 진득하게 담아내어 풍부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한국판은 계절을 음미하기도 전에 후다닥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빈 것 같단 기분이 든다.


이번엔 관점을 바꿔 영화의 시간을 계절이 아닌 혜원에게 맞춰봤다.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고민과, 엄마와의 지난 추억과, 서울에서의 삶과, 지금 이곳에서 다시 한번 쌓아가고 있는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계절은 그저 혜원의 시간이 자연에 스며들어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로만 본다면 영화 내의 시간은 아주 풍부하게 채워진다.



떠난다는 행위


혜원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반복. 고향과 서울을 서로 배반하듯 떠나고 돌아온다. 그렇게 다시 돌아올 거면 왜 떠나는가. 나에겐 이에 대한 진부한 표현의 답변이 준비되어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잠시 떠난다. 그러나 영화는 나와는 다르게 답한다.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혜원의 그 반복된 떠남 중 앞은 도피를 위한 것이고 뒤의 것은 ‘아주심기’를 위한 것이었다. 아주심기. 제대로 심기기 위해선 잠시 부유하는 어린 시절을 겪는다. 그리고 내가 돌아갈 곳, 앞으로 뿌리내려 견고한 삶을 살아갈 곳에서 떠남의 종지부를 찍는다.


나의 가능성을 위해 떠난다. 나는 그동안 지금의 이 익숙한 삶을 낡고 지겨운 것 취급하며 종종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났다. 어쩌면 난 진짜 내 삶에서 도망 다니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의 나를 부정하며 모래성만 쌓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잘 돌아오기 위한 떠남은 이 익숙한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긍정을 위한 떠남. 그것은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지금을 더 튼튼히 다지기 위해 잠시 떠났다가 지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리에 담긴 심리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사람을 보면 종종 감탄한다.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사람은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타인을 위해 요리하는 사람은 참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해버린다. 어떤 경우이건 내게 요리하는 이는 사랑과 노력, 희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다.

내게 있어 요리는 시작이 부담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뼛속부터 기피하게 된다. 여기에 내가 싫어하는 만큼 남들도 싫어할 것이라는 마음이 더해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은 늘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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