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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나의 작은 시인에게

사라 코랑겔로 감독의 나의 작은 시인에게(2018)



잔잔하게, 신선함


시와 재능에 대한 열망을 또 다른 시각에서 풀어낸 영화.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단조로운 형태로 풀어냈음에도 굉장히 신선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여느 강렬한 영화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신선함'. 최근 <클로즈업>이란 연극을 봤다. 처음엔 꾀나 충격적이었다. 너무 별거 없어서. 그러나 연이은 기괴함과 갈수록 치밀해지는 극 중 인물들의 심리, 그 와중에도 잘 잡혀있는 극의 맥락. 이 모든 것들이 이전 시간의 잔상을 계속해서 깨부수고 극적인 효과를 꾀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잔잔하고 진부한 시작이었으나 조금씩 가미되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준다. 시와 클래식 음악이 주는 고고한 이미지를 부수고 리사라는 개인의 민낯만 야트막하게 남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지미의 민낯이 될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충격을 자극적이지 않게 담아낸다. 바로 그 점이 더 큰 충격을 선사한다. 조금씩 드러나는 인물의 이면과 영화의 예상치 못한 담담한 표현법. 굉장히 신선했다.



그녀에게 시와 작은 시인


처음의 리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우린 그녀로부터 가끔 지루해하는 모습, 다정한 모습, 꿈꾸는 모습, 수줍어하는 모습, 상처받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에게서 쉽게 발견해낼 수 있는 모습이다. 영상마저도 너무나 평범하게 그녀를 담아낸다.


그런 평범하기만 한 그녀의 일상에 지미의 시가 등장한다. 그 옛날 재능으로 반짝이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의 괴리가 자꾸만 눈앞의 희망에 집착게 한다. 지미에게 자신의 유년을 투영하고 '잃지 말라'고, '난 잃었지만, 너만은 그것을 지켜내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이 놀랍도록 무서운 집착은 어리숙하게, 조용하게, 과하지 않게 드러나 그녀의 이면을 세상에 노출한다. 


이제 그녀를 담은 영상은 기괴함을 띠기 시작한다. 어딘가 위협적이면서도 불편하여 우릴 긴장 상태에 빠뜨린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달라진 리사. 과연 그녀는 평범한 사람인가, 기괴한 사람인가.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이후부턴 그녀를 나타내는 서로 다른 모습들이 뚜렷한 경계 없이 노출된다. 그렇게 그녀는 평범함과 기괴함 사이에서 모호한 사람이 된다.


리사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모호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 '시' 그리고 '지미'. 이들은 그녀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고 현재 꿈꾸는 자신의 이상향, 열망하는 삶의 표상이다. 이들을 통해 대변되는 그녀의 모습은 이상한, 미친 여자가 아니다. 그저 외로운 사람이다. 그저 시로서 존중받길 원하는 사람일 뿐이다.



작은 시인에게 시와 유치원 선생님


지미에게 시는 대화의 수단이다. 깊은 내면의 어떤 것에 관한 대화. 아이에게 그것은 재능이라는 특별한 무엇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웅얼거림에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리사를 바라보는 지미의 시선은 집착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진정으로, 허울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깝다. 비록 자신을 데리고 먼 곳으로 떠났을 때 그녀를 신고하긴 했지만 이는 그녀를 악인으로 본 것이기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배움을 어린아이답게, 순수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가 떠올랐어요."라는 이 한마디를 외치는 작은 시인의 마지막 모습이 외롭게 남아 관객인 나에게 길고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홀로 갇힌 공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은 아이를 더욱더 쓸쓸하게 만든다. 이제 자신을 받아주고 인정해주던 이는 사라졌다.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아이기에 근원적인 외로움은 앞으로도 쭉 아이를 따라다닐 것이다.



이 영화에게 시


열망하는 것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눌 이에 대하여. 영화를 통해 전달된 시에는 그런 말이 뒤따르는 듯했다. 이는 재능,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짜 소통, 그 기회의 갈망에 대한 것이다.


난 이 영화에서 시를 통해 내면에 담아둔 진심을 꺼내고자 하는 열망을 보았다. 시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시를 잃은 이에게서 진정한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보았다. 스쳐 지나갈 재능에 대한 아쉬움도, 상실감도 이 외로움보다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영화에서의 시는 자신을 사람들 속에 스며들게 만드는 장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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