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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고스트 스토리

데이빗 로워리 ​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2017)



고스트


오랜만이다. 어릴 적 익숙하게 그려지던 고스트를 어른이 되고서는 처음 마주했다. 영화는 이러한 옛 형태를 지닌 고스트를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어설프게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단순함에 지난날의 향수와 몽환적이면서도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가미하여 동화적인 느낌을 완성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접하거나 어른에게서 들어온 고스트는 대체로 여러 가지 사연을 지녔다. 그리고 그 사연 때문에 이승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그들은 산 자의 세계에 남아 그들의 곁을 맴돌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이 영화의 고스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그들이 함께한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으로 세상에 남는다.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과 닮아있다. 감정과 기억을 지녔다. 다만 우리와는 달리 어떤 감정에만 사로잡혀있다. 그 감정만을 간직한 채, 그렇게 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시 한번 이승을 산다. 그러고 보면 고스트는 인간의 특정 감정에 따라 추상화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스트의 스토리


이야기에는 화자가 있다. 우린 이 화자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가 들려주는 것을 듣는다. 그가 만들어내는 생각, 흐름을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따라간다. 그래서 화자가 보여주는 시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화자가 되느냐에 따라 다른 색을 지닌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에.


우린 산 자로서 살아있는 이의 시점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곳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고스트의 시점에서 산 사람을 본다. 이 익숙지 않은 관찰자를 통해 익숙한 공간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우린 영화를 보면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


이 영화의 화자인 고스트는 사랑하는 이를 쉽게 떠나지 못해 그들의 보금자리에 남는다. 그러나 사랑하던 그녀는 결국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새로운 사람이 이들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을 점령하고 새로운 기억을 채운다. 그 모든 것을 산 자들의 곁에 남아서 바라본다. 그것만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젠 다른 세상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산 사람은 본인의 일상에서 서서히 이별의 아픔을 잊어간다. 감정이 곁들여진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뎌져 간다. 산 자는 이별한 이와의 추억이 담긴 공간을 아무렇게 방치하거나 뒤로 한다.


고스트의 기다림은 영원히 지속한다. 그 끝나지 않을 세월만큼 쓸쓸해지고 애잔해진다. 그래서 그리움과 서운함,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작게나마 표출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던 사람이 떠난 공간을 가만히 바라본다. 또 쓸쓸해지고 애잔해진다. 그리움의 공간에 자신을 스스로 가둔 자는 늘 외롭다.


그들은 남은 이에게 기대한다. 기억, 날 기억하게 할 기록. "사람들이 이것으로 날 기억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집처럼 부질없다. 때맞춰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때문일까. 광활한 평야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 그 기분에 휩싸인 채로 영원한 시간에 갇혀 평생을 그리워한다.



맥박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와 롱테이크의 조합은 한없이 멈춰있음으로써 우릴 숨 막히게 한다. 여기에 소리가 더해진다. 잡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영상, 그 속에서 들리는 이 나지막한 소리만이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우린 정적인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미세한 역동성에 집중함으로써 그들의 기억, 그것이 담긴 집이란 공간이 작게나마 숨을 내뱉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템포가 바뀐다.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른다. 그러다 또 한 번 템포가 바뀐다. 다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렇게 고스트의 이야기는 자꾸만 느리거나 멈춰있거나 빠르다. 이 시간은 그 템포에 맞춰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흐른다. 그리고 그 반복된 시간 속에서 다시 사랑하던 시간과 이별하던 시간을 마주한다. 기억은 끊임없이 뛰고 있는 맥박처럼 온몸을 훑고 다시 돌아온다. 반복되는 기억이 피를 굴리고 생명을 부여한다.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시공간의 무너짐과 연속성. 그 모든 것들이 집과 기억과 이야기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로부터 집과, 기억과, 이야기는 맥박을, 생명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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