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온 May 05. 2024

시티즌포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시티즌포(2015)



기대를 벗어난 다큐멘터리


가끔은 장르가 스포일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는 장르에 따라 예상되는, 기대되는 형태와 분위기를 가진다. 관객은 이를 통해 사건의 전개 방향과 인물 간의 관계, 전반적인 분위기 등을 예측하고 내 취향에 맞춰 관람할 영화를 선택한다. 그런 방식으로 고른 영화가 내 예상을 벗어난다면 우리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화를 내거나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거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이 관찰의 대상이 되는 영화라면 그 사람의 시선, 생각, 행위가 담긴다. 이때 다큐멘터리는 이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그게 다큐멘터리를 향한 일반적인 기대일 것이다.


그러나 시티즌포는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왜 이 영화는 예측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것일까. 이는 이 영화가 기존의 인물 중심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동시에 잘 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관찰되는 시점, 배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다. 여기에 우리가 평소 경험하기 힘든 상황이 어우러진다.



자극적이지만 영화라서


또한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상당히 자극적이다. 매 순간 집중할 수밖에 없을 만큼 모든 장면에 몰입하게 된다. 이런 자극, 긴장감은 그만큼 재미를 선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과연 이 영화는 자기들 입맛에 맞게 얼마나 많은 것이 각색되었을까. 자신의 주장을 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MSG는 얼마나 쳤을까. 그러고 보니 이들은 관찰된 사실 중 주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다 없애버리고 관객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게끔 꽤 비장한 BGM을 깔았다. 이 영화는 정부의 잘못을 대중에게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이렇게 객관성을 잃어도 되는가.


자극적인 방식은 이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눈과 귀를 그리고 생각을 마비시킨다. 그 때문에 우린 어떤 순간에도 현혹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출발이 '의심'이다. 그러나 의심은 대상을 향한 부정적인 마음을 만든다. 영화를 영화로 봐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뜯어보다 보면 영화적 가치는 어느새 바닥에 깔리게 된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결국 감독이 추구하는바, 그가 믿는바, 목표하는 바에 맞춰 만들어진다. 다큐멘터리라고 다를 건 없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백하게 담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만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감독의 입맛대로 만들어져도 된다. 장르가 주는 선입견은 떼고 한 편의 주장문으로,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담긴 한 편의 영화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객관성


자극적으로 만들어지긴 했어도 영화 <스노든, 2016>과 비교했을 땐 시티즌포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영화 스노든의 경우 스노든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 때문에 관객이 다른 시야를 가질 여유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반면에 시티즌포는 중심이 몇 사람으로 분산되어있다. 모두 스노든에 의해 모였고 진실을 시민에게 전하겠단 뜻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모인 이들의 역할이 다르고 그들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 때문일까. 영상 속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들의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객관적인 느낌을 수 있었다.



편안함과 통제


편안함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지금의 난 교육과 노력의 결과로 어릴 적보다는 많이 성실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이 여전히 게으름의 영역 안에 머물러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젠 지능적으로 게으름을 추구하게 되었다.


내 폰과 노트북은 나에게 최적화되어있다. 스팸 연락이 오면 바로 차단 설정을 해둠으로써 스팸 연락 횟수를 최소화한다. 지도와 날씨 검색을 편하게 수행하기 위해 GPS는 항상 켜져 있다. 내가 그간 봐온 영화를 기록하기도, 찾아보기도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관련 앱을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한다. 쇼핑은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매번 USB를 챙기고 다니기 귀찮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작업하기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다.


위험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온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메타데이터인데 이를 조합하면 나의 콘텐츠가 나온다. 하루 일상 정도야 누군가에게 공개되는 것쯤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일대기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나를 조종하려 든다면 그때는 더는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기업, 정치, 미디어는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기존에 나와 있는 통계자료 등을 활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집단을 형성하거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이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자극이기 때문에 그래도 대중에게 좁은 범위에서나마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또한 그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심각성이 덜하다. 하지만 개인, 미시적 관점에서도 통제할 수 있다면 이는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인간의 한계


가끔은 내가 사람이라서 싫을 때가 있다. 사람이라서 그 이상을 꿈꿀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명확히 보이는 한계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구나 하는 자괴감만 키운다. 평소 생각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면 내가 대단하구나 싶은 착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특히나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이 번뜩일 때면 더 그렇다. 그 순간엔 투지에 불타올라 뭐든 시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어제와 같은 나의 일상에 묻혀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을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자극적인 이야길 좋아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지금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제의 나로부터 떠나진 못한다. 그리고 편한 것을 추구한다.


인간은 결국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주변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도 변하지 않는다. 당장은 잘못된 세상에 분노하더라도 그 열기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면 내일까지 지속하기 어렵다. 우린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인 삶에 만족하며, 아니 만족한다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마주한 인간의 무수히 많은 한계 중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스트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