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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



이 영화가 아름답고 우아한 이유


<친절한 금자씨>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다. 다시 봐도 영화가 주는 울림에 먹먹해진다. 이는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주제가 따뜻하고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보다 복합적인 이유로 이 영화는 예술이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가 담고자 한 것, 보여주고자 한 방식이 아름답거나 고상하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있다. 인물이 극의 진행과는 달리 갑작스레 관객을 향해 대사를 날리기도 한다. 나레이션마저도 아름답지 않고 어딘가 거슬린다(물론 그 덕에 더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기괴한 장면도 있고 보기 불편한 장면도 있다. 이렇듯 영화 속 모든 요소가 같은 분위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곳에서 진중하고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표현력이 돋보인다. 박찬욱만의 뛰어난 영상미도 그렇고 음향도 그렇고 플롯도 그렇고. 그의 연출은 그만의 색채를 띤다. 깊고 무겁고 어두운 그러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앞서 우아함과는 거리가 있는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돼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바이올린 선율, 고급스러움 색감,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재빠른 움직임, 인물들의 대사 및 행위, 영화의 소재에 의해 묻힌다. 아니 오히려 극대화된다. 그 이상한 포인트와 고상함이 공존할 때 기묘한 기분에 빠진다. 이 이상한 자극이 영화에 대한 기억에 깊고도 인상적인 잔상을 남긴다.



대비의 공존


아름다움과 악랄함, 친절함과 잔혹함의 대비. 금자는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하는 모든 복수극은 친절로 포장된다. 이 은근하고 아름다운 잔혹함은 나를 어딘지 모를 상태에 빠뜨린다.


보색을 보면 불편하다. 그 어울리지 않는, 서로 양극단에 놓인 두 색을 한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면 우린 어김없이 불편함을 느낀다. 신경이 곤두선다. 마음속에선 그러면 안 되는데, 안 어울리는데, 이상한 데를 끊임없이 외치며 자꾸만 그곳에 시선을 둔다. 문제는 그런 부조화에 자꾸 노출되고 어느새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것이 극단적이고 기이한 매력의 자극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극단에 놓인 색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 이어진다. 그사이에 존재하지 않을 스펙트럼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들 사이에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위선


위선적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복역을 마친 금자를 위해 산타들은 그녀에게 노래로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커피 담긴 종이컵으로 시선이 이어진 순간 더 이상 그들의 노래에서 진심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살해된 아이의 복수 후 자신의 돈을 돌려받길 바라는 부모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조용히 금자에게로 전하는 계좌번호 적힌 종이는 죽은 아이에 대한 아픔이 그들에게 존재했는지를 순간적으로나마 의심케 한다. 그리고 금자씨. 금자의 친절은 따사롭다. 그러나 그녀의 친절 이면에 자리한 진심은 그녀가 이 영화의 가장 절대적인 위선자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복수의 어떤 측면을 볼 것인가


복수의 정당성에 대해 논의할 영화는 아닌 듯하다. 복수의 시작보다 복수의 진행형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니까. 복수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고 그 복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지, 그들 사이에선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집중하고 보면 이 영화의 복수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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