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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테이크 쉘터

제프 니콜스 감독의 테이크 쉘터(2011)



고립된 사람


이 영화는 유난히 부담스럽다. 이런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스토리는 꽤 단순하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미쳤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다. 그는 자신의 세계 속 환경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길을 걷는다. 이 이야기는 그가 가족의 힘으로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함으로써 끝이 난다. 영화 전반의 표현 역시 과하지 않고 깔끔하다. 다소 웅장한 분위기를 풍길 때도 있지만 일정 선을 넘진 않는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복잡한 것도, 불편한 것도, 과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숨 막히게 한다.


고립감, 외로움은 실제보다 더 큰 압박감을 준다. 이는 내 힘으론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거대한 산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빠진 이를 심리적으로 내리눌러버림으로써 숨 쉴 자유마저 억제한다. 커티스는 그 속, 고립된 산 아래 짓눌린 인간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살게 되었고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외로움에 빠진 인물이다. 문제는 이 영화 속 외로움, 고립감은 커티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담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감독이 극 중 인물을 넘어서 관객마저 고립된 세계에 빠뜨린 것이다.



불안의 발생


이곳의 불안은 안과 밖, 어느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과 외부에 의해 형성되는 불안 모두 영상에 잘 녹아있다. 이 두 개의 불안은 상호 작용하여 더 큰 불안을 만들어간다. 안팎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불안은 가중되고 가속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깊어지다 터진다. 그리고 다시 안정화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이제 이 불안의 굴레가 만들어진 이유, 그 시작점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테이크 쉘터>에서의 불안은 가깝고 친근하며, 소중한 어떤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커티스의 가족은 다른 이들의 가정보다 화목하다. 이러한 사실은 커티스의 절친한 친구인 듀워트의 입을 빌려 넌지시 던져진다. 커티스의 가족이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커티스는 그런 화목한 가정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기엔 그의 어린 시절도 한몫한 듯싶다. 그는 가족이란 이상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불안은 그렇게 평범한 것에서 시작된다.


불안에 의한 두려움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는 순간에 오히려 더 큰 위력을 가진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안정이 언젠가, 어느 순간에 다다랐을 때 깨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폭풍전야에 폭풍이 행사할, 그 가늠할 수 없는 힘의 크기는 쉽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막상 두려움이 현실이 됐을 땐 어찌어찌 살아지지만 맞닥뜨리기 전은 그 이상의 두려움에 빠져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제 언제, 어느 곳에서 터지는가의 문제만 남았다. 커티스의 불안은 결국 터지고야 만다. 문제는 불안이 현실이 되기도 전에, 그의 내면에서 현실보다 지독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과도한 상상과는 대조적으로 현실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쩌면 진짜 현실은 이렇게 담담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별 것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에 생각이 모인 순간, 그것에 어떤 기대가 곁들여진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하게 되는 순간 문제는 더 크고 복잡해지며, 진지해지고 심각해진다.



가족이라면


가족의 순기능을 보여준 작품은 많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 <토니 에드만, 2016>, 최근에 본 <벤 이즈 백, 2018>과 <원더, 2017>. 이들 영화 속 개인은 자신의 아픔, 힘든 상황을 가족의 힘으로 이겨낸다. 이때의 힘, 가족의 아픔을 함께할 힘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엔딩에 대해선 아마 많은 논란이 있을 듯하다. '사실은 커티스에겐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가 조현병인지 의심이 드는 장면을 영화 내에 조금씩 가미했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가족의 힘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니 끝까지 가족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이해, 수용력, 동질감. 그 외의 수많은 원인에서 기인한 사랑은 가족, 내가 아끼는 사람들 밖에선 쉽게 생성되지 않는 상태와 행동을 만들어낸다. 난 그중에서도 '동화', 가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력 중 하나로 동화를 꼽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버리고 마는 것. 또는 너무나 익숙해진 이들이기에 자연스레 물들고 마는 것. 그래서 이 영화의 끝에서 그가 빠져있는, 그 현실과는 다른 세계마저 동화해버린 이들 가족의 사랑과 불안이란 부정적인 감정마저 동화해버린 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았다.


그 때문일까. 역설적이게도 이 엔딩을 통해 이들이 진짜 가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나마 불안정해진 가족의 관계와, 막연해진 미래에 대한 걱정, 탐탁지 않아 진 주변의 시선. 이제 이 모든 불행을 온 가족이 함께 겪는다. 불행, 불안의 공유로 그들이 하나임이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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