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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항거: 유관순 이야기

조민호 감독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소재로 구축된


영화에서 마주하기엔 유관순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위험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재의 선택이 어쩌면 연출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엔 여러 요인이 있다. 그 가운데 소재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편이다. 이 소재에서 관객의 관람 여부가 갈라진다. 영화에서 진짜로 중요하다고 꼽힐 수 있는 이데올로기, 연출, 배우의 연기 등에 대한 평가는 우선 관객이 영화 관람을 선택하고 난 다음에야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소재가 첫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소재 그리고 그에 대한 이데올리기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영화가 많으니까. 그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소재가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관객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소재를 가운데 두고 영화를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이(나의 경우 이 방식이 편하고 빠르게 이해하기 쉬워서 종종 활용하고 있다)에겐 영화 감상의 판도를 바꿀 만큼 큰 위력을 가진 요소이다.



유관순이란 소재의 위험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유관순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자세한 일생은 모르더라도 '3.1 운동'이라는 키워드는 쉽게 떠오른다. 뒤이어 그녀가 머물렀던 시대, 일제 강점기라는 고난과 역경이 가득했던 시기가 더해지면서 그녀의 강인하고 신념에 찬, 당당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완성된다.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 그녀는 지금까지 기억될 만큼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역사적인, 그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소재는 우리의 편견을 거친다. 그 결과 괜찮으면 관람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관람 거부를 택한다. 나에게 유관순이란 소재는 관람 거부에 해당했다. 앞서 유관순이란 인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음에도 영화에서 만나길 거부한 이유는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함. 우리가 잘 아는 것(이 또한 우리의 착각이겠지만), 좋든 나쁘든 이미지가 확고하게 뿌리박힌 것, 그런 상징적인 어떤 것이 주로 반영된 영화는 보기도 전에 이미 다 본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유관순이란 인물에 대해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유사한 내용,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가치가 실릴 수 있는 몇 가지 특징 위주로 배워왔다. 그래서 호기심, 관심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다른 기존의 영화가 보여주는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대체로 유사했다는 점, 보여주는 방식이 굉장히 일차원적이었단 점도 영화 관람의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행사한다. 


이 영화의 소재는 굉장히 강하다. 유관순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관점은 상당히 고정적이다. 그 때문에 유관순이란 소재는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 될 수 있다. 설령 감독이 새로운 방식으로 인물을 풀어냈다 하더라도, 관객이 선입견을 버리지 않는 한 감독이 제시한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렵거나 발견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관점의 차이로 불편함을 경험할 수 있다. 즉, 소재가 영화를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이다.



유관순을 관찰한 새로운 관점


다행히 난 이 선입견을 뒤로하고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사실 타인의 추천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장점과 한국 영화의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관순과 영화를 결합하고 보면 영웅물이 바로 떠오른다. 역사적 가치로 보나, 인물의 강직함으로 보나, 인물이 처했던 상황으로 보나 영웅물이 되기 알맞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게도 이 영화는 유관순을 완전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영웅적 면모와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엿보이긴 하지만 영웅 특유의 완전무결함, 비범함은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유관순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흔들리고 흔들린 끝에 단단해진 사람,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대한 의심 끝에 확고해진 사람이다. 중요한 건 이때의 흔들림, 의심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지금 이 평범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이 특히나 그녀가 영웅이기보다 인간에 가까운 사람이게 했다.


이에 덧붙여 생각해볼 요인이 그녀가 자신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단 점. 좁은 감옥 안, 많은 여인이 들어차 있다. 영화 속 유관순은 오히려 이곳에서 완성된다. 감옥 안은 3.1 운동처럼 거대한 일을 만들어내기는 힘든 곳이다. 그런 곳에서 유관순, 그녀뿐만 아니라 그곳에 함께 했던 모든 이가 운동 안에 존재해야 할 제일 중요한 가치를 보여준다. 인간애. 결국 그들이 이미 했던 운동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자 하는 그 운동의 기저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옥 안의 모두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는다. 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지고, 혼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룩한다. 그러나 진짜 인간은 내 옆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내 옆의 사람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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