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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2018)


긴장의 표면


어린아이들, 월식이라는 나름 낭만적인 요소와 경쾌하면서도 가벼운 BGM. 영화는 그런 나지막하고 한편으론 발랄하기도 한 분위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한다. 내려올 생각을 않는 그들의 갈등. 그나마 초반엔 강약 중간 약이라도 있으나 이후엔 강강강만 내리꽂는다.


모든 이가 집이라는 공간과 저녁 식사 시간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이에 더해 영상은 이러한 물리적으로 제한된 범위를 더욱 축소해버린다. 공간도, 시간도 숨 막힐 정도로 협소하다. 이런 배경 안에서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흐른다. 모든 감각이 열린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이 느리게 흐르는 모든 시간 안에서, 무수히 많은 감각을 느끼다 보면 엄청난 낯설음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상태는 우릴 자꾸만 당황케 한다. 그 여파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 이성마저도 옅어진다. 판단력이 흐려진, 그런 불안정한 상태, 긴장이 최고조로 치솟은 상태가 지속된다.


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피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커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불안을 더욱 고조시킨다. 상상 속 상황은 그렇게 더욱 악화하기만 한다.



긴장의 뼈대


누군가의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이런 갑작스러운 소리, 특히나 어떤 상황에 집중한 상태에서 들리는 예상 밖의 소리는 공포 또는 스릴러 영화와 잘 어울리는 요소이다. 이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이런 갑작스레 울리는 알람보다 우릴 더 긴장케 하는 것. 그것은 그에 곁들여진 메시지이다.


분명 언제고 사건이 터질 것이다. 우린 오랜 시간을 핸드폰과 동고동락하며 지냈다. 해서 핸드폰을 공개한다는 것이 불러올 여파와 그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제 언제 울릴지 모를 알람, 그 언제 터질지 모를 사건을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제시하는 긴장보다 더 큰 긴장을 느끼게 된다. 대놓고 전달하는 긴장보다 더 짜릿한 것은 그 속에 숨겨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이다. 아직 맞닥뜨리지 않은 일은 실제보다 더 심각하고 더 자극적이고 더 두려운 법이다.


같은 공간 그리고 가까운 사이, 그러나 서로가 너무나 개별적인 존재. 문제가 생겨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그 누구도 내 편이 될 수 없는, 그런 고립된 상황. 그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이어진다. 서로의 본심은 숨기고 가식을 유지하면서.


사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떠안고 있는 비밀은 그리 크거나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나의 허점과 약점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이 게임의 여파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별거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가는데 가식을 조금도 놓지 못하고 완벽한 척 연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극적인 위태로움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 완벽함과 불안의 사이


친구 관계 그리고 부부관계는 무탈하게 오래도록 유지되어야 할 것만 같은 관계이다. 이런 관계에 대한 압박을 느끼는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 예를 들어 개인의 심리적 안정, 사회 동물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방식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이유, 예를 들어 이를 당연시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와 연관된 관계는 나의 건재함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좋은, 건강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눈에 좋은 사람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우린 너보다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한다. 남들이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나 또한 나를 무시할 수 없게 자신을 견고히 쌓아 올리는, 완벽해지기 위한 작업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종종 거짓과 과장이 섞여 들어간다는 것이다. 가짜가 세상에 노출된 시점부터 우리에겐 불안이 얹어진다. 이 언제 깨질지 모를 사실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된다. 거짓이 들통 나는 순간 난 우스워지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달은 다시 밝았건만


결말엔 모든 긴장으로부터의 탈출이 있다. 배경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이들은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모든 것이 완전히 누그러진, 처음으로의 리셋이라는 결말.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관객의 심리, 충격은 리셋시키지 못했다.


사람에 따라 그 끝에 남게 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의외로 결말에 대해 찝찝함은 남지 않았다. 대신 긴장감이라는 감정의 잔여물이 남았다. 물론 엔딩의 순간 안도는 했다. 그러나 상상으로나마 경험한 이 긴장감, 그 감정 자체는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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