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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2018)


좁고 깊은 것


가족이라는 소재는 풍부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협소’하다. 이런 협소함은 극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엔 좋다. 영화가 특정 가족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또는 새로운 형태로 담아내도 관객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빈 여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이유로 공감을 얻기에도, 감정의 깊이를 더하기에도 좋다.


반면에 강하게 자리 잡은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오히려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영화가 가족을 통해 다양한 것을 복합적인 형태로 말하려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기존의 강한 인식으로 많은 것을 걸러버리기 때문이다. 해서 가족이란 소재는 감상의 다양성을 상당 부분 죽일 수 있다.



다르게, 풍부하게


이 영화의 가족은 모양새만 보면 독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현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런 익숙한 형태는 아니다. 허나 우린 이미 많은 매체, 많은 작품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자주 접해왔기에 이들을 보고도 새롭다 느끼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더해 이 영화 속 가족은 현실적으로도 존재할 법하기에 특히나 신선함을 주긴 힘들다. 그러나 <어느 가족>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가족을 통해 충분한 신선함을 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영화 전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엔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진 사람만의 깊이가 묻어있다. 그의 섬세한 표현력은 작고 미묘한 감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영상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를 영화적이지 않게,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풀어서 보여준다. 설정과 상황은 자극적일지라도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과함이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가 말하는 가족은 다른 영화에 비해 덜 걸러진 형태로, 다양성을 유지한 채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방대함, 보이는 것 이상의 복잡함을 영화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기존의 것은 새로이 각색되어 나온다. 작은 것 하나도 집중해서 바라보게 하는 연출력이,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철학과 애정이, 익숙하지 않은 형태를 보고도 공감하고 이해하게 하는 힘이 기존의 가족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다.



수긍의 이유


처음엔 이들의 삶, 이들의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와 도둑질을 비롯한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의 생계유지가 나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아슬아슬함은 덜어지고 오히려 안정감과 안도감이 높아졌다. 이들을 둘러싼 따뜻한 분위기와 그들 사이에 오가는 사랑이 이들을 여느 가족보다 더 이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억지로 부여잡지 않은, 자연스러운 선택에 의해 형성된 관계. ‘선택’으로 이어진 유대관계는 어쩌면 피보다 진할 수 있겠단 그들의 논리는 내게도 통했다.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를 보고도 고개 끄덕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세상에 부족하거나 불행한 가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 세상 모든 가정이 이상적이라 늘 화목하고 따뜻하기만 하다면 이 영화의 가족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결핍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때 이들의 기이한 관계를 보고도 가족이라 인정할 수 있다. 결핍은 어떤 형태, 어떤 강도가 되었든,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로부터 우린 채우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이들 가족 사이를 든든하게 채워놓았다. 이로부터 받는 포만감은 자연스레 이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관계를 수긍하게 만든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 가족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이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버려진 자들 사이에 형성된 유대에서 그 견고함에 대해 의심은 해볼 지언정 부정적이고 냉랭한 시선을 보내진 않는다. 비록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일지라도 서로를 필요로 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만 있다면 다시 찾고 싶어지고 함께 하고 싶어지며 감정을 섞고 싶어진다. 감독은 그런 필요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했다. 그의 이런 태도에 동화되어 나 또한 덩달아 이들 관계의 영원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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