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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2018)


슬픔 말고


생각보다는 덤덤하게 봤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남 일처럼 차분히 받아들였다. 이는 관객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끔 적절한 거리가 조성된 덕분일 수도,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다른 시선과 태도로 봤던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영화 속 이들의 삶에서 안타까움은 느꼈다. 다만 이들의 감정까지는 내게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이들의 표정을 보면서도,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감정이 읽히지 않았을 뿐이다.



과함으로 무뎌진


이 읽히지 않는 감정은 영화의 부족함 즉, 연기의 문제도, 연출의 문제도 아닌 ‘풍족함’에 기인한다. 이들의 처절함이 너무나 풍족하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 지닌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했기에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 모두가 모든 걸 내려놓았단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마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닌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기 위한 행위로만 비쳤다. 포기. 그게 차라리 편하겠다는 마음이 태연하게 만든다.



무채색을 만드는 요소


아이의 힘겨운 삶을 보여주는 작품은 많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색채와 형태로 다뤄지는데 이 작품의 경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무감각하다. 극 안에서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많은 대화와 많은 감정이 오가는데도 전혀 생동감을 느껴지지 못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2004>, 김태용 감독의 <거인, 2014>,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 2017>,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1959> 등 아이의 고난과 역경, 아픔을 다룬 다른 작품을 놓고 봐도 이 작품은 유난히 힘이 빠져있단 생각이 든다.


제삼자의 눈에 비친 타인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출발점은 ‘이해로부터의 자유’에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유독 사회, 배경에 대한 이해가 크게 중요해 보이는 영화를 감상할 때는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특히나 그것이 내게는 낯선 환경이라면 영화는 아예 뒷전이 된다. 지금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배경을 모두 이해하겠다는 게 제1의 목표가 된다.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선 주어진 배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허나 배경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바쁘게 쫓기만 한다면 영화는 뉴스처럼 무미건조해진다. 자인의 동네를 이해하는데 목매지 말고 그저 자인의 눈에 담긴 것들만 보았다면 영화에 담긴 이들의 삶이 이렇게 딱딱하게만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이들의 꿈틀거림에서도 생동감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시작점과 다른 영향


법정, 아이와 부모, 그리고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에 대한 고발. 영화의 도입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인상이 이후를 좌지우지한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첫인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저 말이 다들 믿기 때문에 나 또한 당연시하게 된 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후의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첫인상은 급격한 속도로 사라진다. 그리고 현재, 가까운 과거의 이미지만 남는다. 우린 과연 시작점을 얼마나 중요시하며 그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 힘이 큰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매번 토론 때마다 도입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데다 마지막 감상이 도입부와 크게 맞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시작점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가 개봉된 당시 본의 아니게 주변으로부터 영화에 대한 평을 많이 들었다. 그들의 말 덕분에 꼭 봐야겠단 의지도 생겼지만, 한편으론 영화를 보는 데 적잖이 방해를 받기도 했다. 아이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로 부모를 고발한다. 영화의 도입부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생각보다 영화의 도입부는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타인의 입을 빌려 얻게 된 정보, 이 영화에 대한 소개, 그 평가 하나가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이 멘트에 결부시키려고 노력하게 했고 이 멘트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같은 시작이라도 하나는 방해가 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게 있었나 싶을 만큼 미비하게 영향을 준다. <가버나움>은 그 차이를 유난히 크게 느끼게 했고 그래서 그간 많은 영화를 봐오면서도 하지 못했던 생각을 오늘에서야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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