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라는 도시의 시작, 정림사지
<도시읽기2 - 부여와 문화재>
부여의 초행길이었습니다. 부여 규암마을에서 문화활동을 하시는 분의 초대로 가게 되었는데 겸사 부여 읍내를 보고싶어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제가 읍내라고 표현한 것은 부여가 시가 아닌 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금 놀랬습니다. 백제의 주요 장소 중 하나인 부여가 큰 도시로 이어지지 못하고 군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적 맥락을 따져봐야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부여 일정 후에 공주시를 들렀는데 공주시는 나름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여와 공주의 도시적 상관관계도 궁금해집니다.
이번 글에서 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문화재와 박물관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도시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6시반에 출발하여 부여에 일찍 도착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림사지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여는 처음이었으니 백제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지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불길한 마음이 소록소록 생겨납니다. 부여에도 코로나19를 조심하자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부여의 박물관들도 모두 휴관 중이었습니다. 거기에 날씨 예보에서는 돌풍이 분다고 조심하라고 할 정도의 날씨였으니 날도 흐려서 비도 올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산책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엄청난 스캐일의 정림사지가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복원된 건물은 거의 없어서 휑한 느낌이었지만 건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기둥만 보고도 상상의 건물을 그려볼 수가 있었고, 그 광대하고 사람이 북적북적했을 정림사가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정림사지에 정점을 찍은 것이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고 랜드마크로서 탑 주변에서 만나고 기도 드리는 대상인 오층석탑이 아닐까요. 나무로 지은 다른 건물들은 사라지고 돌로 만든 석탑만 남아 있으니 인생무상이네요.
그런데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문화재가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문화재 주변을 도시의 맥락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문화재는 여러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근현대를 거치면서 광속 개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다보니 문화를 역사를 전통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국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지만 문화, 역사, 전통의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것도 많고, 가치를 저평가하는 경향도 생겼습니다. 또한 문화재를 생활 속에서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박제를 해놓고 규제만 하다보니 도시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도시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문화재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컨텐츠입니다. 부여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여의 정림사지는 삼각형부지에 대로변은 260미터가 넘고, 인근의 백제초등학교와 부여중학교 옆으로는 380미터가 넘으며, 가장 긴 변으로는 450미터 가까이 도로에 면해있는 면적 5만 평방미터가 넘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 건물은 정림사지박물관과 석조여래좌상을 모신 건물만 있습니다. 앞으로 복원이 되면 많은 건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오픈스페이스가 부여라는 도시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대도시에 오픈스페이스는 녹지로서 휴식공간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요소입니다만 1960년대 20만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부여가 2016년 기준으로 7만명이 조금 넘는 지역으로서 오픈스페이스가 늘어나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직도 더많은 발굴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부여쯤되면 정림사지만이 아닌 수많은 유물 유적이 있을테니 발굴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옛 도시의 흔적은 가장 도심에 가까운 곳에 남아있게 마련이어서 발굴을 하고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하는 문제를 동반하게 됩니다. 딜레마인 것입니다. 당연히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도시에서 정주인구 또한 중요합니다. 부여처럼 과거에 융성했던 도시는 중요한 발굴이 하나 이루어지면 그 인근에서도 중요한 유물 유적이 나올 확률이 큽니다. 그래서 쉽게 큰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잠깐 바라보고 정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부여 전체에 대한 도시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미 발굴되고 조사된 유물 유적들을 기초로 향후 보존해야하는 지역과 개발할 수 있는 지역을 구분해서 도시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합니다. 물론 추측으로 이루어지는 계획이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을테지만 아무런 계획없이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현재 발굴된 문화재와 인근 지역을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속가능한 개발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때 문화재를 박제화하는 것은 가장 안좋은 방법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문화재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야하고 생활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제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문화재는 가장 소극적인 활용이며 도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들면 일본의 도시 속 신사는 시민들의 생활과 함께하면서 손때가 묻어가는 진행형 문화재입니다. 우리 문화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정림사지와 같은 대규모 문화재 주변에 대해서도 도시적인 편집이 필요합니다. 부여의 경우 정림사지 바로 옆으로 가장 큰 건물은 KT이고 헤어샵이나 자전거포 등 문화재 옆에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일반적인 도심의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도 아직 제대로 복원이 안되어 있어 휑한 느낌인데 주변도 이러하니 정림사지에 들를 이유가 없습니다. 정림사지 주변은 여러가지 목적으로 올 수 있도록 거리를 예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핫한 상점들이 들어와야 합니다. 1층에는 예쁜 상점들이 들어오고, 2층 이상으로는 정림사지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카페, 레스토랑 또는 요즘 이슈가 많이 되고 있는 공유오피스 등이 들어오고 너무 높은 건물이 지어지면 안된다는 전제 아래 최상층에는 주거시설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작은 도시의 스캐일을 깨뜨리는 대규모 건축물은 지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필지를 합치는 합필을 규제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초고층을 자연스럽게 억제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재는 이런 방식으로 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서 시민의 소득을 높여주는 대상이어야 하며, 도시적으로 연계성을 가지면서 도시를 쾌적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인구 7만의 도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가게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인지, 사업 기반이 전혀 없는 도시에 공유오피스 등을 만들 수 있을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지역의 미래를 그려놓았다면 그 그림에 맞춰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굴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만 필요한 게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도 비용이 필요합니다. 특정 목적의 가게가 입주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창업이 이루어지도록 지원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로컬의 가치를 통해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다양하고 많은 기업들이 나올 것입니다.
정림사지 앞 길은 정말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아직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도로폭과 정림사지라는 엄청난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부여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와 역사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컨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여는 부여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부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경제적으로 풀어내고 도시에서 펼쳐야 할 것입니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의 부여를 상상하며 백제의 미소를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