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로 만들어가는 문화도시
2013년 12월 31일 지역 문화에 큰 획을 긋는 법이 국회에서 의결이 됩니다. 2014년 7월 시행된 '지역문화진흥법'으로 이 법을 근거로 하여 지역의 문화자원을 통해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주민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에 기반한 사업이었습니다. 정부에서 문화를 언급하고 문화를 융성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정말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문화권력이 엉뚱한 곳으로 집중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 실패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융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실험들은 큰 의미가 있었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지속되는 사업들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문화를 굳건히 하는 중요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문화도시라 부르지 않고 문화특화지역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문화도시 전 단계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문화 특화지역 내에 문화도시와 문화마을로 구분하여 문화도시는 5년간 20~30억 원, 문화마을은 3년간 5~6억 원 규모로 국비 40퍼센트, 지방비 60퍼센트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화마을사업은 2019년부터 사업을 지방정부로 이관하면서 흐지부지된 상황입니다. 국가지원으로 진행될 때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진행되기 때문에 지방비 부담이 적지만 지방정부로 이관이 되면 전액 지방비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정상황상 지방정부마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산 우선순위에 밀려 제대로 예산을 편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중앙정부도 그렇지만 지방정부에서도 문화예술 정책은 주요 정책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문화도시는 문화특화지역에서 중앙정부에서 예산이 편성되어 전국의 도시들이 문화도시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5년 간 국비와 지방비 합쳐서 최대 200억 원 정도 지원이 되는 사업이니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1차로 문화도시로 선정된 도시는 경기 부천, 강원 원주, 충북 청주, 충남 천안, 경북 포항, 제주 서귀포, 부산 영도 등 7개 도시입니다. 또한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된 곳은 제주 제주, 인천 부평, 경기 오산, 강원 강릉, 강원 춘천, 충남 공주, 전북 완주, 전남 순천, 경북 성주, 경남 통영 등 10개 도시입니다. 1년 간 예비사업을 진행하고 2020년 평가와 심의를 거쳐 제2차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받게 됩니다.
다행히도 저의 고향이기도 해서 문화특화지역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자문도 많이 해준 제주 서귀포의 경우 2019년 문화도시에 선정이 되었고, 또한 자문을 해주고 있는 제주시의 경우도 예비문화도시에 선정이 되어 2020년 올해 문화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충남 공주시가 문화도시에 선정될 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고 있습니다. 문화도시가 선정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전체적인 틀을 지역문화에 맞춰 잘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지역 내 문화 거버넌스를 잘 구축하는 것이 시작이고 문화거버넌스를 통해 실행이 가능한 계획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이제까지 행정에서 잘 해오던 프로세스 - 성공 여부를 떠나서 - 입니다. 하지만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은 전국 어느 지방정부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거버넌스를 구축했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모가 나오기 전에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행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거버넌스는 공모가 나온 후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해하고 미리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모 후에 거버넌스를 만들려니 형식적인 거버넌스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에서 예비도시, 문화특화도시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지속가능성을 만들라고 지원하고 있지만 정책 연계가 잘 안되어 맥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문화도시, 문화도시에 선정된 도시는 상대적으로 거버넌스가 잘 구축된 곳으로 향후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지역에서 미리 문화거버넌스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문화도시에 선정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도시 사업은 유럽의 문화수도와는 조금 다르게 접근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를 문화적으로 브랜드화한다는 의미는 비슷하지만 한국의 문화도시는 생활문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흐름을 보면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부터 생활문화센터와 문화특화지역이 모두 생활문화에 기반을 두고 지역주민의 문화 향유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문화도시에도 이어져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럽의 문화수도에도 문화 향유를 바탕에 깔고는 있지만 해당 도시의 고유한 문화를 기반으로 한 행사를 집중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지역문화를 홍보하고, 문화를 통한 도시의 발전을 목적적으로 하는 도시재생을 목표로 하고 있어 한국의 문화도시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문화수도와 비슷한 개념으로 동아시아에는 동아시아 문화도시라는 이름으로 매년 한국, 중국, 일본의 도시를 선정하여 교류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한국 순천, 일본 기타큐슈, 중국 양저우가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 제주, 중국 닝보, 일본 나라가 선정되어 제주에서 세 도시의 문화를 볼 수 있었고, 마침 기회가 되어 중국 닝보에서 진행하는 행사도 참석할 수 있었는데 닝보의 문화와 도시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하신 김구 선생님의 글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문화도시는 지역주민에게서 발산하는 높은 문화의 힘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경험하고, 즐기고, 보는 것만이 아닌 직접 문화활동을 하면서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바로 문화도시입니다. 문화도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지원해야만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문화적 마인드를 가진 시민 한 명 한 명이 모여 문화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원사업으로 많은 예산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던 문화도시가 오히려 상처 입고 생채기가 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지적도 하고 응원도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문화의 향기로 가득 차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