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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읽기7. 음악으로 기억하는 도시

1993년의 로마와 베네치아

1993년 군 복무를 마치고 선물처럼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유럽이라는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라는 이탈리아였고 로마와 베네치아였습니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서양 문화가 시작한 그리스를 보고 싶기도 했지만 가장 화려하게 문화를 꽃피우고 현재까지 많은 건축물이 남아있는 곳이 로마였고, 르네상스 이후 강력한 경제력을 앞세워 문화를 꽃피운 곳이 베네치아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군대 말년에 빠져든 이탈리아 음악은 저로 하여금 이탈리아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1993년 바티칸시티

고등학생 시절 음악시험을 본다고 흥얼거리던 ‘오 나의 태양 O sole mio'라는 가곡도 있었지만, 군대 상병 시절(당시는 현역으로 30개월을 복무하던 시기였고, 상병은 15개월 이상 근무한 후의 계급이었다)에 이상하게 꽂혀서 빠져들었던 가수는 이탈리아의 국민가수라 불리는 에로스 라마조띠(Eros Ramazzotti)였습니다. 이탈리아 전통 가요라 할 수 있는 칸소네의 유전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독특한 창법에 가창력까지 뛰어났으니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운전병으로 복무하면서 종종 드나들었던 서해안과 전북의 드넓은 평야지대에 잘 어울리는 노래로 마치 이탈리아의 시골을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을 마음속에서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1993년과 1994년 여름에 저는 한국에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배낭여행으로 또 한 번은 TC로 일행을 이끌고 2년 연속 유럽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배낭여행에서는 KBS에서 배낭여행하는 것을 아침 방송에 내보내겠다고 해서 여행 내내 저를 찍었으며, 여행을 다녀온 후에 2주간 아침 전국 방송에서 10분 간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방송을 연결해줘서 정말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에게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에서의 여행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건축역사책에 나오는 엄청난 건축물이 하나씩 튀어나왔습니다.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스페인 광장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축물이고 공간들이기에 지도에 펜으로 하나하나 표시를 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귀에는 에로스 라마조띠(Eros Ramazzotti)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귀에 꽂히는 에로스 라마조띠의 코세 델라 비타(Cose Della Vita)는 제 마음을 이탈리아로 가득채워주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저녁, 한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멋진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을 따라 들어가니 노천극장이었고, 오페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노천극장의 돌에 반사되어 들려오는 노래는 어느샌가 제 귀에, 제 마음에 공명이 되고 있었습니다.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였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를 모는 사공이 부르는 노래가 운하 양쪽 집의 돌벽에 부딪혀 기막힌 소리를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공기도 이탈리아 공기이고, 노래도 이탈리아 노래여야 했습니다. 제 여행의 밀도를 높여준 것이 음악이었고, 음악 때문에 도시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3년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


1994년에는 배낭여행 팀을 이끌고 유럽에 다녀왔는데 귀국을 앞둔 날에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에 숙소를 잡고 팀원들과 식사할 곳을 찾아 나섰지만 8시가 넘어서 그런지 문을 연 식당을 찾기 힘들었고 결국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 왠지 에로스 라마조띠 노래가 듣고 싶어 주인장에게 요청을 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틀어주었습니다. 어떻게 한국사람이 에로스 라마조띠를 아느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건축학도에게 여행은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숙제 같은 행위이기도 하지만 도시를 보고 사람들의 생활을 보는 순례와도 같은 일입니다. 천주교의 미사 시간에 성가를 부르면서 기도하는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고 감동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여행에도 지역에 어울리는 노래를 듣는 것은 여행을 아름답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문득 몽골 여행에서 사 온 몽골 전통음악인 ‘흐미‘를 들으며 몽골 울란바토르와 므릉에 있는 흡스골호수를 추억하고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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