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재생을 통한 문화도시 만들기
산업혁명의 시대가 가고 정보화시대가 오면서 산업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공장이나 항만 창고 등 고전적인 시설들이 변화되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 비어있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사람들이 이 공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원래 용도와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비어있는 시설들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가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이라는 미술관으로 바뀌었고, 독일의 졸페라인(Zollverrein)은 탄광에서 문화시설로, 미관지구로 유명한 가까운 일본의 구라시키에서는 오래된 방직공장이 호텔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 벨트화 시범사업'으로 전북 군산 내항 일원, 전남 신안 태평염전, 경기 포천 폐채석장, 대구 연초제조창, 충남 아산 장항선 폐철도 등 다섯 곳이 선정되어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인천의 아트플랫폼이 있었고, 정부지원사업만이 아닌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리먼사태로도 알려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었던 시기로 한국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한국에서 폐산업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유휴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런 흐름들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으로 이어졌고, 전국의 의미 있는 많은 공간들이 지자체 주도로 신청이 이루어졌습니다. 2013년 1차 공모에 청주문화산업단지,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안산, 광주 소촌이 선정되었고, 2014년 2차 공모에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시흥, 광명 폐자원회수시설, 부천 폐소각장, 옹진 구 백령병원, 담양 폐양곡창고 등이 선정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대구시 대구 문화체험교육공간, 경기 서울대 농생대 청년문화공간, 경기 수원시 Eco-Newseum, 전북 전주시 팔복 문화예술공장, 전북 완주군 Local Design, 전남 당양군 문화를 빚다 '해동 술공장' 등이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제주시에 있는 예술공간 이아도 옛 제주대병원이었던 곳을 이 사업으로 조성한 공간입니다. 저는 경기도 시흥시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 내 예술창작소 창공과 경기도 광명시 폐자원회수시설이었던 광명 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전담 컨설턴트와 부천 폐소각장의 컨설턴트로도 활동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지역의 문화거점공간으로 멋있게 운영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폐산업시설 등 대부분의 유휴공간들을 재생하는 방법으로는 문화예술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꼭 문화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공간에 대한 재생은 사실 도시적 접근이 필요하며 문화적 접근이 비교적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접근일 확률이 높아서 많이 이용됐을 뿐입니다. 어떤 곳은 호텔로, 어떤 곳은 메이커 스페이스나 공유 오피스로 바뀌는 등 도시적 관점에서 재생의 목적에 맞는 더 좋은 대안을 늘 고민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민간에서 창조적인 접근을 통해 다양한 공간 재생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택을 카페나 오피스, 갤러리 등으로 바꾸기도 했고, 제주의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처럼 극장을 미술관으로 바꾼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영등포의 대선제분 부지에서도 멋진 일이 계획되고 있어서 앞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멋진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폐산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도시에 활력을 주게 됩니다. 어쩌면 슬럼이 될 수 있는 곳에 만들어지는 멋진 재생공간은 도시에 사람을 불러오고 다양한 활동으로 가득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재생공간은 공간 자체가 가진 엄청난 아우라 때문에 가장 힙하고 트렌디한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공간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모양의 건물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사와 시간이 만들어준 흔적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폐산업시설과 유휴공간들을 활용한 재생건축은 앞으로도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해주고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