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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조각
올 초에 나는 수어를 배우려고 다짐했었다.
늘 배우려고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생각만 하다 죽겠구나 싶었다.
세상은 AI까지 등장해선,
걔들도 학습하는데.
당장 영상을 찾아서 냅다 따라 했었다.
내 이름,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몇 개 더 연습했으나 거기에서 그쳤다.
무심코 탕비실에서 가져다 먹은 과자에서
점자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계속 이렇게 지내다 죽었을까.
희한한 일이지.
뭘 할 수 있을수록
지금 하는 걸 할 수 없는 때를 생각해 보게 돼.
지금 먹는 망고가 내년에도 있을까.
망고를 사 먹을 수 있을까.
망고 맛을 느낄 수 있을까.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을까.
망고라는 글자가 남아 있을까.
망고를 사러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을까.
망고 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모든 언어와 감각.
각자의 영역이지만,
몇 가지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세상엔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음을 기억해야지.
기억이란 말의 수어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점자가 있는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 되든 기업이 되든
최소한 과자에 점자가 존재함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by 개복사